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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공원 벤치’
윤정화 상담학박사 마음빛심리상담센터장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8/07/0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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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두운 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조금씩 지나간다. 건물의 네온사인들이 한밤중의 어두움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다. 나는 그다지 밝은 곳을 원치 않기에 어두운 공원 벤치에 앉아 멍하게 허공을 바라본다. 한 밤중이여서 공원에는 사람이 없고 공원 옆 도로가에 차들만 거칠게 지나간다. 

 

흔들리는 휴대폰 소리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부모님이 번갈아 나를 찾고 있다. 나는 보란듯이 작정하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왜냐면 어차피 전화를 받아봐야 집에 들어와서 얘기하자. 걱정되어 전화했다. 나를 붙들고 울고불고 가슴아프다며 내게 잘못했다고 뭐든 내 말을 다 들어주겠다고 할 것이 뻔하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또다시 부모님은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고등학생이 학업에 집중하지 않는 내가 걱정된다고 하든가, 인간은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되므로 시간을 아껴서 무엇인가 열심히 살아야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꿈과 목표가 무엇이냐며 열심히 아주 열심히 설교와 훈계 그리고 지적과 비난으로 나를 코너로 몰아넣고 숨을 못 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조용한 아이였고 어떠한 것을 해야할 일이 있으면 천천히 생각부터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러한 내가 못났다며 지적하고 비난하며 나를 강하게 훈련시키고자 이리저리 학원으로 끌고 다녔다. 나는 이러한 부모님의 계획된 목표들로 인하여 지치고 어지러웠고 때론 쓰러지고 아파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부모님은 더욱 강하게 커야 된다며 나에게 열심히 하라, 그리고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내 입장이나 나의 마음보다 당신들의 목표와 계획을 우선시하였다.

 

그러다보니 차츰 나는 지치고 고통스러워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심지어 살아야하는 의미도 사라지고 말았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내 자신이 왜 살아야되는지, 그리고 내가 숨을 쉬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모님의 못난 아이이면서 부모님을 괴롭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두를 위하여 이 세상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오늘은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는 못나고 또 못난 아이가 되고자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복수심이 올라와서 부모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 걷고 또 걸어 밤이슬을 맞고 있다. 아마도 부모님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내 마음의 간절함을 내 발걸음이 알아주고 있는 것 같다.

 

부모는 자녀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존중과 이해를 우선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가 갖고 있는 고유성과 개별성을 지지하고 격려해주었을 때 자녀는 부모를 신뢰하고 존경하여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자녀는 자신이 신뢰하고 존경하는 부모를 향하여 마음을 열고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자녀 존재 자체를 알아주지 않은 체 자녀의 행위나 결과를 우선으로 판단하고 지적하게 되면 자녀의 존재감의 지층이 흔들린다. 자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 그 자체로서의 존중과 인정이다. 이것이 자녀를 향한 당연하고도 우선적인, 그리고 깊고도 따뜻한 부모의 사랑이다.

 

(www.maumb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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