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하면 돈이 안 되거든요.” 간병요양센터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 방문요양보호사를 요청했을 때 한결같이 들은 대답이다. ‘노환으로 인한’이라고 의사가 진단한 담도암 말기와 알츠하이머증후군 병행 환자인 엄마는 극도의 낯설이로 요양병원 적응도, 요양보호사 전담 재가돌봄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모든 일상을 작파하고 자식으로서의 마지막 도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엄마의 간병을 전담하다시피 한 지 석 달째 접어들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없어도 의사가 시키는 대로 말기암의 무시무시한 통증은 마약 펜타닐 패치와 구강정을 동원하여 관리를 하고, 복수가 차올라 믹서기에 간 과일 주스 몇 모금만으로 배부르다며 평소 좋아하시던 고기나 해산물로 죽을 쒀서 들이밀어도 비리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뱉어내시는 거부반응 같은 건 힘들지 않다.
진통 패치를 교체하는 3일의 간격에 맞춰, 일어설 수도 없이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진 엄마 몸을 곧추세워 가며 씻겨드리는 일도 어릴 적에 우리 8남매의 많은 형제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박박 밀어주던 엄마의 고된 세신의 노동을 떠올리며 오히려 콧등이 시큰해지고 은공을 갚을 기회다 싶어 차라리 감사한 노동이다.
하지만 이 돌봄노동이 하루이틀만 하고 말 일은 아니어서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심사숙고 끝에 장기요양보험 인증 기관인 노인요양센터들에 전화를 한 것이다. 엄마의 알츠하이머 진단 직후 신속하게 요양보험 인정 신청을 해서 등급을 받은 상태. 다른 건 다 괜찮고 목욕시키는 날 하루나 이틀만 도와줄 보조적인 요양보호사가 필요하다 했더니 다들 주 5일, 혹은 3~4일 이상을 이용해야지 그렇게 하면 돈이 안 된다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다.
돈이라니. 우리 사회가 인간에 대한 마땅한 존중과 예의로 도입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던 요양보험 제도로부터 저 자본의 직설적인 단어를 노골적으로 듣는 순간, 마치 어떤 외설스런 단어라도 접한 듯 움찔하고 말았다.
사실 병원의 ‘노환으로 인한’이라는 질병의 조건부터 문제적이었다. 엄마에 내재한 막강한 생명 에너지와 의지는 아직도 펄펄 살아 있기만 한데, 의학은 노환이라는 이유로 어떤 치료도 의미없음이라고 판결 망치를 땅땅 내리쳤다.
그런데 치료가 불가능, 아니 불필요하다는 질병이란 가설을 기정 진리로 확정지어 놓고서도 병원은 계속해서 뇌신경이라든가 고혈압. 심혈관, 당뇨 등 노인성 질환에 대한 각종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한다.
근본적인 ‘노환의 불치병’을 독한 마약 진통제로 관리함으로써 몸과 정신은 병의 진행보다 빠른 속도로 망가져 가고, 하나씩 망가질 때마다 온갖 검사와 약 처방 치료 항목을 자꾸 발생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고령화 사회의 노인은 의료시장 자본시스템의 상품으로서 아주 유효하고 막대한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되어 가는가 싶다. 좀 극단적으로 봐서 우리의 세계는 의료자본과 제약회사의 커넥션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게 사실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2025년이면 우리 사회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하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게 되는 시간이다.
우리 대부분은 왜 일생 가족을 돌보며 헌신하신 부모가 늙고 병들면 가족들로부터 격리하여 병원이나 요양원의 사업이나 시장에 노환의 상품으로 치워놓을 수밖에 없어야 되나. 노환이라는 불치병을 돈이나 시장의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과 가족 사랑의 ‘시스템’ 안에서 끝까지 돌봄 받을 수 있게 하는 좀더 정교하고 충분한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육아휴직제처럼 간병휴직제라든지…. 간병돌봄 노동의 제공자이자 결국엔 그 대상이 될 우리 모두의 문제가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