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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3] 살해된 아이에 관한 기억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7/1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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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 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신문

아주 어렸을 적 시골 동네 냇가 자갈들 틈에 버려져 죽어 있는 생명체를 본 적이 있다. 손가락 세 개 정도 합친 크기나 될까. 겨울인데도 꽁꽁 얼지는 않고 물에 퉁퉁 불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 같이 놀던 아이들 중 몇이 기다란 막대기를 주워 와 그것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때 우리들은 막대기 끝의 향방을 따라 흐물거리며 뒤척이던 그것이 누군가의 뱃속에서 금방 나온 사람의 생명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야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라도 그것은 뭔가 심각하고 금기적인 사건의 희생자임을 금세 지각했을 테고 곧바로 전화기의 112를 누를 만큼 ‘의식화’된 세상이지만 그때의 아이들은 이내 다른 놀이에 호기심이 팔렸고, 집에 돌아가 누군가 어른들에게라도 말씀드릴 지각력 있기에는 모두 너무 어렸고 야만의 상태였다. 명백한 살해사건의 희생자인 자갈밭의 그 아기는 그 후로 어떤 ‘사건’의 이름에도 올려지지 않았고 다만 하나의 유기화합물이 분해되는 현상(現象)으로만 기억 속에 현상(現像)되었다.

 

지난 6월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출생미신고아동 전수조사 이후, 잊고 있던 그 야만의 시절을 오랜 기억의 무덤에서 불러내는 사건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지난달 초 수원 장안구의 한 아파트 냉동고에서 4~5년 전 친모에게 살해당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된 이후 신생아를 살해하거나 방치·유기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연이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나 아빠는 자신들이 만들어 낸 생명을 얻자마자 목을 조르거나 변기에 빠뜨리거나 쓰레기 봉지에 담거나 몇 시간이고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어 죽여 버린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수는 한 해 평균 15명에 이르며 숨겨진 죽음까지 합하면 얼마나 더 많아질지 모른다고 한다. 신생아 살해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채 죽기 때문에 파악 자체가 어려워 통계를 낼 수조차 없는 모양이다.

 

신생아 살해자의 80% 정도가 10~20대 미혼모라고 한다. 살해 이유는 미혼 출산에 따른 수치심이나 가족이 알까 봐 두려웠다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생활고를 호소한 경우가 그 뒤를 잇는다.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법원은 ‘치욕 은폐’, ‘양육의 어려움’, ‘출산 당시 산모의 비정상적 신체·정신적 상황’ 등을 고려해 다른 살인보다 관대하게 처벌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 사회에는 상황윤리에 따라 관용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잣대나 가치관이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양보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법이며, 그 엄격한 절대적 가치란 사랑과 생명의 가치이다. 생명과 생명이 만난 사랑의 행위로 이루어 낸 생명의 일이 곧 죽음에 이르는 일이라면 그것은 곧 인간의 사회가 지옥에 이르는 일이다.

 

나는 실은, 세상에 태어나 눈도 뜨지 못한 채 살해되는 수많은 아이들 앞에서 이런 뻔한 생명윤리의 재각성이나 재발 방지를 위한 당위적 제도 수립을 촉구하려는 건 아니었다. 수도 없이 재출현하는 어릴 적의 그 겨울 냇가의 자갈밭, 막대기를 주워 쿡쿡 쑤시고 뒤적여보기만 했던 우리는 모두 살해의 공범자들이었다. 오랜 기억의 무덤 속에서 자꾸만 살아나오는 그때 버려져 죽은 그 아기 사람을 지금도 단지 막대기로 뒤적여보다가 금세 다른 놀이에 정신이 팔리는 야만의 시절에 있는 건 아닌가 두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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