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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EO Interview 최선경 SK Engineering 대표]
무대뽀 정신으로 기존 업계에 도전장 내밀어
토목·건축·설비·패키지 용기 시스템 One Stop Service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3/06/12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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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성신문

 

 

요즘 산업계 곳곳에서 많은 기업들이 급격한 원자재가 인상, 높은 금리, 높아지는 인건비, 인력 수급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는 가운데, 창립 1년 6개월밖에 안 된 새내기 기업으로 패기있게 도전하고 있는 SK Engineering의 최선경 대표를 그녀의 회사에서 만났다. 이 업계에서는 20년간의 직장 생활에서의 처절할 정도의 철저함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SK Engineering은 2021년 12월에 창립해 이제 갓 1년 6개월이 지난 새내기 기업이다.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30대 후반으로 매우 젊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업에 젊은 직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함께했다. 2022년 9명의 직원으로 2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차 전지, 수소에너지, 제약, 화학 분야의 설비에서 사용하는 압력용기, 열교환기, 반응기 시스템, 교반기, 건조기, 누체필터, Skid Mounted Package, 플랜트 설비 등을 100% 오더 메이드로 설계, 제작, 시공, 유지 보수까지 진행한다.

 

특히 단순히 저장용기(탱크)뿐 아니라 탱크가 설치될 지반의 토목, 건축까지 One Stop으로 설계, 제조, 시공 Service를 제공한다.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토목, 건축, 설비, 패키지 용기 시스템을 나누어서 각각 발주해야 했던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주는 토탈 서비스가 강점이다. 소재로는 Stainless, C.S, 티타늄, 니켈, 모넬, 하스텔로이, 인코넬, 지르코늄을 사용한다.

 

SK Engineering은 업력이 많은 경쟁사들과 겨루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ISO 인증, 기술평가 우수기업 인증, 해외 수출에 필요한 아메지 제조 인증, 해외에서 A/S를  할 수 있는 자격 인증 등을 받아 기본 인프라를 확보하는 한편, 직원들의 교육에도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당일에도 상공회의소 교육 등으로 세 명이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 화성신문



 

20년 직장 벗어나 새로운 도전

 

최 대표는 SK Engineering을 창립하기 전에 반도체 장비용 탱크를 설계, 제작하는 회사에서 20년간 근무했다. 입사 당시 직원 3명이었던 회사를 직원 70명인 회사로 성장시킨 장본인이었다. 회사 내에서는 전권을 위임받아 사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승승장구 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린 이유가 궁금했다. “아버지처럼 따르던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그 회사에 있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2세 경영 체제로 바뀌면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고, 한 틀에 묶여 있기보다는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죠”라고 답한다.

 

최 대표는 회사를 만들면서 직원들이 여가 생활도 누릴 수 있게 하고, 복지도 충분히 해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적이지만 마진율이 높은 쪽을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00% 오더 메이드, 사용처로부터 직접 수주, 또는 플랜트 수주로 영역을 한정했다. 또한 직원들과 모든 것을 오픈하고 가족처럼 서로 믿고 기댈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꿈꿨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최 대표는 사원들과 공통 이메일을 쓴다. 그래서 모든 사원들에게 회사의 수주 관련 모든 사항이 오픈돼 있다. 솔직하게 서로 소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일단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하자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준공된 지 3일 된 껍데기밖에 없던 건물을 매입하고, 현장 일을 해왔던 경험으로 전체 구도를 잡고 준비해 나갔다. 근 3개월을 혼자 준비했고, 이전 회사의 직원들 몇몇이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마친 후 합류했다. 최 대표의 일하는 자세를 봐 왔던 분들이 초창기부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즐겼던 최 대표는 이전에 일했던 업계에서 ‘일에 미친 여자’로 잘 알려져 있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출근한 적도 있고, 그중 3분의 1은 날을 샐 정도로 미친 듯이 일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이유를 묻자, “그게 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조금만 틀어져도 오너와 직원들이 마이너스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심리적으로 억압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답한다. 대담한 성격인데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참지 못한다.

 

 

 

독특한 사내 문화

 

SK Engineering에는 독특한 제도들이 몇 가지 있다. 전체 직원이 7시 반 출근, 4시 반 퇴근한다. 이것은 출퇴근 시 도로가 많이 막히는 사정을 감안해 직원들이 만장일치로 정하고, 최 대표가 승인해서 결정한 것이다. 길에 쏟는 시간을 줄이면 체력 관리도 되고, 일에도 도움이 되고, 여가 시간도 확보할 수 있어 모든 직원이 선호한다. 일의 특성이 특별히 다른 회사와 실시간으로 연계된 일보다는 전 직원이 같이 소통해서 같은 시간에 일하는 것이 효과적인 측면도 있다.

 

독특한 회식 문화도 가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평일 점심 때부터 회사 일을 접고 회식을 한다. 근무 시간 중의 회식이라서 빠지는 사람 없이 전원 참석한다. 전체 단합을 위해 한두 번은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동탄으로 건너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영화를 보는 등 재미있게 진행한다. 한 번은 한 달 회식을 건너뛰고 아침부터 회식을 했다고 한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한 경험으로 어떻게든 직원들의 고충을 덜어주려 노력한다. 가족 수당을 신설하고, 관내, 관외로 나누어 주유권을 주고, 화성 디에스 병원과 연계해서 전 직원 건강검진도 하고, 운동비도 지원하는 등 소소한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쓴다. 공장 뒤편에는 카라반을 설치해 직원들이 필요할 때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일 큰 어려움은 자금 부족 문제이다. 적은 자본금을 가지고 공장 건물 구입 후 빈 공간에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는 데도 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갔다. 한번 공사하면 다 만들어서 설치하고, 마지막 시운전이 끝나야 잔금이 들어오다 보니까 자금 회전율도 낮다. 외부 자금을 쓰려고 해도 아직 업력이 짧아 재무제표가 나오지 않다 보니 서류 제출을 하지 못해 언감생심이다. 필요한 인증들을 받는 데도 몇천만원씩 들어간다. 이때 제일 기댈 수 있는 게 원청이었다. 원청에게 “나 돈 없어 빨리 내놔. 나 이 돈 없으면 마무리 못해” 이런 식으로 애교 반, 협박 반으로 사정해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언제든 문제가 있으면 현장에서 안전모 쓰고 일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을 보아 왔고, 소문으로 듣고 지켜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들의 계약금들이 들어오면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6월이 지나 재무제표가 나오면 그걸로 외부 자금을 융통해 풀어나갈 생각이다. 연말쯤에는 큰 프로젝트들이 두세 개 정도 시행될 예정이라서, 내년부터는 자금 사정이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무대뽀 정신

 

최 대표의 어릴 적 꿈은 프로그래머였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전자계산기과가 있는 공고로 진학했다. 같은 학년에 여학생은 최 대표 포함, 여섯 명밖에 없었는데, 3년 내내 전교 1등을 했다. 최 대표는 명문대로 진학할 것이라는 학교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능시험을 보지 않고 바로 사회에 진출했다.

 

학교 다니면서 모아둔 쌈짓돈으로 지하에 간판도 없는 전자오락실을 차렸다. 하루 20만원만 벌면 성공이라고 했는데, 한 달에 3천만원을 벌었다. 특유의 사업 감각과 끈기가 빛을 발했다. 6개월만에 어머니에게 집을 사드리고, 일하는 사람을 더 데려다 썼다. 돈이 생기자 중국에서 들어오는 컨테이너 떼기 유통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락실은 관리자를 믿고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어 이 관리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유통업도 손 놓고, 오락실도 3천만원의 빚을 떠안은 채 사업을 접었다. 한 달에 3천만원씩 집에 가지고 들어갔었는데, 1년 반만에 3천만원의 빚은 떠안게 됐다.

 

최 대표는 이를 갚기 위해 대리운전과 고속도로 톨게이트비 계산하는 일을 병행했다. 대리운전도 타고난 눈썰미와 수완으로 남들보다 훨씬 더 벌 수 있었다. 늦은 시간 돌아오기가 어려울 때면 외곽에서 들어오는 택시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지역별 차 넘버를 보고 목적지와 같은 방향의 택시를 저렴한 가격에 타고 오곤 했다. 그렇게 악착같이 해서 1년만에 그 빚을 다 갚았다. 

 

빚을 다 갚자 그동안 미뤄두었던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일을 하면서 학원에서 건축 CAD를 배웠다. 이때 학원 원장 선생님의 소개로 이전 회사의 회장님을 만나 취업을 했다. 회장님은 운전도 하고, 현장도 나가고, 물건도 사고, CAD도 그리고, 경리 업무까지 해 주는 만능맨을 원했다.

 

이때부터 최 대표는 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해 만능맨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쏟아 부었다. 회장님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수주를 더 받을지 말지, 사람을 더 뽑을지 말지 다 알아서 처리해 나갔다. 한 번은 휴가철에 수주가 들어 왔다. 정상적으로 받을 수 없는 수주인데, 최 대표는 휴가 간 사람 한 사람만 이틀 일찍 복귀시켜주면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여 본인은 휴가도 못 가고 몇 사람분의 일을 해내기도 했다. 

 

한 번은 컴프레셔 인증 관계로 업무 처리하다가 안전보건공단에 있던 어떤 사람에게 “쥐뿔도 모르면서 왔냐?”라면서 서류를 집어던지는 모욕을 당했다. 

 

이에 최 대표는 이거 배워야겠다라고 결심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원래 98학번이어야 되는데 05학번으로 들어간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대를 다니고 새벽에는 어학원에 다니는 등 몸을 돌볼 틈이 없었다.

 

당시 그 학교 교수님이 우리나라 기계제도 명장이셨다. 그분께 허드렛일을 하면서 가르쳐 달라고 졸라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컨설팅 업체에도 “나 이런 거 좀 알려주세요” 하면서 악착같이 공부했다. 안전보건공단에서 서류를 집어던지셨던 분이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숨 쉬는 동안 뭐든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생활하던 중 혈변이 나온 것을 보고, 일이 좀 한가해지면 검사를 받아야지 하다가 1년이나 더 늦게 검사를 받고, 2012년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 후 수술 일자가 정해지고 난후 앞날을 알 수 없어서 아들과 에버랜드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몇 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나 부러지고 깨지고 했는데도 아침에 꿰매고 바로 회사에 출근할 정도로 일에 최우선을 둔 삶을 살았다. 다행히 대장암은 6년 뒤 완치 판정을 받았다.

 

최 대표의 힘은 호기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전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얘기해요. 이 친구들한테 나 이거 모르는데 좀 알려 줄래? 그런 걸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어렸을 때부터 하나하나 시작했지요. 안녕하세요는 못 했어도 가르쳐 주세요는 철판 깔고 했어요”라고 고백한다.

 

아니면 한 번 하기로 결심하면 끝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집중력일까? 

 

“일단 숨 쉬는 동안 뭐든 열심히 하고 사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지금도 좀이 쑤셔서 5시간 이상은 잠을 못 자요”라고 한다. 

 

최 대표는 “이 회사를 몇 년 안에 국내 일류 업체들과 같은 라인에 설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고, 그 바탕 위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직원들을 구축해서, 최 대표 없이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이렇게 거침없이 성장하는 회사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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