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조영호 리더쉽인사이드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71]
삼성의 신경영, 변혁적 리더십의 표본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10/23 [09:08]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1993년 7월 7일. 삼성그룹 임직원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들은 이날부터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해야 했다. 소위 7·4제가 전격 실시된 날이다. 그때까지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통상 8시 반쯤 출근했고 퇴근은 7시가 넘었었다. 삼성인들도 대체로 이런 시간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7시 출근하고 4시에 퇴근해야 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일 많이 하기로 유명한 삼성이 이제 직원들을 7시부터 부려먹는구먼. 4시에 퇴근하라고 한다지만 누가 그렇게 일찍 퇴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7시 출근, 4시 퇴근은 빈말이 아니었다. 삼성의 총수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챙겼다. 이 회장은 오후 4시 무작위로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에 퇴근하지 않고 전화응대를 하는 사람에게 대기발령을 내버린 것이다. 4시 이후 초과시간 근무도 허용되지 않았다.

 

7시 출근은 힘들기는 하지만, 좀 부지런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4시 퇴근이 문제였다. 아직도 해가 훤하게 떠 있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삼성인들은 난감했다. 너무나 긴 시간이 갑자기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가면서 그들은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와 저녁 시간에 골프를 배우기도 했고, 학원에 등록하여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대학원 진학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극장에 가기도 했다. 삼성 계열사가 있는 지역에서는 이런 삼성인들의 변화된 시간에 맞춰 식당, 학원들이 영업시간을 변경했다.

 

삼성을 개혁하려는 이건희 회장의 발걸음은 1993년 초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2월부터 경영전략회의를 해외에서 열기 시작했다. 2월에는 미국 LA에서 전자제품 비교평가회의를 열었으며, 3월에는 동경에서 사장단 회의를 가졌다. 런던, 오사카, 프랑크푸르트에서도 회의가 열렸다. 삼성의 임원들에게 변화하는 세상을 현장에서 보게 하고 위기의식을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1993년 한 해 동안 사장단과 임원들 무려 1,800여 명이 이러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를 주재한 이건희 회장은 비장했다. 회의 시간이 평균 8시간 이상이었다. 최장 16시간까지 마라톤으로 진행된 때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햄버거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야 했다. 회의를 주재한 이건희 회장의 스타일은 그야말로 파격적이었으며, 회장을 평소에 가까이 접했던 사람도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경영과 조직에 대한 느낌을 솔직히 토로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정없는 질타를 가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1993년 6월 6일부터 24일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열린 임원 회의는 참으로 비장했다. 프랑크푸르트를 회의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통독 후의 여러 가지 변화 모습과 유럽통합 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세기말적 변화의 흐름을 삼성의 임원들이 직접 확인하고, 이 자리에서 미래 삼성을 위한 구상을 함께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회의에서 신용과 이미지를 파는 글로벌 시대에서 제품의 품질은 경쟁력의 가늠자이며 그룹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므로, 단 한 개라도 품질이 불량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회사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요, 경영의 범죄행위’라고 역설했다. 이건희 회장은 공장 가동을 중단해서라도 그리고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대책의 수립을 통해 금년 내에 품질을 세계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도록 하라고 강하게 지시했다.

 

“삼성은 이제 불량 생산을 범죄로 규정하고, 양 위주의 경영을 과감히 버리고 질 위주로 간다”는 선언을 했다. 이게 바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고, 삼성 신경영의 선포였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삼성 사람들이 알아서 변해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알아서 하세요” 하면서 뒷짐 지고 있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이 ‘나부터 변해야겠다.’ ‘변화는 일상의 문제다’고 느끼게 할까가 고민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7·4제였다. 이 조치를 통해 삼성은 a부터 z까지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 유행했고 말이다.

 

삼성은 이런 신경영을 통해 일찍이 스스로 개혁을 한 덕분에 IMF 외환위기도 무난하게 극복하고 세계 초일류기업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제 신경영이 시작된 지도 30년이 지났으며, 이를 주도했던 이건희 회장이 서거한 지도 3년이 지났다. 이건희 회장은 그냥 사업가가 아니라 변혁을 만드는 리더였다. 삼성 신경영은 우리가 배워야 할 변혁의 표본이다. 

 

choyho@ajo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