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숭깊은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기대와 설렘 속에 맞이했던 새해도 달포가 넘는 날이 지나가고, 다시 민족 고유의 설도 보냈으니, 이젠 분명 한 살 더 먹었고, 비로소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가 활짝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간 해이해졌던 신년의 결심과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즐겁게 명절을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한 해에 두 번의 설을 보내는 것에 대해 불편을 느끼고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음력설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음력설이 폐지되고 양력설이 채택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때 개화당의 김홍집 내각에 의해서다. 고종황제는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선언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신정(新正)과 구정(舊正)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국가의 행정적 단위에서는 신정을 공식 설로 인정했으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구정을 쇠었다.
설을 두 번 쇠는 것을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생각한 나머지 1954년 대통령령으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이 발효되어 양력설이 공식 설로 지정되고 공휴일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가정의례준칙의 맥락에서 신정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지속되었으나 일반 국민들은 여전히 구정 쇠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1985년에 구정을 ‘민속의 날’이라는 명목으로 공휴일로 지정했고, 1989년에 이르러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명, 공휴일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처럼 음력설은 민족의 오랜 전통은 인위적인 개편에 의해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그러니 두 번의 설을 불편하게 여기기보다는 설과 설 사이에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뭐든지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와 정신을 가진다면 더 의미 있는 ‘설 쇠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설을 쇠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먼저 ‘설날’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자. ‘설날’의 어원에 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있다. 어떤 것을 처음 대할 때 먼저 ‘설다’, ‘낯설다’는 표현을 쓰는데, ‘설’이라는 어근은 여기서 유래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설날’은 ‘처음 날’을 의미한다. 또 다른 설명은 ‘설날’은 ‘선날’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우리말 용례에서 ‘선’은 ‘시작’, ‘개시’를 의미한다. ‘장이 선다’의 경우 ‘선다’는 ‘시작’, ‘개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선날’은 처음 시작하는 날을 의미하는데, 이 ‘선날’이 발음상 용이한 ‘설날’로 불리게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설날’의 우리말 뜻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첫날’의 의미가 강한데, ‘설날’에 해당하는 한자어에는 첫날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더 강조되어 있다. 한자문화권에서는 흔히 원단(元旦), 세수(歲首), 연수(年首)로 표기하였으나 ‘삼가는 날’이란 뜻에서 신일(愼日)로 쓰기도 했다. 한 해의 운수는 새해 첫날의 몸가짐,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생각에서. ‘삼가다’,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설’이 유래했을 것이라는 민속학자의 견해는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경우 ‘설날’은 ‘삼가는 날’([愼日])의 의미에 다름 아니다.
이제 두 번의 설을 보냈으니 완전한 갑진년 새해이다. 기대와 설렘 속에 새해를 맞이하고, 일가친척을 만나고 긴 연휴를 보내면서 부풀고 들뜨고 조금은 풀어진 마음을 삼가는 마음으로 단속하고,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다양한 생활 현장에서 새로운 다짐과 각오로 임해야 할 시간이다. 누가 뭐래도 나의 삶의 주인은 ‘나’이고, 스피노자의 말처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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