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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온 곶' 가는 길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13/09/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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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사람들은 의논하기를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아테네를 이끄는 사람은 웅변가였다.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의 지도자가 된 것도 그가 최고의 웅변가이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는 민회에서 결정하는데 1년에 40여회 열리는 장소가 바로 아크로폴리스 맞은 편 프닉스 언덕이다.

프닉스 언덕을 뒤로 하고 수니온 곶으로 향한다. 수니온 곶은 아테네 남동쪽, 아티카 반도 끝에 있다.

푸른 에게 바다를 바라보며 산기슭에 세워진 하얀 주택들. 수니온 곶으로 가는 해안도로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에는 시내 호텔이 넘쳐 일부국가 선수단은 풍경 좋은 이곳에 숙소를 마련했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정략적인 이유로 아테네 왕 테세우스에게 그의 딸, 파이드라를 보낸다. 그런데 기구하게도 파이드라는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리투스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히폴리투스가 달의 신 아르테미스를 사랑하자, 파이드라는 그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테세우스에게 모함하고 자살한다.

히폴리투스는 테세우스로부터 심한 꾸중을 받았으나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질풍같이 전차를 몰고 해변을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 말이 놀라는 바람에 전차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테세우스가 포세이돈에게 아들을 죽여 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 장소가 바로 이곳 해안도로 이다.

신화를 소재로 한 메르쿠리 주연의 페드라(=파이드라) 촬영장소이기도 하다.

메르쿠리는 ‘일요일은 참으세요’에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배경이 된 피레우스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영국이 약탈해간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17개의 조각상을 되찾기 위해 반환캠페인을 벌린다.

해안도로 달리기를 한시간 여. 바다 끝 언덕. 해발 60m 지점에 위치한, 기원전 440년에 건축된 포세이돈 신전이 눈에 들러온다.

수니온 곶 정상에 세워진 포세이돈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아테나 여신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경합을 하여, 결국 아테나 여신으로 결정되자 포세이돈을 달래기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입장표를 끊고 언덕 위로 오른다.

신전은 도리스식 6개의 기둥을 건축 전면에 세우는 고전적 건축 양식으로, 흰색 대리석 기둥이 42개이나 현재 18개만 남아 있다. 신전 기둥에는 젊은 시절 이곳을 여행한 바이런의 낙서가 남아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낙서조차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도 독립을 지원하다 죽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서사시‘돈 후안-그리스의 작은 섬’ 영감을 포세이돈 신전에서 얻었다고 전해진다.

신전 내부 한쪽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는 6m 높이의 거대한 포세이돈 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신화 속 포세이돈 궁전은 아테네 북쪽 에우보이아섬 서쪽 바다 밑에 있다. 이를 뒷받침 하듯 기원전 460년경에 제작된 청동 포세이돈상이 에우보이아 섬 해저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현실 속 신전은 반도 건너편 남쪽, 수니온 곶 언덕 위에 있다.

포세이돈 신전은 399년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에 의해 파괴되어 오늘 날 포세이돈 신전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같은 시기 같은 모양의 건축물로서 비교적 잘 보존된 헤파이스토스 신전을 생각하면 구조를 가늠할 수 있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기원전 431년 펠로폰네소스 전쟁 전몰자 추도식에서 행한 연설, ‘지금 우리가 우리를 보고 놀라듯이 후세 사람들도 우리의 업적에 놀랄 것이다’.
그는 약 2400년이 지난 오늘 날 우리들이 그리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그대로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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