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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새로운 도시와 시민 위한 문학관 만들 것”
문학관의 ‘관’을 무덤 속의 ‘관’이 아닌, 살아있는 관계 대명사로서의 ‘관’으로 전환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3/03/2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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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작 홍사용문학관 전경.

근대 낭만주의 문학과 신극운동을 이끈 노작 홍사용 선생의 문학사적 업적을 두루 발굴하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된 노작홍사용문학관은 2010년 3월 개관 이래 시민 모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이자 문화충전소로 자리매김해 왔다.

 

노작홍사용문학관은 계간지 『백조』 복간, 정본 전집 발간, 전국 단위의 창작 단막극제 개최, ‘노작출판학교’ 개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절에 연극제를 대신해 진행한 ‘낭독극’. 스마트폰을 활용한 청소년 시낭송 축제, 독립서점 인문학 강좌 지원 등 다양한 활동으로 전국 100여개 문학관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문학관으로 전국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노작 홍사용 선생의 개결한 문학정신과 성과를 복고창신, 오늘의 삶에 착근시킴으로써 폭넓은 공공문학의 가능성을 화성시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노작 홍사용 선생의 ‘눈물의 왕릉’을 지키는 능참봉을 자처하는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장을 만났다. 진지하면서 상상력이 풍부하고 실험 정신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손 관장은 2018년 7월 2대 관장으로 취임해 올해 세 번째 임기를 맞고 있다. 

 

 

 

‘백조’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계간지로 복간

 

그동안 화성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해 왔던 주요 활동들에 대해 묻자, 가장 먼저 2020년 12월에 있었던 ‘백조’ 복간을 들었다. 우리 문학사의 선구적인 동인지지만 3호까지만 나오고 단명한 ‘백조’라는 잡지를,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계간지로 복간해 당시 JTBC를 포함한 많은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고, 백여곳 넘는 전국 문학관 중 유일하게 잡지를 내면서 문학인들이 특히 반가워했다. 현재 ‘백조’는 십 년 넘게 동결된 문인들의 원고료를  전국 최고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손 관장은 “통계청에 따르면 시인들은 수녀, 신부에 이어 가난한 직업군 3위에 처해 있습니다. 노작 선생은 화성에 있던 1500석의 전답, 현재 시가로 1500억원이나 되는 전답을 팔아 잡지 내고, 연극 운동하는 데 다 썼죠. 그런 노작 선생의 마음을 화성이 모르면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래서 화성에서 이 가난한 작가들의 원고료를 좀 올려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우리 문학관이 전국 최고의 원고료를 줍니다. 10년 동안 동결된 출판사들의 원고료를 자극해서 올리기 위함이죠. 이런 소문이 나니까 ‘백조’에 전국에서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발표를 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유명 작가들과 함께 한 공간에서 작품 발표를 한 우리 지역 작가들의 자존감이 엄청 높아졌고, 그 작가들의 창작 활동으로 연결돼 굉장히 뿌듯하죠”라고 설명했다.

 

손 관장은 문학관에 온 첫 해인 2018년, 인구 백만을 눈앞에 둔 화성시에 출판사와 책방이 극소수라는 걸 알고 첫 번째 사업으로 ‘노작출판학교’를 열었다. 인구 백만이라면 단행본 출판사가 100개 정도는 되어야 자생적 담론 활동을 주체적으로 하는 골목 인문학이 생겨나고, 독립 서점들을 통해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문화가 저절로 생겨난다고 믿는 까닭이었다. 국내 최고의 강사진과 한국출판진흥원 원장이 함께해 총 20강을 진행했다. 안산과 용인, 수원, 오산, 안성, 평택 등 경기남부 각지에서 사람들이 잡지 창간, 문학 출판사의 꿈을 안고 모여들었다. 그렇게 해서 첫 해에 두 곳의 출판사와 한 곳의 독립서점이 지역사회에 첫발을 뗐고, 시민들이 그곳을 중심으로 책 읽는 모임을 시작했다. 현재 화성에는 10개가 넘는 독립서점이 생겼고, ‘백조’, ‘상상마당’을 비롯한 다양한 출판사들이 모여들고 있다. 손관장은 “미디어와 타자(他者)에 개방적이었던 노작 선생의 백년을 뛰어넘는 선한 영향력이 아닌가 합니다”라며 감동을 전했다.

 

 

 

화성 문화의 정체성, 주목해 보면 차고 넘쳐 

 

손 관장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수십 년간 화성에서 문화 운동을 하신 분에게 “화성에 문학 작품은 없습니다. 문인들이 좀 반성해야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손 관장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1년 동안 샅샅이 화성 지역과 관계된 문학 작품을 찾았다. 그 결과 화성 지역의 문학 자료를 인문지리 현장과 연계시킨 <문학으로 걷는 화성>을 발간했고 기획전을 열었다. 이문구나 송기원, 김훈이나 기형도 같은 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 지역을 재경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으로, 평택시나 담양군에서도 이 모델 적용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손 관장은, “화성에는 대단한 것들이 많아요. 화성 관련 문화 정체성이 없는 게 아니라, ‘예리하게 연마된 렌즈’로 주목하지 않았을 뿐인 것이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작 홍사용 선생이 화성에 있었기에 당대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월탄 박종화는 친구인 노작을 찾아 동탄에 와서 뱃놀이 하다가 동탄에 뜬 달을 보고 월탄이라고 했다. 조지훈은 불교에 심취해 있던 노작을 따라다니다 용주사에서 승무를 보고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되는 「승무」를 썼다고도 했다. 

 

문학관 배경인 반석산에는 공원관리과와 협업해 만든 ‘시숲길’이 있다. 시민들에게 산책을 또 하나의 책으로 선물해 준 셈이다. 손 관장은 이런 숲길을 화성의 모든 지역으로 확산시키고 싶은 꿈이 있다. “제부도나 국화도 같은 데도 노작홍사용문학관의 문학 숲길이 있는 거죠. 최근에 지역의 원로인 홍신선 시인께서 사비로 생가에 표지석을 세우고 싶다는 의견을 주셨는데, 저희 같은 문화기구들이 연합해서 시비를 세우고 그 마을을 ‘시인의 마을’로 기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평생을 외롭고 쓸쓸한 자리에서 문화 첨병 역할을 해 온 시인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자존감도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그런 마을들이 열 개만 되어도 지역의 무늬가 달라질 것입니다”라며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꿈을 내비친다.

 

문화재청은 내년부터 신화, 전설, 민담 등을 포괄하는 설화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계획이다. 손 관장은 우리 공동체를 지탱해 온 설화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국가적인 사업으로 실시되는 만큼 화성 지역이 선도적으로 지역의 설화를 리라이팅하기를 희망한다. “강원도 지역의 불교설화 ‘오세암’이 동화작가 정채봉을 만나서 부활하거나, 무속신화가 웹툰 ‘신과 함께’로, 삼신할매 설화가 드라마 ‘도깨비’로, 선녀와 나무꾼 모티브가 ‘계룡선녀전’ 같은 K-콘텐츠의 원천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지속가능한 문화재로서의 설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를 위해선 지역 설화의 금고라고 할 수 있는 화성문화원 같은 기구들에 대한 획기적인 투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화성문화원이 기왕에 채록해 둔 설화를 현장 작가들이 리라이팅 하는 작업을 통해 재현 가능한 가치를 지닌 스토리들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길 희망해 봅니다”라며 희망을 피력했다.  

 

 

 

코로나 시대 소통 노하우로 세계 시 축제도 가능

 

코로나를 통해 쌓았던 비대면 소통의 노하우를 어떻게 접목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손 관장은 “코로나 기간 동안 한국시인협회와 함께 청소년시낭송대회를 스마트폰으로 했어요. 시가 스마트폰과 만나니까 영상을 통해서 종합예술의 면면들이 살아나더군요. 시를 판소리화한 친구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친구들, 영화로 만든 친구들, 춤으로 만든 친구들이 국경을 넘어서 그야말로 축제의 장을 마련해 주었어요. 장애인학교, 대안학교, 외국인 학생들까지 참으로 다채로운 장면들이었습니다. 시를 문제풀이용으로 접하던 학생들이 시향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코로나의 역설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코로나 기간 내내 거의 모든 연극제가 취소되었지만 저희는 낭독극 형식으로 전환해서 연극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 전환의 기저에 깔린 것은 ‘문학의 공공성'입니다. 원래는 미술에서 나온 개념인데 예술의 공적 역할이 미술에만 국한될 수는 없잖아요. 말하자면, 문학을 광장의 언어로 번역해 보자는 거죠. 코로나의 경험이 그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제 비대면 온라인 콘텐츠의 생산을 대면 콘텐츠들과 병행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가령, 저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줌을 통한 ‘세계 시 축제’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전 세계의 시인들이 휴대폰으로 낭독 동영상을 보내오면 번역문과 함께 ‘시- 마라톤’도 있을 법하겠죠. 저작권 협의만 되면 강좌나 낭독극 같은 온라인 콘텐츠를 반영구적인 자산으로 서비스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죠. 제가 문학관에 있다 보니까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요. 사실 새로움이란 것이 그냥 타자가 아니라 가치 있는 타자가 되려면 사회적 기억 속에 보존된 옛것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코로나 기간 동안의 경험이 아카이브의 체계 속에서 새로운 관계들로 우리를 열어가는 시도들이 뒤따를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손 관장은 정명근 화성시장의 1호 결재가 ‘자살방지 시스템의 구축’이었다는 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물적 팽창에 따른 고도성장, 가장 젊은 도시, 출생률 1위 같은 눈부신 성과에 가려진 정신적 궁핍은 정체성 상실로 이어지면서 지역의 삶을 황폐하게 하는 주범”이라며, “문학이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다면 문학관 역시 상상력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당대 삶에 착근하면서 문학관의 관을 무덤 속의 관이 아닌, 살아있는 관계 대명사로서의 관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현장, 행정기구와의 소통, 그리고 시민들의 기호에 대한 경청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비로소 관은 견고한 건축물의 위계로부터 놓여나 생동하는 문화 현장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문학적 기념비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을 위무하고 북돋우는 오늘의 서사를 써내려가기 위한 수고들을 급류를 건널 때 중심을 지켜주는 등짐처럼 지고 가려 합니다”라고 문학관의 가야할 방향을 적시했다. 

 

손 관장은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뽑은 우리 지역 박은숙 시인이 ‘수주문학상’을 받았을 때는 본인이 수상한 것처럼 기뻤다며, 앞으로도 문학관이 시인, 작가들의 사관학교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손 관장은 문학관의 공공성을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더 넓고 깊게 확장시키면서 보냈지만, 한편으론 시민들과의 소통에 더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며, ‘섭리攝理’ 의 ‘섭攝’ 자엔 귀가 하나 더 있으니 앞으로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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