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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화성 6] 평범한 것들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김영주의 시조 ‘보통리 저수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11/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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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민 시인/ 화성작가회의 사무국장     ©화성신문

화성시 정남면에는 보통리라는 마을이 있다. 농토가 넓고 큰 보가 있다 하여 보통이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보통리 북쪽에는 산책로 길이만 6.3km에 달하고, 넓이로는 어림잡아 보통리 면적의 1/10에 달하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그런데 향토사전이 알려주는 마을 유래를 생각하며 보통리의 한자를 살펴보면 좀 의아해진다. 넓은 보가 있는 동네라면 응당 마을 이름이 ‘洑通’이어야 할 테지만, 실제 표기는 ‘普通’이기 때문이다.

 

후자의 보통은 의미가 꽤 다양하다. 일단 한자의 조합을 보면 넓게 통한다는 의미가 보인다. 보통이 명사로 쓰일 때는 “특별하지 않고 흔히 있어 평범함”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부사적 용법을 더하면 “일반적으로” 또는 “흔히”라는 뜻이 추가된다. 그러니 보통이라는 말에서는 뚜렷한 개성도 주목할 만한 특징도 찾기 어렵다. 그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고만고만한 평범함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김영주 시인이 ‘보통리 저수지’를 쓰게 된 것도 아마 ‘보통’이라는 단어가 지닌 어떤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본래 시인들은 언어에 예민한 존재들이니 ‘洑通’을 기대했던 예상이 보기 좋게 어긋난 상황에서 시인은 새삼 ‘普通’이 주는 화두를 사유하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수인선 협궤 열차 철길을 뛰쳐나와

 

녹슨 다리 파묻고 모래밭에 앉아 있다     

 

선술집 퇴물기생처럼 우두망찰 앉아 있다 

 

 

 

기왕에 나려거든 보란 듯이 빼어나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보통이라니

 

보통리라니    

 

오지게 봇물 터뜨려 울음 한번 못 토하고  

 

 

 

오가지 못하기는 너나 나나 한 가지     

 

발목 잡힌 연분끼리 통정이나 해보자고

 

해거름 피를 토하며 서로를 달래고 있다

 

- 김영주, ‘보통리 저수지’ 전문

 

 

 

이 시의 배경은 제목처럼 보통리 저수지이다. 무슨 연유였는지 화자는 노을이 지는 저수지 앞에서 ‘오지게 봇물 터뜨려 울음 한번 못 토하고’ 가슴 가득 차오른 울분을 삭이며 ‘우두망찰 앉아’ 있다. 울음조차 쏟아낼 수 없었던 그 사연은 1연에 제시된 ‘수인선 협궤 열차’와 ‘선술집 퇴물기생’이라는 비유에서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둘 다 이제는 쓸모를 다한 존재이고, 사실상 보통에도 못 미치는 존재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런 화자에게 보통리 저수지의 ‘보통’은 앞서 제시된 ‘수인선 협궤 열차’와 ‘선술집 퇴물기생’의 비유와 동일시된다. ‘기왕에 나려거든 보란 듯이 빼어나지’ 겨우 ‘보통이라니/보통리라니’ 하고 타박하며 화자는 자신의 못난 설움을 전이시킨다. 그래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해거름 피를 토하’듯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서로를 달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보통리 저수지는 평범함을 탓하며 크게 울어볼 만한 울음터, 곧 호곡장(號哭場)이 된다.

 

 하지만 어디 보통이 쉬운 일인가. 보란 듯이 빼어난 것 하나 없지만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아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니 보통을 서러워만 하지 말고 크게 잘난 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생에 감사할 일이다. 가끔은 하찮은 것들의 위대함도 생각해볼 일이다. 보통은 실패나 모자람의 동의어가 아니다. 비범함은 언제나 평범함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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