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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농업, 견고하게 짜여진 조직과 제도가 힘이다
백용(프랑스 해외농업정보조사전문위원)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08/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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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출농가 연수단 기고문

  농가 연수단 일행이 탄 TGV열차가 목적지인 브레따뉴를 향해 달리는 동안 단원들의 시선은 차창밖에 펼쳐 보이는 넓은 들녘으로 모아졌다.

 11월인데도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는 프랑스의 농토를 보며 부러움과 함께 다가오는 한국농민의 현실. 이런 모습은 비좁고 척박한 땅을 일궈야하는 한국 농업인들과 프랑스의 농촌을 향할 때마다 느꼈던 것이었고 그때마다 필자의 마음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TGV라는 첨단기술의 상징이 파리에서 450㎞나 떨어진 어느 작은 농촌마을을 향해 시속 200㎞가 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부터, 농업은 낙후된 전통산업이 아니라 미래를 이끌어 가는 첨단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이번 연수단은 이런 느낌이 현실로 실천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우리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빡빡한 일정의 강행군을 계속했다.

  지역단위부터 전국단위까지 견고하게 짜여진 협동조직들, 그 안에서 각 지역들과 생산품목들의 특성이 반영된 다양성, 엄청난 규모의 투자와 우수한 고급인력들이 배치된 연구개발, 그리고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유통과정의 정비, 또한 협력과 경쟁을 거듭하는 각 주체들…

  이런 프랑스의 농업현실은 프랑스가 세계 2위의 농업대국임을 증명해 주는 실체들이며, 결코 유리하게 주어진 국토와 기후만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들이기에 이번 견학은 진지함을 더해갈 수 있었다.

  “뭉쳐야 산다??
  연수단의 첫 방문지였던 브레따뉴 지방의 과일 채소 협동조직에서 발견한 교훈은 "뭉쳐야 산다"는 것이다. 잘 아는 교훈이고, 그래서 해보자고 외쳐보지만 쉽게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운 이 비결을 통해 브레따뉴 지방의 과일과 채소는 프랑스 국내시장의 선두대열에 나서면서, 총 생산량의 40%를 독일과 영국 등지로 수출하는 우수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프랑스 지도에 서쪽으로 돌출한 반도인 브레따뉴 지방은 유럽최대의 돈육 생산지역으로 과일과 채소가 주력 생산품은 아니다. 북쪽 해안가를 따라 길게 펼쳐진 농토를 경작하는 브레따뉴의 과일·채소 농가들은 10ha 미만의 상대적으로 작은 경작지와 가족농 중심의 소규모 영농이 대부분이다 (프랑스의 평균 경작면적은 45ha).

  이들은 지난 60년대 중반 무렵 프랑스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대규모 기업농화 추세에 밀려 존폐위기를 맞았고, 이때 농민들은 브레따뉴지방 특유의 단결력을 발휘하여 오늘 탄탄한 경쟁기반을 갖추게 되었다 (브레따뉴지방은 브레똥이라는 지역 고유언어를 지금도 사용할 만큼 지역주민의 단합력과 자존심이 강하다).

  농업협동조직을 통해서, 생산과정은 물론 구매자들과의 상업거래관계에서 효과적인 성과를 얻는 방법은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이다. 하지만 말이나 생각처럼 실천에 쉽게 옮겨지고, 성과도 늘 만족스럽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브레따뉴는 어떤 성격의 협동조직을 통해 오늘의 성과를 누리고 있는가 ?

  첫째, 브레따뉴 지방의 (한국의 도 규모정도의 인구) 전체 과일, 채소, 화훼농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광역조직을 결성했다. 광역조직은 소규모 영농으로 구성된 브레따뉴 지방이 국내 과일·채소시장에서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의 기반을 제공해주면서, 동시에 연구개발과 마켓팅에서 규모의 투자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이 지역의 11,000여 농가들은 10여개의 단위협동조직을 결성하고, 이 협동조직들은 브레따뉴지역 (과일, 채소)농업경제위원회를 중심으로 다시 통합된다.

  이렇게 재통합이 추진될 당시인 60년대 말에는 지금의 두 배에 달하는 농가들이 있었고, 조직에 참여를 거부하는 농가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협동조직법은 지역농가의 3분의 2이상이 참여한 조직에게 합법적인 대표성을 인정해주고, 유럽연합 농업지원정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서 조직에 참여하지 않는 농가들을 자극했다. 또 결성된 통합조직이 성과를 보임에 따라 이 지역의 전체농가가 참여하는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둘째, 지방 농업경제위원회의 활동은 생산, 품질, 마케팅, 연구개발에 이르는 영역에서 이뤄지므로 협동조직을 종합적으로 활용한다.

  대게 협동조직들은 활동을 생산과 판매과정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브레따뉴는 연구개발, 품질관리, 마케팅 홍보사업, 영농기술정보, 그리고 시장정보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활동을 하고있다.

  셋째, 브레따뉴 지역농업경제위원회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조직으로 운영비용은 농가들이 매출액의 일정비율을 납부한 회비로 운영된다.

  물론 단위협동조합에 대한 유럽연합당국의 지원은 해당사항마다 별도로 이뤄지지만, 브레따뉴 지역농업경제위원회의 운영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다.

  왜 받지 않는가?
  첫째 이유는 브레따뉴 농민들의 자존심 때문이며, 특히 60년대 말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조합운동 가운데 정부의 간섭을 거절하면서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고 자립한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부지원을 받을 경우 조합원들이 지원에 대한 의존심리가 높아지고 자립적인 책임의식이 나약해질 뿐만 아니라 지원금 이용을 둘러싼 갈등의 소지마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브레따뉴는 세 군데 산지 전자경매시장을 설치 운영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거래의 기동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고 나아가서는 지역 생산물의 가격안정을 도모한다. 프랑스에서는 브레따뉴 지역만이 유일하게 산지 경매시장을 운영하는데 브레따뉴가 유럽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고립지역이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이다.

  경매에 의한 판매방식에는 장단점이 있겠지만, 브레따뉴처럼 생산자조직의 단합력이 갖춰지면 장점이 부각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판매과정에서 전략적인 협력제도를 운영한다. 이 제도의 첫 번째 요소는 판매가격이 위원회에서 산정한 생산비 이하로 내려갈 경우 판매를 중단하는 최저가격제한 제도다.

  판매가격이 계속 하락할 경우 이런 조치가 취해지는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근본목적인 일종의 경보장치인데,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걸로 봐서 성과가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요소는 판매시장을 가공공장, 수출, 그리고 국내시장으로 나눠서 접근하는 방법이다. 수출은 가격과 공급량이 고정된 중장기계약 형태를 취해서 안정적인 시장으로 확보하고, 국내공급은 시장의 상황변화에 적응하는 이중적인 판매전략을 취한다.

  이 제도 안에서 수출은 생산비용을 보장하는 한 단기적인 국내가격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진행되며, 때로는 높은 국내판매가격에서 보상받기도 하고, 때로는 낮은 국내가격을 보상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조합 단위로 상품이 출하·판매되고, 위원회가 대금정산을 관리하므로 개별농가들 간에는 자신의 상품이 수출로 나가던, 국내시장으로 나가던 수입에는 차이가 없다.

  그리고 냉동 또는 가열가공 공장으로도 출하하는데 이 공장들은 브레따뉴 안에 위치하고 브레따뉴 산 농산물을 가공하므로 결국 시장상황이 극히 불안정할 경우에는 이 가공공장들이 수요시장으로서 마지막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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