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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227]
속물 혹은 철부지: 신도시에 산다는 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3/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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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 교수  © 화성신문

경기도는 신도시의 고장이다. 분당과 일산, 중동과 평촌, 산본을 시작으로 광교와 판교, 운정과 양주, 동탄과 고덕이 신도시가 됐고, 이제 교산(하남)과 왕숙(남양주), 광명과 시흥, 의왕과 군포, 안산과 화성의 진안도 신도시로 거듭(?)난다고 한다. 주지하듯 신도시란 자연적인 도시화의 과정을 거쳐 조성되기보다는 특정한 주체에 의해 계획적으로 건설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수도권 과밀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곳들로 특히 1980년대 후반의 신도시 개발은 3저 호황에 따른 수도권 지역의 인구집중과 그에 따른 주택 공급 및 교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정치·경제적 필요에 따라 거대 자본이 투입되어 인공적으로 설비된 복수의 장소들이 경기도의 사방을 이루게 된 것이다.

 

경기도의 전역이 신도시가 되어 갈수록 서울에의 귀속은 한층 강화되어 갈 수밖에 없다. 수도권 과밀화란 서울 집중도의 다른 표현이고, 서울에 대한 기능적 분화와 분산을 위해 경기도의 땅이 소용되는 형국으로 수도권은 계속 재구축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주택과 교통은 물론, 상업과 금융, 문화와 예술, 보건과 복지 등의 전 영역에 걸친 역할의 공간적 분점이 요구되고 있다. “서울은 계란 노른자, 경기는 흰자”라고 비유했던 어떤 드라마의 대사처럼, ‘흰자’에 산다는 건 ‘노른자’의 부근에서 머뭇거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스 전용차선’으로 달리면 오십 분 만에 당도할 수 있다는 서울은 이곳 경기에선 언제나 가깝지만 먼 그런 ‘희구의 공간’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도시란 ‘서울의 지방화’이자 ‘지역의 서울화’ 현상이 실체화된 첨단공간이라 할 수 있다. ‘제2의 강남’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던 분당신도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경기도의 신도시들이 서울과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실만 상기해 봐도 그렇다. ‘서울의 근교’를 넘어, ‘유사-서울’을 지향하는 신도시의 양산은 경기도의 지역 정체성 자체를 소실해 버릴 항구적인 위기로 내몰고 있다.

 

 경기도가 신도시가 돼 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의 고향이 파괴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때 고향이란 태어난 장소만이 아니라 정과 발, 그리고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던 모든 터전을 의미한다. 신도시가 된 경기도는 떠나가거나 떠나온 사람들이 한시적으로 머무는 경유지들의 집합소라 할 수도 있겠다. 서울로부터 쫓겨난 사람들과 서울을 꿈꾸며 ‘유사-서울’인 신도시를 찾아온 사람들이 언제든 자기의 ‘진짜 터’를 찾아 복귀할 것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장소상실(placelessness), 그러니까 장소와의 깊이 있는 유대감의 상실이 근대(인)의 일상적 체험이라면, 신도시에의 정착이야말로 문화적이고 맥락적인 실존 공간의 소실을 서울 중심적인(중앙집권적인) 학습된 삶의 양태로 전이하여 극복하는 근대적인 공간의 본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도시에 산다는 건 서울 혹은 강남과의 알력 속에 내몰려지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이은의 단편 「산책」(2022)이 그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서 34평 아파트에 사는 여경과, 강남 22평 아파트에 사는 윤경 간의 모종의 긴장을 담고 있는 소품이다. 비록 22평이지만 강남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윤경의 눈에는 신도시에서 산책하듯 사는 여경이 ‘철부지’로 보일 뿐이다. 반대로 여경의 눈에 윤경은 비좁은 강남의 집에서 아등바등 사는 ‘속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속물’과 ‘철부지’ 사이(間)의 차이보다는 이들 사이의 동질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도시에서의 가장된 여유를 스테레오 타입화하여 전시하는 여경의 행동도 충분히 ‘속물’적이고, 그런 여경의 과장된 제스처를 “애가 없어서 철이 없는 거”라고 단정하는 윤경 역시 사리분별 안되는 ‘철부지’의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박탈해버리고 만 것일까? 한때 신도시였던 오래된 강남 입성을 꿈꾸며, 서울 근교의 또 다른 신도시를 배회하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희망은 세상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일까? 이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차례인 것 같다.

 

with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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