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윤정화 심리칼럼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담벼락
윤정화의 심리칼럼(2014. 11. 10)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4/11/12 [10:1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와 더불어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담벼락을 뚫고 대문 밖에서 집으로 들어오려던 어린소녀의 가슴에 툭 떨어진다.
 
여덟 살의 어린소녀는 열려있는 대문을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대문 밖 담벼락에 기대어 그 자리에 얼음이 된다. 숨죽여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서있다. 행여나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까봐 눈치를 보며 담벼락에 기대어 대문 안에서 식사를 하는 친척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간이 가기를 바란다.

친척들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으로 익숙하게 담벼락과 친구가 되어 서있다. ‘친척들이 식사하고 있는 지금 내가 대문 안으로 들어가면 나로 인해 친척 중 한사람이 수고할 것이고 그 사람은 나로 인해 식사를 멈추면서 밥 한 그릇을 부엌까지 가지러 가는 수고를 할 것이다.
 
나는 이집 식구가 아니라 친척인 타인일 뿐이고 이집식구들이 나로 인해 수고하면 나로 인해 누군가가 식사를 하다가 멈출 것이고 이로 이해 몸도 마음도 힘들것’이라는 생각에 소녀는 스스로 어느 누구라도 소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힘들면 안된다는 생각에 친척들이 식사를 다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해가 바다 속으로 질 때까지 기다리고, 친척들이 모두 식사가 끝나고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다 보낸 후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을 때 대문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잠자리에 든다.

여덟 살 소녀의 배는 밥 달라고 꼬록꼬록 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 소녀는 배를 움켜쥐고 조용히 하라고 친척들이 잠에서 일어나면 소녀 자신 때문에 밥상을 차리는 수고를 하니까 안 된다고 자신의 배를 나무란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엄마 나 배고파! 나는 누구한테도 배고프다고 말할 수가 없어. 엄마가 계시면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배고프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리고 부엌에도 내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는데, 나는 여기가 우리 집이 아니라서 내 마음대로 하면 친척들이 놀라고 나로 인해 수고 할까봐 조심스러워, ‘엄마~ 엄마~’소리죽여 울다가 어린 소녀는 엄마의 품을 그리다 잠이 든다.

소녀는 성인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있으면 우선 발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도 되는지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으로 인해 수고하는 것을 불편해 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기며 사는 것에 익숙해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소녀는 관계에서 타인을 불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담벼락 뒤에 숨기듯 멀리 아주 멀리 숨겨두고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저녁해와 같이 말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소월의 ‘초혼’ 가운데 일부분 발췌

www.maumbi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