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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90]
언어를 바꾸면 변화가 생긴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3/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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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     ©화성신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이름은 동 이름이나 시공 건설사 이름을 따서 붙였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반포주공아파트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파트에도 ‘브랜드화’ 바람이 불면서 아파트마다 생소하면서도 차별화된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어려운 이름이 등장했다. 래미안, 이편한세상, 힐스테이트, 자이 등은 그래도 쉬운 편이다. 포레스트, 아크로, 아르테온, 라체르보 등으로 가면 심각해진다. 어려운 이름이 불편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아파트 문화를 고급화하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아파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직업 명칭도 요즘은 들어도 무슨 직업인지 쉽게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쿠친, 캠프, 라이트, 헬퍼, 플렉스가 무슨 뜻인지 아시는가? 죄다 쿠팡에서 쓰는 용어들이다. 쿠팡에서는 배송직으로 선발한 정규직을 ‘쿠팡친구’라 하고 줄여서 ‘쿠친’이라 한다. 또 일선 배송 거점을 캠프라 하고 캠프의 책임자를 캠프 리더, 줄여서 CL이라 한다. 라이트는 배송 물량이 비교적 적은 직원을 말하고, 헬퍼는 하차나 분류를 돕는 아르바이트 직원이며, 플렉스는 비정규직 배송원을 말한다. 쿠팡은 해외 자본으로 운영되는 회사인데다 한국적인 수직문화를 탈피하고 서구적인 수평문화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영어로 용어를 개발하여 쓴다고 한다.

 

언어는 사람이 만든 것이지만, 일단 어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언어가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그 언어에 따라 사물을 파악하고 생각을 하며, 결국 언어가 주는 의미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언어학자들은 2중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행동 패턴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령, 독일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쓰는 사람이 독일어를 쓸 때는 보다 남성적으로 되고, 일본어를 쓸 때는 보다 여성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일본어가 독일어에 비해 간접화법이 많고 또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사용하게 되면, 한국문화로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인간관계가 수직적으로 되기 쉽다. 반면에 영어를 쓰면, 영미식 문화로 사고하게 되고 보다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꾸릴 가능성이 크다.

 

1997년 5월 8일 새벽,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괌으로 가던 대한항공 KE801편이 괌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다 추락해 탑승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는 여러 요인이 겹쳐서 일어났다. 항공유도등이 고장나 있었으며, 하늘에서는 갑작스런 스톰셀(습하고 진한 구름 덩어리)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요인보다 더 큰 요인은 조종석에 앉아있던 세 사람, 기장, 부기장, 기관사 사이의 소통이라고 조사팀은 결론을 내렸다. 위기 상황에서는 서로 많은 소통을 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사고기 안은 놀랍게도 너무나 조용했던 것이다. 

 

착륙 시점에서 조종석 키를 기장이 잡고 있었다. 상급자인 기장이 조종석에 앉아있는데, 한국적 문화에서 하급자인 부기장이나 기관사가 뭐라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 문제를 개선해 줄 것을 의뢰받은 델타항공사에서는 조종석 안에서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쓰게 했다. 언어를 바꿈으로써 수직적인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쿠팡도 바로 이런 것을 노렸을 것이고 쿠팡뿐만이 아니라 일반 회사에서도 호칭을 바꾸거나 영어 닉네임을 개발하여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이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여 쓰고 차별화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조직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조직원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동기를 유발하며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창원에 있는 삼성창원병원에서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혁신프로젝트를 2016년부터 추진해 오고 있다. 직원들이 5개 팀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1년간 활동하는 것인데 매년 50명이 여기에 참여한다. 이 운동이 여러 해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대한병원협회로부터 2023년 병원혁신 사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운동의 이름이 ‘블루 다이아몬드’이고 5개 팀의 이름도 항해와 관련된 이름이다. 네버랜드(소통과 조직문화), 골든 프린세스(환자 중심 서비스 디자인), 니미츠(진료시스템 개선), 스틸레토(마케팅과 네트워크), 파이레츠(미래전략과 의료제품 개선). 블루 다이아몬드는 가장 빛나는 보석 같은 병원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고, 항해와 관련된 이름을 딴 것은 꿈과 모험을 향한 항해를 하자는 의지를 담았다. 블루 다이아몬드 활동을 할 때는 팀원의 명칭도 선장, 항해사, 선원, 조타장으로 불렀다. 

 

새로운 일을 도모할 때는 그에 맞는 새 용어를 개발해 보는 것이 어떨까? 

 

choyh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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