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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화성 9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먼 타인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3/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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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화성신문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먼 타인  

 

- 박소원의 「동탄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장소들과 만나고 자기만의 장소를 소유하며 살아간다. 이때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로서의 생활세계는 현존재의 구성 요소이자 터전이 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는 그가 태어나고 성장해 온 경험세계의 누적된 총체이자 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온 근본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고향을 존재의 근저이자 근원에 가까운 곳이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은 부침이 잦다.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기보다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아가기 바쁘다. 그들에겐 ‘우리’보다는 ‘나’가, ‘함께’보다는 ‘혼자’가 익숙하다. 

 

눈[雪]을 맞으며, 반듯한 신도시 길을 걸으며 

내가 걸어온 모든 길들 눈 속에 묻어 둔다 

가슴 아픈 소식들 죄다 눈 속에 묻어 둔다 

길에서 나는 소리들 눈의 아픔이 되도록

 

이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발자국을 따라

논과 밭과 옛 집터와 옛사람들 

잊고 살자는 말, 참 낭만적인 말들

 

방향 많은 바람을 따라 걷다 보면 

방향이 많은 도심(都心)에 이르면 

문득 사라진 시간들, 얼굴들 논밭들 

내 발 밑에서 뽀드득 뽀드득 눈의 신음 소리가 된다

 

타지에서 흘러온 이웃 사람과 매일 

눈[目]인사를 나누며 발랄하게 스쳐가지만 

이 길 위에서 나는 당신이 늘 모르는 사람이다 

당신도 늘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눈이 내리는 날 화자는 홀로 “반듯한 신도시 길을 걸으며” 자신이 “걸어온 모든 길들”과 “가슴 아픈 소식들”을 눈 속에 묻기로 한다. 그러나 잊으려 할수록 더욱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은 그리웠던 지난날의 기억이다. 길이란 통상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물리적인 장소지만 화자에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화자의 발걸음은 “방향이 많은 도심(都心)”에 이른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 있지만 마음 둘 곳 없는 화자에겐 신도시가 눈에 설기만 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동탄에서 산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곳이 진정성 있는 삶의 장소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화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시간들, 얼굴들 논밭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타지에서 흘러온 이웃”들과 매일 인사를 나누어도 왜 나와 당신은 가까워지지 않는 것일까? 영어에서는 ‘I see’가 곧 ‘I understand’라는 의미라지만, 발랄하게 눈인사를 나누어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너무 먼 타인이다. 내가 당신을 모르듯 나도 당신에게 늘 모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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