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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뉴스 주부백일장 수상작 차상 -이윤자-
아부지에게 구하는 용서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08/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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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장인 어른 기일이 언제야?”
“왜?”
“회사일일 바빠서 미리 스케줄 잡게, 이번에는 꼭 가야지.”
“음... 양력은 잘 모르겠는데 음력으론 11월 1일이야.”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어두침침한 거실 분위기가 왠지 마음에 거슬렸다 앞 동에서 볼세라 쳐
놓은 블라인드 줄을 하래로 확 잡아 당겼다.

순식간에 햇빛이 눈부시게내리 쬐어 얼굴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아래를 보니 언제 가을이 그리도빨리 왔는지 단풍이 군데군데 물들어 있었다. 낙엽도 돌돌 말린 채 바짝
말라 바람결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주름진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11년 전 이맘쯤 이었다. 아버지 생신이라 가족들이 다 모이기로 했다.
나도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서둘러 터미널로 향했다. 비포장 길 위로
덜커덕거릴 때 마다 멀미가 나를 괴롭혔다.

4시간 걸려서 동네 어귀의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어둑어둑해진 저녁이었다.
익숙한 길이었지만 비탈진 흙길을 처녀 혼자 걷노라니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이었다. 또각또각 빨라진 내 구두 소리가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조금 지나 어릴 때 큰 바위 뒤에 숨어서 학교 갔다 오는 친구들을 놀래 키던
공포의 장소를 지나니 어렴풋하게 그림자가 앞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가늘고 구부정한 허리에 지게 가득 볏단을 지고 가시는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를 보고 반가이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여느 아버지처럼 무뚝뚝하고 말씀이 없으신 분이시라 나는 한 번도 살갑게 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부지, 저 왔어예.”

아버지는 무거운 짐을 진 탓에 쉬이 뒤돌아보지 못하고 더디게 나를 바라보셨다.
“오냐, 윤자 오나.”
“예.”

그러나 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앞서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 천천히
뒤따라갔다. 산더미 같은 짐을 지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냥 한숨이
나왔다. 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가 몇 번 “흠”하는 헛기침 빼고는 찌릿찌릿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여기서 집까지 내달리면 단숨에 가는그 거리가 그날따라 그렇게 길수가 없었다. 긴 침묵이 내겐 더할 나위 없이 견디기 힘들었다. 이윽고 백열전구 빨간 불빛이 눈앞에 들어왔다.

집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아버지를 뒤로 한 채 “엄마”하고
소리 지르며 냅다 달려갔다.

온 가족이 다 모이니 이제야 사람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의 긴
침묵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꺼운 겨울옷을 다 벗어 던진 것 같아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내가 오는 사이에 가족들은 이미 지지고 볶아서 생신 상을 제대로
차려 놓았다. 뒤따라 들어오시는 아버지는 차려놓은 음식을 보시고 또 한 번 “흠”
하신다. 그리고는 “머할라꼬 이리 많이 차리노, 술 한 잔 있으면 되지.”
아마도 당신의 생일잔치가 쑥스러우셨다 보다.

저녁을 먹고 서둘러 치우는 언니들을 놔두고 마당으로 나갔다. 아버지와 엄마께서
사랑채에서 말씀을 나누시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아부지요, 윤자 만나는 사람이 있다하던데, 건너... 사돈...촌수...”
“무슨 소리고, 내가 아재뻘 되는 촌수인데 어떻게 사돈할 수 있노, 안 된다.”
“그래도 저거들끼리는 좋다하던데 우짜겠소.”

엄마의 설득에도 아버지는 화가 나신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시골동네는
건너에 누가 사는지, 논이 몇 마지기인지, 소가 몇 마리인지 서로를 훤히 아는
사이인지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는분과 사돈을 맺는다는 것은 동네의 수치며 집안 체면을 깍아 먹는다고 생각하신다. 닫혀 있던 문이 확 열렸다. 듣고 있다가 움찔 놀란 나를 보며 아버지는 고함을
지르셨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 그리고는 빨간 실핏줄이
서려 있는 왕방울 같은 눈으로 부라리 셨다. 순간 마른 날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결혼 반대의 벽에 부딪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아버지의 완고하신 성격은 날아가는 까마귀도 다 알세라 그 누구도 감히 아버지의
고집을 꺽진 못한다는것을 알기에 나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하는 절망감에 자식의 행복보다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순간 아버지에 대한 강안 반감이 섰다.
“아부지, 그럼 아부지 돌아가시면 우리 결혼할 수 있겠네예, 그 때까지 기다리면
되겠네예.“ ”저 가시나가 못돼 쳐 먹어 가지고.“

“저거 아부지 그만 하이소, 니 아부지한테 머하는 짓이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그날 밤 생신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불편한 심기에 술을 들이키신 아버지는 불쾌하신 얼굴로 “망할 것” 하시며 그
길로 주무셨다. 아버지가 잠드신 후, 썰렁해진 분위기가 어색한지 가족들은 말없이
마당 구석에 모닥불을 지폈다

나도 그 곳으로 갔다. 나뭇가지로 뒤적뒤적해서
키우는 불길 밑으로 나는 밤을 서 너 개 집어넣었다. 밤 껍질을 까지 않은 탓인지
탁탁 터지는 소리가 났다.

조금 전의 답답함도 조금 사라지고 나니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 와중에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며 철없는 나는 마음 한 켠에 오기를
키웠다. 꼭 결혼해서 알콩달콩 사는모습 보여주마, 너무 행복해서 미치는
모습을 보여 줄테다.

그리고 한 달 후, 막 출근해서 커피를 마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다른 때와 다르게 느껴지는 전화소리. “전화 바꿨습니다.”

“윤자야, 오늘 아침에 아버지 돌아가셨다.” 통곡하며 울어대는 큰 언니의 전화를
받으며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죄를 어떻게 용서 받아야 하나,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아버지 첫 기일에 딱 한 번 가보고 그
후론 지금까지 가뵙지 못했다.

 많이 쌀쌀해진 날씨에 홀로 먼 산을 바라보고 계실 아버지가 많이 외로우실 것 같다. 술을 그리도 좋아하시던 아버지 산소에 술 한 잔 쳐 드리고 싶다.
아버지, 눈에 흙이 들어가도 결혼은 안 된다는 사위랑 다음 달에 찾아뵐게요.

그 사위가 자주 가 뵙지는 못해도 아버지 기일만큼은 얼마나 챙겨보는지 몰라요.
제가, 어리석어 했던 몹쓸 말들 이 자리를 비러 진심으로 용서를 빕니다.

대신 제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갚을게요. 그동안 무거운 돌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탓인지 꿈 속에서 만나는 아버지는 항상 저를 외면했는데, 이제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편하게 만나고 싶습니다.

아버지, 무뚝뚝한 아버지만큼 이나 무뚝뚝한 딸이 당신에게 처음으로 고백 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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