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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문화 칼럼 ➍]삼베수의가 전통인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10/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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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혁 하늘가장례식장 대표

우리들은 흔히 장례방법이 어떠하든 마음이 중요하지 않느냐? 반문하기도 하면서 그냥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방법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야기 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장례방식이 과연 전통적인가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두 번째 칼럼에서 우리의 전통수의인 한복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우리의 전통수의가 한복이고 그 소재 또한  비단, 견직, 명주, 모시, 면 등이 사용되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삼베수의가 전통으로 자리매김 하였을까요?

 

이는 일제치하에 있던 시기인 1934.11.10. 일본에 의하여 조선총독부관보에 관통첩 제39호 “의례준칙 제정에 관한 건”이 게재되었고, 사회교화자료 제10집으로 의례준칙을 별책 발행하고, 장례의 세부 사항까지도 서술하여 따르도록 강제하면서부터입니다. 이를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맏상주를 즉시 참형하라는 강경책을 시행하여 빠르게 정착되어진 것입니다. (참고자료 : 1938년 김창숙의 가묘고유문)

 

삼베수의를 일본이 적극적으로 보급한 이면에는 당시 조선의 비단이나, 견직물 등의 직물들은 고가이기에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한 국방금으로 헌납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고, 그로인하여 저가의 삼베를 쓰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군비 조달이었지만 그 이면을 더 들여다보면 조선은 피지배 민족으로 천황에게 죄지은 죄인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였습니다. 죄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었기에 죄수가 입던 수의(囚衣)의 소재인 삼베를 부모님에 대한 효를 나타내던 수의(壽衣)의 소재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1945년 광복 직후부터 구식 대 신식, 불결 대 위생, 허례허식 대 간소화라는 의식의 지배하에 상례의 간소화를 위해 노력하다보니 기존의 일본식 법령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서 더욱 공고히  되었기에 삼베수의가 현재까지도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탕에는 우리의 의식이 전통은 낡고 나쁜 것이고 새로운 것(일본문화, 서구문화)은 좋다는 치졸한 근대화론이 우리 사회를 장기간에 걸쳐 지배해 왔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럼 삼베수의가 고급이라는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요?

 

이는 1976년 대마관리법이 제정된 후 삼베 값이 크게 오르면서 장례업계가 삼베수의는 고급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으로 상술에 의하여 삼베수의가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작금의 우리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가치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전통적 관점의 관혼상제와 새로운 관혼상제에 대하여 고민을 해보아야할 시점입니다. 다음 칼럼 또한 일제 침략 시기에 일본에 의하여 변형된 관혼상제 문화를 더 살펴보고 그 이후에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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