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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69]
실패했지만 그를 위대한 리더라 부르는 이유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10/0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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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 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때는 1908년. 남극 탐험에 나선 한 영국인이 있었다. 다른 탐험가들이 극한지 탐험을 모두 개를 운송수단으로 활용했는데 그는 이례적으로 조랑말을 선택했다. 이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조랑말은 추위에 개만큼 강하지 않고 먹이도 사람이 먹지 않는 풀을 먹는다. 그래서 조랑말을 데리고 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탐험가는 비아냥거렸고 또 걱정했다.

 

그가 조랑말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랑말 1마리는 하루에 무려 800킬로그램을 끌고 갈 수 있는데, 먹이는 5킬로그램만 주면 된다. 하지만 개는 1마리가 무리를 해도 겨우 50킬로그램밖에 끌지 못하는데 먹이는 750그램이 필요하다. 조랑말을 이용하면 그만큼 운송 효율성이 높아진다. 게다가 개를 이용하면 스노모빌이 함께 필요한데 스노모빌이 고장 날 때는 난감해진다. 

 

그런데 조랑말에게는 스노모빌이 필요가 없다. 문제는 조랑말이 개보다 추위에 약하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는 추위에 강한 만주 지역 말을 골랐다.

 

그는 1908년 1월 1일 대원 39명, 조랑말 10마리, 개 9마리, 모터카 1대, 그리고 250톤의 물품과 식량을 싣고 영국을 떠나 남극으로 향했다. 배의 이름은 님로드(Nimrod)호였다. 이렇게 야심차게 출발한 탐험대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탐험가들이 우려한 바와 같이 조랑말은 영하 40도의 남극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사망했다. 결국은 사람이 썰매를 끌어야 했다. 그야말로 악착같이 강행군하여 그들은 남위 88도 23분 지점에 이르렀다. 

 

조금만 더 가면 남극점(90도)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탐험대장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지쳐있었고,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 이대로 강행했다가는 분명 대원들을 잃을 것이 뻔했다. 그는 아쉽지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철수를 결정했다. 대원 39명이 모두 살아 돌아왔다. 사람들이 그의 실패를 지적할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자보다는 산 당나귀가 낫다(Better a live donkey than a dead lion).”

 

그로부터 6년 후인 1914년, 그는 또다시 남극 탐험에 도전한다. 남극은 1911년 12월 14일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이 이미 점령한 후였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도전을 목표로 삼았다. 남극 정복이 아니라, 남극 대륙 횡단이었다. 그는 영국에서 탐험대 모집 광고를 냈다.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 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이런 무지막지한 광고를 보고 무려 5천 명 이상이 몰려들어 197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을 보였다. 대장은 대원들을 엄선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27명을 뽑았으나, 18세 소년이 몰래 배를 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탐험대가 28명이 되었다. 

 

이번 미션을 수행할 배는 인듀어런스(Endurance)호였다. 그런데 1914년 12월 5일, 남아메리카 끝 사우스 조지아를 출발한 인듀어런스호는 그 다음해 1월 20일 남극 대륙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얼음산에 갇히고 만다. 남반구는 분명 계절상으로는 여름인데 이상 기후가 덮친 것이다. 배는 10개월 동안 표류하다가 결국 파선되어 가라앉게 되었다. 대장은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 소지품을 모두 버리고 생존에 필요한 물품만 챙겨서 배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생필품이 아닌 것은 모두 버렸다. 다만, 사진기는 예외였다. 대장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에게서 돈을 모았는데 그들에게 모험 도중 찍은 사진의 소유권을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인듀어런스 모험 사진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가지고 갔던 식량은 금방 바닥을 보였다. 탐험대는 데려갔던 개도 식량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펭귄과 바다표범으로 연명했다. 표류 497일 만에 엘리펀트섬에 도착했다. 

 

그 후 대장은 그들이 출발했던 사우스 조지아로 가서 구조대를 불러오겠다고 나섰다. 대장과 다른 대원 5명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서울에서 오키나와까지나 되는 먼 길을 항해해 갔으며, 사우스 조지아에 도착해서도 험준한 산을 넘어서 섬을 횡단해야 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구조선을 구해 엘리펀트섬에 돌아왔다. 구조대가 구조를 떠난 6개월 후였다. 대원 28명은 모두 무사 귀환했다.

 

그 대장의 이름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 1874-1922)이다. 아일랜드 혈통의 영국인인 그는 탐험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이끌고 남극에 두 번 도전하여 두 번 다 실패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리더라고 부른다. 리더는 단지 정한 목표만 성취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위대한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그 가치 실현 여부는 위기에서 그리고 실패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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