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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181]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10/1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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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정현종 시인의 시 중에 ‘방문객’이란 시가 있다. 너무나 유명한 시라 많은 분들이 아실 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이하 생략)”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가고 있다. 더러는 내가 방문객을 맞기도 하고 더러는 내가 방문객이 되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일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그 ‘어마어마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다. 필자도 젊었을 때는 그랬다. 특히 어디 행사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 귀찮았다. 학생들 입학식과 졸업식에 오라하고, 오리엔테이션도 참가해 달라 한다. 그런 곳에 가는 것을 쓸 데 없다고 생각했다.

 

입학식, 졸업식은 학교에서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오리엔테이션은 보통 외부에서 숙박형으로 진행한다. 몇 시간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가도 사실 보직교수가 아니면 별로 할 일이 없다. 교수 소개하는 자리에서 인사하고 그치는 경우도 많고, 기껏해야 1시간 정도 대화 나누면 끝이다. 그것을 위해서 몇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현종 시인의 시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누가 오라고 하면 기꺼이 간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짊어지고 말이다. 아무 역할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그냥 자리에 앉아 있는다. 그런데 그게 ‘그냥’이 아니다. 나의 인생이라는 큰 보따리를 의자 위에 올려놓는다는 기분으로 앉아 있는다. 나의 꿈과 열정과 경험과 인내와 지혜와 이런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그 무게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젊은 대학생들에게건, 나이든 사람들에게건 말이다.

 

한편에선 나도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참석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의 인생을 저마다 큰 보자기에 싸와서 나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꼭 말을 해야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냥 느끼는 것이다. 물론 눈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스킨십을 하면 더욱 실감이 난다. 그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오면, 내가 큰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결혼식장에 축하하러 갈 때도 그런 마음이고 그리고 장례식장에 문상을 갈 때도 그런 마음이다. 

 

손자들 하고도 그런 마음으로 소통을 하고 있다. 방문객 대 방문객이고, 인생 대 인생이다. 손자들이 집에 찾아오면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온통 담아서, 손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옹한다.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의 과거의 길이는 길고 손자의 과거는 짧다. 대신 손자의 미래가 나보다 길다. 그래서 그 만남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리더가 하는 일 중에 의전적인 일이 있다. 행사에 참가해서 기껏해야 인사말 하는 일이다. 특별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중요한 정보를 접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자리에 함께 하는 것이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다. 그런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만들면 정말 중요해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통령이 없으면 허전하다. 회사 사장이 인사를 해야 할 자리인데 부사장이 대신하면 힘이 빠진다. 그 자리에서만 허전하고 힘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구심점이 흔들리고, 정체성이 흐려진다. 리더가 방문객으로 다가 온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니라, 한 조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 그 조직을 창업하고 운영하며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한꺼번에 오기 때문이다.

 

리더는 그래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모습으로 나타나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나타나는 리더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스스로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 리더를 맞이하고 바라보는 직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직원 모두가 아니라도 몇 사람에게는 말이다.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청와대 앞길이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4월 5일 식목일을 맞아 필자는 식구들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 길을 보러갔다. 그런데 청와대 정문 앞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행사를 마치고 오면서 차에서 내려 모여 있는 시민들과 악수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순간 12살이던 필자의 큰 딸도 엉겁결에 김영삼 대통령의 손을 잡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김 대통령에게는 사소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김형석 교수님은 금년에 102세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강연을 다니신다. 그분의 말씀이 문제가 아니다. 그분을 뵙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부디 그분이 건강을 유지하셔서 계속 위대한 방문객이 되셨으면 좋겠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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