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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만규 회고록 ④
부친 전상천씨는 전형적 어부(漁夫)
 
이종국 기자 기사입력 :  2010/04/1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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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 전상천(上天. 작고)씨는 가족과 바다 밖에 모르던 분이었다. 부친은 8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나 20대에 이미 나머지 7형제를 보살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했다.
 

  부친은 고기잡이에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어망도 직접 짰다. 인천에 가서 목실을 사다가 시육지(돌고래의 옛말, 또는 상굉이)에 기름을 메겨서 그물을 만들고는 했다. 여름에는 밖에서 겨울에는 방안에서 그물을 짜고 뜯어진 그물을 수선하는 일등을 했다.
 

  그런 성실한 노력으로 범선도 마련하고 토지를 장만하기도 했다. 전만규 씨는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부친을 따라 바다에 나갔다. 어망을 설치하고 고기가 걸려드는 물때까지의 시간이 있는데 낮에는 신문과 책을, 밤에는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1968년 김신조 일당이 침투한 이후 해안에 대한 경계가 삼엄해졌다. 해안가에 철조망을 치고 어부들이 조업을 나갈 때마다 경비초소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린 전만규 씨는 당시 부친에게 함부로 대하는 군인들에게 적개심을 느끼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전만규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삽교천 방조제 공사 이후 발생한 조류변화로 갑자기 고기마저 잘 잡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대통령에게 호소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발송까지는 하지 않았다.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듣다

  국민학교 3학년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연말이 되면 각종 트리장식으로 교회 주변이 번쩍번쩍 하는 모습이 신기했었다. 교회에 처음 강론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전도사님은 성경 말씀 중 "다윗이 돌팔매로 골리앗을 눕히고.."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래서 다윗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식을 앞두고 당시 전도사님에게 주례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중학교 때 은사님께 다시 부탁드린 일이 있다.

  전만규씨 형제는 전옥순-전만규-전홍규-전순자 이렇게 4남매 였다. 형제 간 우애는 좋았다. 그러다가 매향리 평화운동에 뛰어 들면서는 다소 사이가 멀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회복됐다. 부친의 형제분들인 숙부님들도 "집안을 망하게 할 작정이냐?"며 투쟁 당시에 만류를 자처했었다. 경찰, 공무원, 군인 등 국가기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총 망라돼서 형제와 숙부님들을 회유해 이루어졌던 일이었다. 당시 가까운 친척들과도 사이가 매우 안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마음은 무척 괴로웠다. 폭격장에서 산화되더라도 옛날의 조용한 어촌마을로 되돌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는데, 그 의지를 꺾으려 하는 친인척들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사진은 전만규씨 중학교 재학시절


  그렇지만, 부친만은 달랐다. 겉으로는 매우 엄한 분이셨지만, 마음 속에는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매우 크고 넓은 분이셨다. 장남인 전만규씨에게는 배려 보다 책임감을 늘 강조하셨다. 결국, 옳은 일이라면 끝까지 밀어부치라고 격려해 주셨던 분은 다름 아닌 부친이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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