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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화보 사진으로 보는 난파 홍영후의 일생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5/09/2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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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은 2006년 11월 7일부터 ‘재미있는 홍난파 이야기’를 10회 연재했다.

 

홍난파 이야기가 연재되기 전만해도 홍난파는 일부에서 민족 음악가로, 다른 사람들은 대표적인 친일 음악인으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러나 홍난파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사실과 치밀한 분석이 화성신문에 실리면서 재미있는 홍난파 이야기야 말로 홍난파를 바로 알 수 있는 바로메타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오는 30일은 홍난파가 서거한지 74주기를 맞이하는 날이다. 이에 화성신문은 그동안 홍난파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진과 해설을 특집으로 다룸으로서 독자들에게 홍난파를 보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여기에 공개되는 사진의 대부분은 난파의 제자인 작곡가 나운영 선생이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홍난파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이나 그분의 음악과 삶을 객관적인 이미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화성신문사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제6회 화성시 동요대회에 참여하는 분들도 홍난파를 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동요대회에서는 지정곡으로 홍난파 작곡의 동요를 부르도록 되어있다.

(편집자 주)

 

▲ YMCA 청년학관 중학과 졸업하는 홍난파와 동료들 (1914.03, 뒷줄 오른쪽 두 번째)     © 화성신문
▲ 새문안교회 찬양대원과 함께 지휘자 홍난파 (1924년경, 맨 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     © 화성신문

 

▲ 홍난파가 설립한 음악교육기관 연악회 제2회 수업생과 함께 (1925.03.25, 왼쪽 끝에 지휘봉을 쥐고 서있는 홍난파)     © 화성신문

 

▲ 연악회가 주최하고 조선일보사가 후원한 그랜드 콘서트 (1926.02.11., 왼쪽 끝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홍난파)     © 화성신문

 

▲ 코리안 재즈밴드 멤버와 함께 우리나라 최초로 재즈방송을 하는 모습 (1929년 여름 JODK방송에서, 피아노 앞에 앉은 홍난파)     © 화성신문

 

▲ 홍난파가 교수로서 재직한 중앙보육학교 제3회 졸업식(1931.03.20., 앞줄 왼쪽 끝에 앉은 홍난파)     © 화성신문

 

▲ 음악을 배우러 미국유학을 가기 전에 열린 도미송별음악회(1931,06,16, 앞줄 왼쪽 네 번째 안경 쓴 홍난파)     © 화성신문

 

▲ 시카고 셔우드음악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 귀국기념독주회를 연 홍난파 (1933.05.06.,앞줄 오른쪽 두 번째)     © 화성신문

 

▲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악단인 난파트리오 제 1회 공연 (1933.09.15., 왼쪽부터 홍성유 이영세 홍난파)     © 화성신문

 

▲ 새문안교회 차재명 목사의 주례로 열린 홍난파 이대형 부부 결혼사진(1934.12.27.)     © 화성신문

 

▲ 부인 이대형 여사와 함께있는 홍난파     © 화성신문
▲ 사랑하는 딸 홍정임을 안고 있는 홍난파     © 화성신문

 

▲ 홍난파와 그와 함께했던 음악 동료들 (왼쪽에서 두 번째)     © 화성신문

 

▲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홍난파.     ©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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