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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112]
막장 드라마를 막보지 않는 방법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8/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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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한국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왜 항상 ‘삼각관계’에 빠질까?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며 ‘불륜’과 ‘배신’은 기본이고, ‘피의 복수’를 통해 ‘사이다’를 제공하는 주연들의 활약상(?)에 지지를 보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대체 내가 왜 이걸 보는 거지?’라는 의문 속에서도 끊임없이 향유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막장 드라마의 주요 스토리는 한국 대중문화 콘텐츠를 대표하는 서사적 문법으로 안착했다. 넷플릭스나 IP티비를 비롯한 OTT를 통해 세계의 웰메이드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요즘에도,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의 매력이 여전히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사실은 사회사적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막장 드라마는 한국 사회의 무의식과 대중의 욕망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인 장치이자 코드로 살펴져야 하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소니 기든스는 ‘멜로 드라마란 박탈당한 자들의 반사실적 추론’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청자들은 ‘자기 삶에 필요한 제 영역의 조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상상이 드라마를 통해 비롯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재미를 위해 소비되고 있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욕망이 단순히 반영되어 있는 창구가 아니다. 반대로 대중문화를 통해 각자 나름의 바람과 욕망들이 형성된다고 봐야 옳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들을 참고한다. 따라서 막장 드라마의 시청은 나의 욕망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며,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일정하게 참여하는 행위가 되기도 한다. 특정 드라마를 막장이라 욕하기 전에, 그러한 막장의 패턴 속에서 개인과 사회의 집단적 무의식의 성격을 탐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를 테면 ‘출생의 비밀’ 코드는 왜 그토록 반복되는 것일까? 빈곤한 주인공의 부모가 알고 보니 재벌이나 그에 준하는 상류층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이런 서사에서는 ‘부모-세대’의 물질적·정신적 부채가 ‘자식-세대’에게 마치 유산처럼 이전되어 있는 구도로 재현된다. 홀로 버려진 ‘자식-주인공’은 부모 세대의 모순을 대리 구현하며 힘겹게 살아간다. 나름 밝고 당차게 살던 주인공에게 시련이 찾아오고 그러한 시련이 절정에 달할 때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잃었던 부모가 구원처럼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주인공의 신분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출생의 비밀’은 계층 상승의 욕망은 충만한데, 그 상승의 기회와 방법이 상실된 시대에서의 서사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흙수저’ 담론이 상징하듯, 부와 학력의 대물림은 개인에게 심각한 박탈감을 주었다. ‘가난한 자’에서 ‘가진 자’로의 이행이 자기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상류층의 피’를 타고났다는 설정의 반복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는 계층 상승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시대 인식이 미래를 모색케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과거/부모’로의 퇴행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상상적으로 보상받고 싶다는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위태로운 처지를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불안이 ‘금수저’에 대한 희구의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출생의 비밀’은 한편으로는 결국 ‘흙수저’라는 자기에 대한 비관적 인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모색할 방법이 없다는 체념의 정서가 혼합되어 지지되고 있는 ‘가엾은’ 서사 양식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막장 드라마의 ‘막장스러움’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구현되곤 한다. ‘출생의 비밀’ 서사도 그 형태가 보다 다양하며, ‘삼각관계’나 ‘사각관계’도 단순치 않고, ‘불륜의 방식’이나 ‘복수의 연쇄’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약간의 차이를 드러내곤 할 것이다. 그 서사적 차이 속에서 시대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가치들이 어떻게 (재)조정되고 있는지, 한국 사회의 무의식과 대중의 욕망이 어떻게 추동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때론 흥미로운 문화 소비 생활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강제된 ‘집콕’을 하며, 막장 드라마를 막보지 않는 방법에 대해 나름의 관점과 관심을 형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master@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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