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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홍난파의 출생지는 어디인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6/0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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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성 홍난파합창단원/시민기자.     ©화성신문

필자는 전회에서 홍난파의 출생지에 관한 기록에 의해 몇 곳의 장소를 특정하였으나, 이외에도 홍난파의 족보를 보면 출생지에 관해서 알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1928년 6월 20일 초판 발행된 ‘남양홍씨 대호군공파보 원고 정과와 1991년 5월 회상사에서 발행한 ‘남양홍씨 세보’ 3권에 따르면 출생 일자만 기록되어있다. 홍난파도, 다른 분들도 족보에는 출생지에 대해서 기록이 없다. 홍난파가 출생한 연도가 1898년인데, 우리나라 호적제도 시작이 1920년대부터인 점을 고려한다면, 또 주변의 도시를 비롯하여 어떤 지자체도 홍난파의 출생지라는 주장이 없었음을 판단하건데 홍난파 출생 당시 둔지곳면 활초동 현재 화성시 활초동이다.  

 

사실 유명인사의 출생지에 관한 논쟁이 홍난파가 처음은 아니다. 더군다나 1995년부터 전국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모든 지자체가 지역의 인물을 찾아 발굴하는 데 혈안이 되어 왔고 자신의 도시와 유명 인물 간에 조금이라도 인연이 될 소재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지역의 인물로 홍보해 왔음은 아는 사실이다. 

 

예로 들자면 대표적인 음악가로 광주광역시 출신 정율성(1914-1976, 본명 정부은)이 중국에서 ‘팔로군행진곡’, ‘연안송’ 등 노래와 ‘우리는 행복해요’ 등의 동요도 여러 곡을 작곡했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정율성의 생가를 찾아오자 남구 양림동과 동구 불로동에서 서로 자신이 정율성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더니 전남 화순에서도 정율성 부친의 토지대장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생가를 주장하여 결국은 출생지 시비가 법정으로 가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외에도 홍길동의 출생지를 두고 가상 인물 설과 실존 인물 논쟁이 있어 일부 지자체가 생가 복원과 테마파크를 조성하였다.

 

홍난파의 출생지가 남양군 둔지곶면 활초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필자는 묻고 싶다. 홍난파의 둘째딸이 현재 살아계시고 수년 전에는 그분이 활초동 생가와 화성시청을 방문하여 당시 모 국장과 면담도 하였는데, 그리고 올해 4월 8일에는 화성시음악협회가 주최, 주관하는 난파생가음악회에 홍난파의 후손들이 참석하고 행사 후에는 남양지역의 관계자와 합창단 임원들과 같이 식사도 하였는데 그분들이 홍난파의 출생지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서 매해 봄에 열리는 난파탄생(생가)음악회에 참석한다고 보는가? 홍난파의 출생지가 활초리가 아닌데도 홍난파의 후손들이 매해 8월 말 또는 9월 초에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근대문화유산 90호) 앞마당에서 열리는 홍난파가곡제에 홍난파합창단을 초대한다고 생각하는가? 게다가 화성시 남양에서 관계자들이 음악회에 초대받아서 간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이런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유명한 그 땅은 사실은 지난 수십 년간 서울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매립해 온 곳이었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에 50년을 매립하였더니 음식과 야채는 모두 부패하여 사라졌고 썩지 않는 라면 비닐봉투 수십장이 나왔다고 해서 서울 사람들은 지난 50년동안 라면만 먹고 살았다고 주장한다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가? 

 

홍난파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될 것을  학자의 잘못된 주장만 듣고 엉뚱한 논리를 펴더니 이제는 홍난파의 출생지로 시비를 거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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