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 재래식 밥솥에 밥을 지을 때, 밥솥 밑바닥에 놓인 쌀이나 보리·콩 같은 것들이 그대로 밑바닥에 눌어붙어 된 누룽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즐겨 먹던 간식거리였다. 요즘은 누룽지의 해독 작용, 위장을 보호하는 소화 기능, 숙취 해소와 간 기능 회복 등의 효능으로 누룽지탕, 누룽지, 숭늉 등 건강식품과 간식으로 애용되고 있다.
쌀을 불려서 위아래로 태워 만드는 끓임용 누룽지가 대부분이었던 누룽지 시장에 바삭바삭한 칩누룽지라는 신시장을 개척한 벧엘전자(주) 진광인 대표를 그녀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봉담읍 상신리에 위치한 회사는 주위 풍광이 좋아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이다. 진 대표는 맑고 커다란 눈, 탄탄한 몸, 열정을 담은 미소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진 대표는 “벧엘전자는 호불호가 거의 없는 누룽지를 만들 수 있는 누룽지 기계, 간편하게 만두도 만들고 칼국수, 소면 국수, 우동면을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자동 국수 기계, 커피와 환상 궁합을 이루는 커피빵 기계를 개발, 생산, 공급하고 있는 회사”라며 “전국에 칩누룽지 시장을 개척하고 100여곳이 넘는 전국자활센터에 기계를 보급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 대략 3000명 정도가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벧엘전자(주)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물만 부으면 컵라면처럼 숭늉도 되고 눌은밥도 되는 칩누룽지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특허 4건, 실용신안 5건도 확보했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 가는 우리 식탁 문화에 한식의 복잡한 조리 과정을 없애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기계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누룽지 완성 후 자동 취출 방식은 특허로 다른 경쟁사에서 따라올 수 없어 컨베이어를 이용한 대규모 생산 사업장에는 대부분 벧엘전자(주) 제품이 들어가 있다.
부도난 회사 인수, 스물아홉에 창업
진 대표의 고향은 아산 도고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기록 경기인 투포환 선수였다. 이때 학교 뒷산을 매일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닌 경험이 있어 웬만하면 등산은 하지 않는 편이다. 고등학교는 코치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필드하키로 전향해 필드하키의 명문인 온양여상(현 온양한올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단체 경기인 만큼 입학도 하기 전부터 합숙 훈련을 시작했다. 1학년 2학기 10월쯤, 필드하키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 운동선수의 길을 그만두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때 필드하키 코치이자 체육 교사였던 선생님에게 밉보여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했던 자신이 체육 과목 평가에서 ‘양’을 받았다며 씨익 웃는다. 이렇게 운동선수로 온갖 어려운 훈련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 어지간한 어려움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맷집과 멘탈이 형성됐다.
진 대표는 온양여상을 다니면서 배웠던 부기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재무제표 등 재무 관련 업무에 기초가 됐다고 회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운동했던 일,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로 전환한 일 등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그때는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하나도 버릴 게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1990년도에 서로 다른 교회에 다니면서도 신앙으로 뜻이 맞았던 진 대표를 포함한 세 사람이 회사를 시작했다. 당시 진 대표는 셋 중 막내였다. 칩누룽지는 “집에서 찬밥 남으면 냉동실에 넣어 놨다가 버리잖아요. 이렇게 버려지는 밥을 이용해 바삭바삭한 누룽지를 만들어 쌀 소비도 촉진하고, 음식물 잔반도 줄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칩누룽지는 기대와 달리 저조한 판매로 고전했다. 그러던 중 중소기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KBS의 한 기자가 1995년 KBS 9시 뉴스에 회사를 소개하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해, 회사는 70명 정도의 직원이 일할 정도로 확장됐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인 1997년, 회사가 부도를 맞아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당시 회사에서 자금을 담당했던 진 대표는 회사를 정리하고 나서 “내가 퇴직금도 못 주고, 급여도 못 주었으니 당신이 회사를 맡아서 해달라”는 사장의 부탁을 받았다. 스물아홉 살이었던 진 대표는 젊은 패기로 자재, 생산을 맡을 사람들과 셋이서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벧엘전자(주)를 창업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진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 진지하게 인생 계획을 세웠다. 스물일곱 살에 골프를 시작하고 서른 살에 사업을 하고, 차를 사고, 집을 사는 것까지 계획을 세워 종이에 적어 놓고, 늘 보면서 마음에 새기곤 했다. 이런 계획에 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서 바로 청약저축을 들었다. 덕분에 스물넷에 임대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이게 회사를 차리는 데 종잣돈이 되기도 했다. 회사일이 너무 바빠 스물일곱 살에 골프를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것들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얼떨결에 회사가 부도가 나 스물아홉 살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중3 때부터 사업에 꿈이 있었기에 어렵지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이전 회사가 부도나는 것을 경험한 진 대표는 ‘규모보다는 내실’, ‘오늘 문을 닫더라도 거래처에 10원의 미수금도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빠른 성장보다는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 이전 회사의 창업 멤버로 자금을 담당했던 덕분에 어깨너머로 배웠던 자재 구매 분야는 어렵지 않았으나 금형 설계, 자재 특성, 생산 관리 등은 전혀 몰랐다. 관계된 곳을 찾아다니며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느낀 것이 ‘물어보면 잘 가르쳐 준다’는 것이었다.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은 책을 사다가 공부도 하고, 사출에 문제가 생기면 사출 공장에 쫓아가 밤새 지켜보기도 했다. 극성스럽게 쫓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워 나갔다.
생산 관리, 품질 관리, 공정 관리 등은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를 느껴 안양전문대 공업경영학과에 입학해 공부했다. 이때 학교에서 생산 관리, 품질 관리, 자재 관리 등을 배운 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장 필요한 것이니 귀에 쏙쏙 들어오기도 했고, 현장에 가면 어제 배운 것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힘들었지만 신기하기도 했고 재미있었다. 이후 남서울대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경영학을 공부하고, 안산 ERICA 한양대학교 캠퍼스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기까지 7년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에 회사 출근하고, 오후 5시 반에 학교에 가서 10시 반까지 공부하고, 집에 12시쯤 돌아와 레포트 쓰고 마무리하면 새벽 2시에나 잠드는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이때는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주말에는 청년회,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등 교회 활동으로 바쁘게 지냈다. 진 대표는 이때를 돌아보며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신앙의 힘이지요. 그래서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부활했습니다’라는 기도로 시작합니다”라고 말했다.
▲ 웰빙 제과기 고소미 BE-5200. © 화성신문
|
▲ 국수제조기 요리손 BE-8500. © 화성신문
|
재활센터와 좋은 궁합 이뤄
진 대표는 창업 후 칩누룽지 기계를 재개발하고 가정용만 있었던 것을 영업용까지 확장하는 등 칩누룽지 사업에 집중했다. 사업이 활기를 띤 것은 서천자활센터에서 칩누룽지 기계를 구입, 생산, 판매한 사업이 성공 사례로 소개되면서부터였다. 전국의 많은 재활센터에서 문의가 왔다. 이렇게 재활센터의 사업과 연결된 곳이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넘는다. 근로 여건이 원활치 않은 재활센터에서는 크게 힘든 작업이 없는 칩누룽지 사업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특별히 충청남도에서 활발하지만 전국 곳곳의 재활센터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정작 화성시 재활센터에서는 칩누룽지 사업을 하는 곳이 없어 아쉽다고 한다.
현재 칩누룽지는 다양한 곳에서 찾고 있다. 군부대에서 제대로 식사를 안 하고 보초를 나가는 병사들의 건강을 염려한 원사가 보초 나갈 때 칩누룽지를 나눠준 사례가 있었다. 간식으로 먹거나 보초 근무가 끝나고 물을 부어 먹으면 훌륭한 식사 대용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가 알려지자 많은 부대에서 기계를 구입하기도 했다. 와인을 파는 레스토랑에서 칩누룽지에 치즈를 얹고 꿀과 올리브 오일을 넣어 와인 안주로 내놓기도 한다. 이렇게 커피숍, 카페, 전통찻집 등에서의 샵인샵, 북극의 세종기지, 미국 LA 등 다양한 곳으로 진출해 있다.
캄보디아 소망의 학교와의 인연
진 대표는 캄보디아 씨엠립에서 두 시간 반 정도 들어가는 오지에 위치한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소망의 학교’와 7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 개인적으로 후원해 오고 있었다. 3년 전부터는 5개년 계획으로 회사와 개인 반반씩 매월 100만원의 후원을 하고 있다. 그곳에는 학생들과 스텝 200여명이 있는데, 그중 130여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돼지, 닭, 물고기 등을 키워 식량에 보탬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이곳은 300명 정도의 국내 개미 회원들이 힘을 합해 7년째 후원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여러 번 다녀왔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가보질 못해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그리워진다고......
이곳의 어린이들은 학교 공부와 더불어 한국어 공부도 하고, 한국어 성경 필사도 하는 등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한 정도이다. 내년이면 소망의 학교 제1회 초등학교 졸업생이 배출되며, 내년에 졸업반 30명 정도가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올 예정이다. 진 대표는 벌써부터 관계자들과 게스트하우스, 홈스쿨 등 숙식과 이동 방법 등을 협의하고 있다.
6년 뒤 이 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일자리가 별로 없는 캄보디아의 사정상 국내, 특히 화성시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궁리 중이다. 한국어로 소통이 가능하고 신원이 보장된 이들이 화성시에 취업해 활동한다면 화성시의 기업에도 도움이 되고.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진 대표의 마음은 벌써부터 바쁘다.
세 가지 소박한 꿈
진 대표는 벧엘전자(주)의 앞날에 대해 몇 가지 꿈이 있다.
첫째,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특이한 제품, 남이 안 하는 제품을 개발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꾸준히 성장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만 내면, 관련 협력 업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구체화해서 일을 착착 진행할 수 있는 단단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둘째, 직원들이 스스로 끌고 나가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정착이 잘 되면 소사장 제도를 운영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셋째, 벧엘전자(주)는 진 대표가 2대째 끌고 온 셈인데, 앞으로도 전문 경영인이 바톤을 이어받아 3대, 4대 사장들이 함께 모여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는 조찬회를 가져보는 것이다.
진 대표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바로 골프라고 답한다. 봉담기업인협의회와 중소기업융합경기연합회 남부지회 화서융합회에서 각각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면서 거의 남자 회원들하고만 골프를 쳤다. 웬만한 남자들만큼 거리가 나간다. 그러다 보니 골프장에서 함께 골프를 치는 남자 회원들로부터 ‘형님’이란 별명을 얻었다. 한 번 결정하면 매섭게 집중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3년에는 1언더파를 기록하기도 했다. 평일에도 퇴근 후 1시간씩 연습장에 꼬박꼬박 들른다. 어릴 때 운동을 했던 체력과 멘탈이 골프에 큰 도움이 됐단다.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알아야
진 대표는 요즘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혼자 가려고 하면 힘들어, 같이 가는 거야. 배우는 것에 게으르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고 했다. 매년 남서울대학교에 장학금을 주고, 화성시 폴리텍대학에도 지역에 있는 기업 대표들과 장학회를 만들어 장학금을 주는 것도 본인이 중학교, 대학교를 다닐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며, 사랑은 이렇게 흐르는 것이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빚진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업의 빠른 성장보다는 주위의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기를 바라는 진 대표의 소박한 소망대로 늘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위를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형님’이 되길 응원한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