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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09/03/2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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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이 다가갔으나
꽃잎과 꽃잎 사이 아무도 모르게
봄날이 가고 있었다
나는 호드득 지는 살구꽃을 손으로 받아들다가
또 입으로 받아먹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는데

어느날 들판 한가운데
살구나무에다 돛을 만들어 달고 떠나려는
한척의 커다란 범선(帆船)을 보았다
살구꽃을 피우던 그가 거기 타고 있을 것 같았다
멀리까지 보리밭이 파도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서 가서 저 배를 밀어주어야 하나
저 배 위에 나도 훌쩍 몸을 실어야 하나
살구꽃이 땅에 흰 보자기를 다 펼쳐놓을 때까지
나는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도현

 

  한낮 봄기운에 취하는 날들이다. 봄바람은 한껏 온기를 내 품고 정오의 느릿한 햇빛은 나른 하기만하다.

  콩크리트와 시커먼 아스팔트 깨진 틈 속에서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공원 한 켠에 개나리와 산수화가 화들짝 피어난 후 벌써 게으른 낮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봄이 또 꽃에 취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꽃잎 가지마다 흐드러져도 보리밭 넘실거리는 다정한 봄을 애타는 마음으로 잡으려 해도 그냥 스쳐 지나갈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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