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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96]
부모 시야(視野), 자녀 시야(視野)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4/0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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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교육학박사     ©화성신문

유아기 자녀를 둔 가정의 여유로운 아침 모습을 그려본다.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는 15층 아파트 주방의 작은 창 너머로 연둣빛 봄기운이 느껴지는 산책길을 내려다본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 이제 따뜻한 봄이 오려나 봐.”

 

이 말을 들은 5살 자녀가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봄이 오는 걸 어떻게 알아요?”

 

“저기서 하늘거리는 연두색 나뭇잎을 봐. 새싹이 돋아나고 있어?”

 

자녀는 더 답답하다는 듯, “엄마, 연두색이 어디 있어? 난 아파트 밖에 안 보이는데”

 

그제야 엄마는 깨닫는다.

 

‘아하, 키가 작아 창을 통해서 길은 보이지 않고 아파트 건물만 보이는구나.’

 

엄마는 곧 자녀에게 의자를 갖다주며 창밖을 보게 한다. 자녀는 밝게 웃으며, “엄마, 정말 나무에 연둣빛 잎사귀가 보여요. 와~ 신난다. 봄이다.”

 

이 상황 속의 어머니는 현명한 분이다. 즉각적으로 어린 자녀의 입장을 파악하고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만일 엄마의 눈에는 보이는데 너는 왜 못 보느냐 식의 생각에 빠져 있다면 자녀와의 갈등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부모의 시야와 자녀의 시야는 다르다. 그래서 부모의 생각을 자녀는 따라가지 못하고, 부모는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것은 단지 눈으로 보이는 풍경만의 문제가 아니다. 두뇌 속의 지식 세계도 부모와 자녀는 다르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관점과 자녀의 관점은 다른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부모는 자녀에게 답답함을 가지게 되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억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학에서는 눈높이 교육을 중시한다. 자녀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자녀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말썽 피우는 자녀, 말 안 듣는 자녀, 심지어 말 잘 듣는다고 생각되어지는 자녀라도 부모는 먼저 자녀의 시야와 관점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진실한 이해는 여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시야와 관점에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들이 많다. 이러한 부모들은 자녀를 진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기보다는 용서하고 참는다는 생각을 한다. 용서하고 참는다는 생각은 소멸되지 않고 누적되어가다가 어느 한순간 폭발한다. 이는 풍선에 바람을 계속 불어 넣으면 언젠가 펑하고 터지는 것과 같다.

 

알면서 행동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이는 푸른 잔디나 잎들을 보면서도 봄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어른이 있는 것과 같다. 부모는 자녀에게 완벽성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부모 스스로도 완벽하지 않은데 어린 자녀들이 어찌 완벽할 수 있겠는가. 자녀의 시야와 관점으로 자녀를 바라보면 천진난만하고 실수투성이의 행동이 이해될 수 있다.

 

아이들은 약하다. 시야 밖의 사물을 보거나 관점 이상의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다. 보호와 도움 없이 아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은 잘못을 넘어서서 아이를 해치는 범죄가 될 수 있다. 뜨거운 물을 담을 수 없는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은 그 유리컵에 대한 해악 행위다. 때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본인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자녀에게 해악 행위를 저지르고 있을 수도 있다. 자녀 수준에서 자녀를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당위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부모는 하나 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자녀의 시야와 관점을 넓혀 주어야 할 의무도 있다. 창밖의 풍경을 혼자만 감상해서는 안 되고 자녀를 안전하게 도와서 그 풍경을 바라보게 해주어야 한다. 이는 자녀의 수준에서 나아가 부모의 수준을 자녀가 이해하도록 해주는 방법이다. 이러한 도움 행위 없이 부모 수준을 자녀에게 이해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이고, 부모의 무능력이다. 

 

syhaa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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