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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83]
상생 파트너십으로 성장한 네덜란드 ASML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1/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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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     ©화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네덜란드를 방문해 ASML(에이에스엠엘)이라는 반도체 장비 회사를 방문했다. 삼성의 이재용 회장, 그리고 SK의 최태원 회장을 대동하고 말이다. 이 자리에는 빌렘 알렉산더 네덜란드 국왕까지 함께했다. 대통령들이 해외 순방에서 기업을 방문하는 일이 가끔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회사를 방문한 이유가 무엇일까? 1984년 설립된 이 회사로서도 외국 정상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ASML은 광학장비 회사이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를 만들어 집적하는 것인데 워낙 집적도가 높아서 물리적인 방법으로 회로를 그릴 수가 없다. 그래서 빛에 반응하는 감광액을 미리 정해진 패턴에 따라 도포해 두고 그 위에 특정 주파수의 빛을 쏘여서 회로가 나타나게 한다. 이때 이 빛을 쏘이는 것을 노광이라고 하는데 이 노광 기계를 만드는 것이 ASML이다.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반도체의 집적도는 크게 높아지게 됐다. 다시 말하면 회로가 가늘어져서 7나노 미터 이하로 된 것이다. 이는 인간 머리카락의 1/5 이하를 말한다. 이 정도 두께의 회로를 만들려면 그냥 빛이 아니고 초 자외선(EUV)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은 7나노 미터가 아니라 2나노 미터 이하로 낮아졌다. 이제는 머리카락의 1/15로 가늘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노광 회사가 현재로서는 네덜란드의 ASML밖에 없다.

 

그러니까 ASML이 없으면 우리나라의 삼성, SK도 대만의 TSMC도 그리고 미국의 인텔도 2나노의 반도체를 개발할 수가 없다. 그래서 ASML을 을(乙)이긴 한데 그냥 을이 아니라 ‘슈퍼 을(乙)’이라고 한다.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우리나라로서는 이 회사의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ASML과 손을 잡은 것이다. 덕분에 한국과 네덜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동맹까지 맺었고, 삼성전자는 ASML과 함께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EUV 기반으로 초미세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R&D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했다. 그리고 SK하이닉스는 ASML과 ‘EUV용 수소가스 재활용 기술개발 MOU’를 체결했다.

 

그런데 이 ASML이 처음부터 슈퍼 을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가전회사 필립스(Philips)에서 시험적으로 분사되어 나온 보잘것없는 회사였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반도체 장비 회사는 특별한 강자가 없었다. 네덜란드 정부에서는 필립스와 ASM이라는 반도체 장비 회사를 설득해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게 했다. 그러나 이들은 확실한 기술도 든든한 시장도 없었다. 다만 겸허하게 배우겠다는 자세만은 확실했다. 

 

그들은 반도체의 강자인 미국이나 일본을 겨냥하기보다는 대만과 한국 시장을 노렸다. 1988년에는 대만지사를 만들고 1996년에는 한국 지사를 설립했다. 특히 그들은 한국의 삼성전자, 하이닉스와 관계를 돈독히 했다. 두 회사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때는 열심히 뒷받침했고,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을 미리 하고 아이디어를 냈다. 한국 반도체 회사들에게 당시에는 대안이 있었다 노광 회사는 일본의 캐논과 니콘이 있었기 때문이다. 90년대만 해도 삼성은 ASML과 일본 회사 사이에서 줄타기했다. 그러나 일본에는 다른 반도체 제조 회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이 따랐다. 반면 네덜란드 회사는 그런 위험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회사들은 ASML과 단단히 손을 잡았고, 한국 반도체 회사가 성장한 만큼 ASML도 성장했고, ASML이 성장한 만큼 한국 회사도 성장했다.

 

그런데 ASML 자신도 파트너십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 ASML이 만드는 제품은 초 첨단기술을 요하는 것이지만, 범용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렵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만, 수요가 적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이 생산 기계에 필요한 부품을 스스로 개발하지 않고, 전문회사에 용역을 준다. 레이저나 반사경 같은 것은 전통적인 독일의 강자 트럼프(Trumpf)나 자이스(Zeiss)와 협력한다. 이런 식으로 비용 기준 90%를 외주화하고 있다. ASML은 설립 초부터 이런 식으로 타사와 협력하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파트너십을 유지하는가? 첫째는 혁신을 통해 고객사의 발전을 돕는다는 기본 철학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지속적인 혁신이 일어나는 곳이다. 이 산업에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은 공급자나 수요자나 혁신의 궤도를 같이 간다는 확고한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으로는 파트너들 사이에 신뢰가 필수적이다. ASML은 그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과 특허도 공유하고, 재무 정보도 공유하고 모든 문제에 대해 공유하고 있다. 이런 투명성이 담보되어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혁신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에 상호의존과 파트너십은 필수다. ASML에서 배울 점이다.

 

choyh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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