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주현 시인, 시낭송가, 화성문인협회 사무국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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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시간
피재현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쯤이나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시간에
옛날에 우리 학교 다닐 때처럼
일제히 사이렌이 울리고
걸어가던 사람이, 아직 누워 있던 사람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방공호 같은 데, 혹은 그늘 밑, 담장 밑,
다리 밑, 공중화장실 뒤
하여간 좀 덜 부끄러운 곳에
모여서 숨어서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한 십 분쯤 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다시 걸어도
다시 누워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도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사는 게
좀 덜 부끄러워도 지는
-피재현 시집 <우는 시간> 2016 애지
법적으로 의무적으로 울고 싶을 때 한 십 분쯤이라도 울어보잔다. 이왕이면 좀 덜 부끄러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땅에 어른으로 살아가면서 울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왜 어른의 울음은 속울음이어야 하고 뒷산 언덕배기이어야 하고 노을 진 바닷가에서 참고 참았다가 남 눈치 보듯 터트려야 하는가. 억울하다. 시인은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모여서 우는 시간을 갖자고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사이렌이 울리고 방공호에서 모여서 우는 것을 상상해 보라. 십 분쯤 울고 난 후의 덜 부끄러운 어른들의 개운한 평화를 상상해 보라. 참는다는 것은 무엇이 되든 불행한 일이다. 어른이 되더라도 순수함과 솔직함은 그대로 간직하며 살자는 것이다. 울고 싶을 때 눈치 보지 않고 우는 짐승이나 바람이나 강물이나 풀과 꽃들은 사람보다 얼마나 건강하고 자유로운가. 눈물과 울음은 가장 정직한 표현이고 가장 강력한 문장이다. 혼자 우는 그대로 독백이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고 대답일 것이다. 정오 무렵이나 오후 두 시쯤 우는 시간을 갖자는 이 시인의 공약이 그 어떤 정치인의 거대한 공약보다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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