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은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더라도 입추만 지나면 더위가 꺾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나 요즘 여름은 입추가 지나서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도 없더니 가을을 재촉하는 듯한 비가 내리면서 비로소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을이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정신건강의 계절이기도 하다. 9월 10일은 자살 예방의 날이고 10월 10일은 정신건강의 날이기 때문이다. 두 기념일은 세계보건기구인 WHO에서 제정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따르고 있다.
WHO에서는 2023년도 정신건강의 날 슬로건으로 “우리의 마음, 우리의 권리”라고 선포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신적인 건강함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당연한 권리여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세계시민의 건강을 다루는 국제기구에서 정신건강의 보편성과 권리를 언급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정신건강의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정신건강은 눈에 띄는 결핍이 아니기 때문에 소홀할 수 있는 측면이다. 발에 무좀이 생기면 피부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지만 불면증이 생기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보수적일 수 있어서 정신질환이 발생했을 때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정신질환을 질병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질병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정신질환이 발생한 것은 불효를 했기 때문이라든지 치매가 생긴 것은 젊어서 외도를 했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 편견이 생기고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낙인찍기도 한다.
WHO가 제시하고 있는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정리해 보자.
첫째 좋은 정신건강은 사람의 복지와 건강에 있어서 매우 필수적인 요소다. 정신건강이 좋으면 어려움을 잘 대처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도 잘 지내게 되며 인생 전반에 걸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두 번째, 정신건강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세 번째, 누구나 양질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네 번째, 정신건강 상태는 청소년의 웰빙에 중요한 위협 요인이 된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의 정신건강 상태, 특히 우울증으로 인한 어려움이 대두되고 있으며 청소년 7명 중 1명꼴로 어려움을 겪는다.
다섯 번째, 정신건강을 둘러싼 편견과 낙인,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나서야 한다. 정신건강 상태로 인해 학교나 직장에서 차별받고 낙인찍히지 않아야 한다.
여섯번째,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거, 교육, 소득 지원과 같은 수준의 양질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일곱 번째,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지역사회 내 양질의 정신건강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중차대한 이슈이다. 특히 생애 초기 양질의 정신건강 서비스는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우선순위가 높은 정책이 되어야 한다.
여덟째, 정신건강을 보편적인 인권으로 인식하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할 줄 알게 된다. 자신의 인권을 알게 될 때 타인의 인권도 인식하게 된다.
아홉 번째, 모든 사람은 모두 다르고 모두 훌륭하다. 그러나 정신건강에 대한 권리는 동일하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인식하고 정신건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권리이며 그것을 위해 행동할 때에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며 인생 전체에 걸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정신건강에 대한 메시지를 결실의 시간인 10월에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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