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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인터뷰] 나영준 ㈜인천이피에스 대표
50년간 EPS 한 우물 판 오뚝이
스티로폼 업종의 국내 선두기업
힘든 현실로 꿈을 포기하는 이웃이 없는 세상 만들기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4/02/0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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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신문

 

 

㈜인천이피에스(대표 나영준)는 완충 포장재, 보온과 보냉, 단열재 등 각종 EPS(Expanded Polystyrene 스티로폼)와 EPP(Expanded Polypropylene)를 제조하는 회사로 가전 완충재, 일반 포장재, 농·수산물 포장재 등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스티로폼 종합제조 회사이다. 50여년 동안 스티로폼 업종에서 한 우물을 파온 나영준 대표의 내공에 힘입어 인천이피에스는 동일 업종을 리드하는 선두기업으로 우뚝 섰다.

 

㈜인천이피에스 나영준 대표는 2014년 대한민국혁신대상(한국일보), 2015년 올해의 CEO 대상(한국경제신문), 2018년 중소기업인 일자리 창출 모범유공자 표창(경기도지사), 2022년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중앙일보) 등 사업 성과에 걸맞은 여러 상을 두루 수상했다. 처음 만난 나 대표에게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인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EPS는 폴리스티렌, 스타이롤(styrol)의 중합에 의해 생성되는 수지를 펜탄, 부탄, 프로판과 같은 발포제를 첨가해 이를 증기로 부풀리고 팽창시켜 제조한 열가소성 발포 제품이다. 제품의 특성상 체적의 98%가 공기이며 나머지 2%가 수지인 자원 절약형 소재로 희고 가벼우며, 내수성ㆍ단열성ㆍ방음성ㆍ완충성이 우수해, 가전제품ㆍ식품 포장, 건축용 방음 중공재, 보온 단열재 등으로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티로폼(Styrofoam)으로 잘 알려져 있다. EPS는 점차 개량돼 오존층 파괴의 주범인 프레온가스를 사용하지 않고, 단열 포장재로서 지구 온난화, 온실효과, 산성비의 원인이 되는 가스 방출을 줄여 주며, 합성목재나 경량 콘크리트 등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땅에 묻어도 메탄가스가 발생하지 않아 지하수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발전하고 있다.

 

EPP(Expanded Polypropylene)는 폴리프로필렌(PP)을 물리적으로 발포한 입자 형태로, 뛰어난 에너지 흡수ㆍ충격 완화ㆍ단열ㆍ부력ㆍ내수성 및 화학성 등 다기능 Cell Bead Foam이다. EPP는 에너지 관리, 경량화, 향상된 기능성, 내구성 및 재활용성에 대한 성능 이점으로 인해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널리 사용된다. 적용 분야에는 좌석, 범퍼, 보관 시스템, 도어 패널, 기둥, 바닥 레벨러, 소포 선반, 헤드 레스트, 도구 키트, 선 바이저 및 무수한 필러 부품이 포함된다.

 

 또한 다용성과 가벼운 무게 및 기타 성능의 특성으로 인해 가구, 모형 항공기와 같은 장난감 및 기타 소비재에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단열 특성과 구조적 강도로 인해 음식 배달 용기 및 음료 냉각기 등과 같은 용기에 적합하며, 파손 및 분진이 적어 스팀 세척으로 멸균해 Recycling이 가능하다. 양봉용 벌통, 생활용품, 친환경 부표, 자동차 부품, 완충 포장재, 정밀부품 보관 및 운반구, 유아용품 등에 사용된다.  첨단 친환경소재(EPP)를 활용하여 개발한 벌통 ‘허니빌’은 2023 한국소비자베스트브랜드대상 ‘고객만족 EPP 친환경 벌통’ 부문에서 1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광주서중 3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린 나이에 홀로서기 위해 “종이 줍는 것 외에는 다 해보았다”라고 할 정도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냈다. 이렇게 생활하면서도 시간 약속과 돈에 대해서는 항상 약속을 철저히 지켰다. 나 대표가 EPS와 인연을 맺은 것은 5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구로공단에 있던 한양화성(주)에 기능공으로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내가 만약 사장이라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제안을 많이 했는데, 이것이 좋게 받아들여져 매년 승진하다시피 했다. 이때부터 EPS와는 좋은 인연이었다.

 

1980년 회사를 그만둔 후, 동업으로 사업을 하기도 하고, 길거리에서 천막 쳐놓고 스티로폼 판매 대리점을 하기도 했다. 85년도에는 인천 십정동에서 공장을 인수해서 제조를 시작했다. 이때도 항상 EPS 관련 사업을 계속했다. 고객들에게 신용을 쌓으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던 중 1991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15억원의 부도를 맞고 폐업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95년 6월 인천 남동공단에서 인천수지를 모태로 ㈜인천이피에스를 설립했다. 2005년 법인 전환하며 공장을 현재의 위치로 확장이전 했고, 꾸준한 매출 증가와 성장으로 사업 합리화 필요성이 커져 2013년 충북 오창에 자회사인 ㈜경인EPS를 설립했다.

 

 

 

폐업하면서도 거래선 Line 챙긴 책임감

 

EPS는 재질 특성상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인천이피에스도 화재로 인해 여러 번 위기를 맞았다. 인천에 있을 때 한 번, 오창에 있는 ㈜경인이피에스 공장에서 지은 지 3년만에 한 번, 현재 공장에서도 2006년과 2019년, 원료에 가스가 들어가 가스 정전기로 인한 화재가 있었다. 이렇게 화재가 날 때마다 나 대표는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소방 안전 설비를 해놓고 소방서에서 점검하고, 현대화학이나 LG화학의 안전팀에 의뢰해서 점검을 하기도 했지만 완벽한 화재 예방을 하기는 어려웠고, 이 부분이 계속 노력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나 대표는 이렇게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쳐도 가족들에게는 몇 개월이 지나 일이 해결된 후에나 알려줬다. ‘나쁜 건 내 몫’이라는 생각으로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이렇게 위기 때마다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딸이 붙여준 별명이 ‘오뚝이’이다.

 

나 대표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은 15억원 정도의 부도를 맞은 것이었다. 나 대표는 이때를 “199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르네오 가구에서 6억을 부도 맞았고, 1993년도 구정 휴무 들어가기 전날 구정 선물로 후지카 대원전기에서 3억 5천의 부도를 맞았고, 명성전자에서 2억원 등 다 합쳐 15억원 정도의 부도를 맞았지요”라며 덤덤히 말했다. 당시 보르네오 가구의 경우 경영상으로 도저히 버티기 어려워지니까 거꾸로 모든 자재를 더 주문해 놓고 부도를 냈다. 은행 관리 한 번, 법정 관리 한 번, 두 번 들어가면서 납품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많이 당했다. 나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몇 년 후에 받기는 다 받았지만, 그 당시에 사람이 피가 돌아야 되는데 끊겨 있는 상태에서 나중에 돌면 이게 살아나는 게 아니잖아요” 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부도를 맞고는 도저히 견뎌낼 방법이 없어 폐업을 했다. 폐업을 하면서 당시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거래선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우리 회사가 5월 30일자로 폐업할 예정이니, 금형을 가져가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해 달라”고 연락했다.

 

비록 어쩔 수 없어 폐업을 하지만 고객들 라인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 이런 마음을 알고 어떤 거래선에서 “한 3년 동안의 월급과 생활비를 줄 테니 계속 작업을 해 달라”고 제안해 왔다. 또, 원료회사에서는 “원료를 공급해 드릴 테니 계속하라”고 권유했다. 한 달 가까이 손을 떼고 막연하던 차라 은행의 동의 하에 작업을 재개했다.

 

그렇게 신용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사업을 재개하던 중 IMF가 터지면서 거래 은행의 지원을 받아 남동공단에 경매로 나온 공장을 샀다. 부도난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신용을 얻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출 지원을 받아 600평짜리 공장을 샀다. 일이 늘어나면서 2005년 4500평인 현재 부지로 이사했다. 차츰 매출이 늘어나면서 2013년 충북 오창에 5000평 규모의 ㈜경인이피에스를 설립했다. 2022년에는 충북 진천에 1만평 부지의 3공장을 지을 정도로 착실하게 성장을 거듭했다. 각종 화재와 부도의 아픔을 딛고 사업을 확장해 이제는 국내 100여개 스티로폼 업체들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했다. 친환경 경향에 따라 성장이 멈춘 국내 시장에서 이뤄낸 대단한 성과다. 2023년 3개 공장 합해서 220명의 종웝원들이 55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나 대표는 “이런 꾸준한 성장을 인정받아 경기도에서 일자리 창출 우수업체 선정도 몇 번 받았어요. 우리가 대출 부채 비율이 높은데도 은행에서 볼 때는 신용이 좋은가 봐요. 나는 참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갖고 있는 내부적인 실력이나 자산보다도 성장성을 많이 봐줘서 대출을 요청하면 해 주고, 지금도 공장 하나를 또 짓고 있어요. 옥수수를 원료로 생분해성 비닐을 만들어서 농사용이나 식품용에 사용되는 제품을 준비 중이죠”라며 감사하다는 투로 말한다.

 

 

  © 화성신문



2022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

 

나 대표는 50여 년 전 스티로폼 업계에 발을 들인 후 최고경영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끊임없는 혁신을 일궈냈다.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환경친화적 기업 육성을 목표로 2013년 제2의 도약을 위해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경인이피에스를 설립했고, 2021년 12월 기준 외형 200억원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경인이피에스는 2022년 진천공장을 설립해 가동하고 있다. 정체된 사업분야이지만 회사는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인천이피에스와 경인이피에스 오창 공장, 진천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해 전 사업장의 내실과 안정을 다져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대·최고의 스티로폼 종합제조업체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각오다. 이런 성과들을 인정받아 2022 대한민국 CEO 리더십 대상을 수상했다.

 

인천이에스피에는 친가, 처가, 고향 선후배가 없다. 철저히 인맥을 배제하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을 맡기고, 실적에 따른 보상을 확실히 해 준다. 나 대표가 참여하는 공식적인 회의를 하지 않고 담당자의 자율에 맡기는 편이다. 공식적인 회의를 하면 자칫 대표의 일방적인 잔소리로 흘러가지 않을까 염려해서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한 직원은 1년에 두 번이나 승진해 공장장이 되기도 했다. 자녀들 학자금을 지원해 주는 등 직원들의 복지에도 많은 배려를 해서 장기 근속자가 많다.

 

 

 

봉사는 나의 행복

 

나 대표는 봉사를 통해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내가 행복해지므로 ‘봉사는 나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을 통해 2013년 10명의 아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봉사인 만큼 많은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해 후원 아이들을 늘려갔고, 현재 40명의 국내외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2015년부터는 화성 관내 중·고등학생 8명을 대상으로 매달 20만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한 후원금이 2023년 한 해에만 4000만원 정도 된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경험이 있어, 이런 아이들에게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우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나 대표는 “후원을 통해 꿈을 되찾았다는 아이들의 편지를 받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남은 평생을 봉사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

 

2018년 화성시자원봉사센터 화성시사회공헌기업인협의회에 가입, 매년 겨울 김장봉사, 장애인 야외활동 지원 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고문으로서 많은 후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힘든 현실에 꿈을 포기하는 이웃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힘을 보태겠다고 한다.

 

나 대표는 특히 여행을 좋아해서 연간 자동차 주행 거리가 8만km 정도나 된다. 네비게이션을 틀지 않고도 전국 어디든지 다닐 정도이다. 이순신 포럼에서 함께 갔던 한산도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특히 더 좋아한다. 전국 각지에 있는 둘레길도 좋아한다. 골프는 보기 플레이어인데 최근 파크 골프를 시작해서 재미를 붙이고 있다고 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게 꿈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해라’,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되 차선책은 항상 준비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는 나 대표는 앞으로 회사를 ESG 경영을 실천하는 친환경기업으로 키우고 부채비율을 낮춰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개인 차원에서의 봉사 활동이 아닌 기업 차원에서의 봉사활동을 지속적으로 하려는 생각에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가슴에 새기며, 늘 묵묵히 자기 책임을 다하는 나 대표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일할 때. 소주 한잔할 때, 봉사할 때라고 한다. 늘 건강하게 세 가지를 즐기며 행복한 그의 모습이 오래 지속되기를 응원한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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