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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78]
당신을 지켜줄 제3의 공간이 있는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12/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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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세무사인 L 씨는 주말이면 자동차를 몰고 바닷가를 여행했다. 그때마다 쌓인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세무사 일이라는 게 돈 문제로 씨름해야 하고, 디테일한 데 신경 써야 하고,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데, 여간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덧 바닷가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었으면 하고 꿈을 꾸게 되었다. “파도 소리 들으면서 마음껏 노래도 하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 그는 서해로, 남해로, 동해로 다니면서 이곳저곳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해 해변에서 유명 인사가 들렀다는 커피숍엘 가게 되었다. 그날따라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커피숍 창가에 있는 늙은 해송 잎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그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바로 이거야!” 그는 외쳤다. 

 

그는 부인과 함께 내친김에 매물을 찾아 나섰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수원에 사는 그가 찾아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수원에서 1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L씨는 그렇게 해서 꿈꾼 지 10년 만에 화성시 어느 어촌 마을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게 되었다. 그는 주말이면 여지없이 그곳에 내려간다. 처음에는 집 가꾸느라 일만 했다. 그런데 땀 흘리고 일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어촌 주민들 하고 사귀면서 낚시도 즐겼다. 기타로 시작했던 악기는 드럼까지 장만하게 되었다. 마음껏 두드려도 뭐랄 사람이 없었다. 결국 요트도 장만했다. 이제는 요트를 타고 제법 멀리 가서 낚시하고 또 거기서 한참을 보내고 들어온다.

 

식구들하고 지내기도 하고 친지를 초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반 정도는 혼자 간다. 그래도 전혀 외롭지 않다. 혼자 할 일도 많지만, 거기 주민들 하고 술 한잔하고 노닥거리는 게 즐겁다. 거기서 주말을 보내고 오면 머리와 마음이 말끔히 청소된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깨끗한 상태로 다시 일을 할 수 있다. 찌꺼기 없이 그릇을 다 비웠으니 뭐든지 채울 수 있다. 능률 100%다. 

 

가정을 제1의 공간이라고 하고, 직장을 제2의 공간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이 두 공간을 왔다 갔다 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공간을 제3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만을 위한 제3의 공간이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퇴근한 후 모임도 가야 하고 접대도 해야 하고 해서 제3의 공간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건 제3의 공간이 아니다. 제2의 공간의 연장이다. 어쩌다 가는 여행지도 제3의 공간은 아니다. 제3의 공간은 가정이나 직장같이 일상적인 공간이다. 그러나 그곳은 업무 부담도 없고, 잔소리도 없고, 신경 쓸 일도 없고, 그냥 편하게 나 자신을 위해 머물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제3의 공간은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1970년대 후반 도시에서의 인간 행동 패턴을 연구하다 찾아낸 개념이다. 건전한 사회에는 이런 제3의 공간이 있더라는 것이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한다. 동네 공원이 될 수도 있고, 광장일 수도 있다. 술집, 커피숍, 동무실, 빨래터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요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특별한 격식 없이 누구나 쉽게 관계를 맺고, 하지만 서로 부담을 주지 않는 그런 장소여야 하고 그런 분위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올든버그 교수는 이런 공간이 개인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정이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민주시민의 역량을 함양하는 데도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도시개발에서 이런 제3의 공간이 생성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있다고 개탄했다. 

 

올든버그 교수는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공동체적 제3의 공간을 강조했으나, 상업주의를 선도하고 있는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 그런 공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시대라고 규정하고, 자신들이 가정이나 직장과는 다른 아주 멋진, 그리고 편안한 공간 체험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카페, 쇼핑몰 같은 상업시설을 멋지게 디자인하여 사람들을 유인한다. 많은 사람이 이제는 그런 곳을 제3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유가 있으면 L 씨처럼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동네 벤치도 좋고, 동네 카페도 좋다. 요는 당신 자신만을 위한 제3의 공간을 갖는 것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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