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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형태 ㈜동양 대표]
“고객의 니즈, 성심성의 다한 제품으로 보답”
준비된 인력·설비로 짧은 납기에도 대응 가능
단가 조금 비싸도 높은 성능으로 고객 늘어
 
신호연 기자 기사입력 :  2022/05/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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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신문

 우정읍 멱우리에 위치한 ㈜동양을 찾았다. 전자 제품이나 화장품 등이 유통 과정에서 받는 충격으로부터 제품을 보호해주는 포장, 부자재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다. 훤칠한 키, 고교 축구 선수 출신의 다부진 체격에 매력적인 백발의 유형태 대표가 편안한 미소로 맞아 준다.

 

유형태 대표는 “저희는 깨끗한 환경에서 성심성의를 다해 만들어 제품 자체가 경쟁사들보다 깨끗하고 깔끔하죠. 가장 큰 강점은 고객의 짧은 납기에도 대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직원들과 가족과 같은 신뢰, 권한 위임 등을 통해 긴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력과 설비가 늘 준비되어 있어서 가능한 것이지요. 가격 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크게 안 따지고 최대한 고객의 요구 사항에 맞추려고 하니까 단가가 좀 비싸더라도 우리 제품이 마음에 든다고 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 화성신문

▲화성으로 와서 생활은 어땠나요?

 

인천 계양에서 사업을 하다가 2005년도에 팔탄으로 공장을 지어서 왔어요. 처음 몇 년 동안 굉장히 힘들었는데 주위에 좋은 사람들을 사귀다 보니까 많이 도와주시고 거래처도 소개해 주고 그래서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화성에 와서 돈은 못 벌었지만 재밌게 살았습니다. 제가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니까 팔탄에 내려온 지 4개월 만에 팔탄기업인협의회 회장님이 찾아오셔서 총무 좀 맡아 달라고

  © 화성신문

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활동을 많이 했죠. 화성시 경제인 협의회에서 3대 회장을 맡기도 하고, 화성 크리스토퍼 모임에서도 회장을 두 번 맡으면서 많이 활성화시키기도 하고, 화성 상공회의소 인문학 6기 회장도 했어요.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소나무 여행 회장도 맡고 있고요. 이런 활동들을 통해 좋은 사람 많이 만나서 행복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제일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인력 수급이 가장 큰 문제지요. 큰 회사들은 복지가 잘 돼 있으니까 괜찮은데 우리 같은 영세업자들은 한국 사람들을 뽑기 어렵습니다. 보수도 적지, 일하는 시간도 그렇지. 그리고 여기까지 오려고 하지도 않아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외국 사람 없으면 일을 못해요. 우리 회사 직원이 18명이었는데, 코로나 영향으로 돌아간 사람만 있고 최근 3년간 외국 사람 한 사람도 못 받았어요. 지금은 필리핀 사람 2명, 중국 사람 2명, 한국 사람 5명밖에 없어요. 바쁠 때는 저와 아내, 아들,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다 달라붙어서 일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금은 사람이 없어서 일을 줘도 못 하는 상황이니까 대기업의 큰 물량은 받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 같은 경우는 기름값이 계속 올라가지요. 인건비에다가 자재값까지 올라가지만 거래처에 다 소급 받을 수도 없죠. 그래도 욕심부리지 않고 회사를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제가 2016년에 망막이 찢어져서 눈 수술을 네 번 했습니다. 수술 후에는 7가지 약을 하루에 네 번씩 넣어야 했어요. 한 가지를 넣으면 10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 넣고 10분 있다가 또 넣고…… 일곱 번을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것을 하루에 네 번씩 2년을 하고 살았어요. 다음 2년 동안은 4개, 그리고 또 1년 동안은 3개, 그렇게 5년 지나고 나서 지금은 2개만 넣고 있죠. 안압을 낮춰주는 약인데 죽을 때까지 관리하며 살아야 한답니다. 이렇게 시간 맞춰 약을 눈에 넣어야 하는데 항상 아내가 곁에서 약을 넣어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합니다. 아내가 약을 넣어줄 때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더라고요. 부부라는 게 이렇게 소중하고 대단하구나 하는 거를 느끼면서 큰 위로가 되었죠.

 

눈을 다치기 전에는 성격이 좀 급하고 와일드 하다 보니까 모임에서 다른 사람이 좀 마음에 안 든다고 쓴소리하면 제가 막 받아쳤지요. 그냥 막 성질대로 했는데 눈 다치고 나서는 그런 게 싹 없어지더라고요. 다치고 나서 집에서 쉬면서 아무도 안 만나다 보니까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거예요. 그동안에 저 모르게 이것저것 챙겨다 주는 분들도 있어서 고마움도 있었구요. 그래서 저하고 다퉜던 친구들, 저하고 좀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들을 찾아가 용서를 다 구했어요. 덕분에 지금은 누구를 미워하거나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눈을 다치고 나서 되돌아보니 화낼 일이 아니더라고요. 이런 지인들이 위기의 순간에 커다란 힘이 됩니다.

 

 

 

▲살아오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업을 하면서 정직하고 신의가 있으면 다 믿어 주더라고요. 저는 거짓말하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정직하게 없으면 없다. 있으면 있다. 이게 중요하거든요. 제가 지금의 이 공장으로 이사 올 때 돈이 없었어요. 이 땅을 사고는 싶었지만 돈이 너무 없으니까 엄두를 못 내고 있었죠. 그래도 땅 주인을 한번 만나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당시 70세쯤 되었던 땅 주인을 만났죠. 그런데 그 분이 “난 자네가 마음에 든다. 내 땅이 필요하면 내가 땅을 줄게. 공장을 지어서 한번 해봐. 돈이 없으면 몇 년 있다 줘”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몇 억씩 계약금을 준비해 온 다른 사람들을 마다하고 계약금 오천만 원에 저하고 계약을 하고는 모든 서류를 넘겨주면서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고 격려해 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음은 공장을 짓는 것이 문제였지요. 그래서 건물 짓는 분한테 “나는 지금 돈이 하나도 없다. 계약금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준공검사 끝날 때까지 당신 돈으로 당신이 건물을 다 지었으면 좋겠다.”라고 사정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그렇게 해준다고 하셔서 준공검사 끝날 때까지 돈 한 푼 안 들이고 준공검사 끝난 뒤에 땅값도 주고 건물값도 줬어요. 그러니까 두 분이 저한테는 귀인인 거죠. 그래서 그 당시 땅값 10억에다 건축비 10억, 20억을 주면서 참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명절 때마다 찾아뵙는데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죠. 

 

정직하고 솔직하게 구하고 해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다 이렇게 들어줘서 지금까지 30년 넘게 해오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 게 통하니까 지금도 잘 거래하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제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악착같이 모으려 하기보다 살아있을 때 뭔가 하는 게 좋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뭘 그걸 아끼려고 생각하냐”라며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하는 낭만파 유 대표다. 그림을 그리는 부인과 함께 해마다 2주, 3주씩 해외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가족, 지인들과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을 즐기는 유 대표. 그의 남은 꿈은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찾아오는 지인들을 위해 요리도 하고, 빵도 굽고, 커피를 끓여서 대접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란다. 그 꿈이 멋지게 이루어지길 상상하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본다. 

 

신호연 기자 news@ih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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