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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2]투명 인간이라는 새로운 계급의 청년들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6/1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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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 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신문

‘절망이 양산되는 시대’는 박경리 선생이 생전 IMF 무렵의 우리 시대를 진단한 말이다.

 

우리 시대 고독사가 해마다 늘고 있다. 고독사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해마다 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고독사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2,412건이던 고독사가 2021년 3,378건으로 4년 만에 거의 1천 명 가까이 늘어나 연평균 8.8%의 가파른 증가율을 보였다. 또한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독사 위험군은 152만여명으로 추정됐다. 전체 인구의 3%다. 고독사란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임종을 맞아 일정 시간(보통 72시간)이 지난 뒤 주검이 발견되는 죽음이다. 외국의 경우 고독사는 대부분 노년층의 문제로 인식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중장년층 4050대에로 주류가 옮겨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2030대 청년들의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청년 고독사는 2021년 기준 217명이며 해마다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 청년들은 다른 연령대보다 자살 비율도 많다. 중위 소득자의 30~50%는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이 중 청년기초생활수급자는 올해 26만 명으로, 10년 새 50% 이상 증가했다. 

 

효율과 경쟁 중심의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물신의 가치는 점점 확고해져서 생명은 상대적 가치로 전락하고 돈이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고래로 인간 실존의 근원적 불안은 죽음에 있는데 근래의 청년들에게는 삶이 실존적 불안의 근원이 되었다. 취업난에 따르는 경제적 빈곤, 관계 단절로 인한 사회적 고립감, 심리적 압박과 박탈감을 견딜 수 없어 청년들이 자살을 한다. 돈이 있어야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에서 돈이 없는 구성원은 ‘쫓겨나’ 제도나 체제로부터 호명되지 않는다. 존재해도 부재하는 존재, 부재가 자연스러워지는 존재,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재가 실제로 부재했을 때에야, 즉 죽어서야 비로소 조명되고 드러나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현실의 악조건을 견뎌내며 아득바득 살아내는 존재에까지 박탈감을 전염시킨다.

 

요즘 웹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타임슬립물들이 성행하는 이유도 청년들의 현실적 절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타임슬립류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투명 인간이 되어) 과거·미래로” 와 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현재를 더 좋게 만들고 싶다든가 미래에서 얻어진 지식을 이용해 현재의 갈등을 해소하고 싶은 ‘불가능의 가능’ 욕망을 작품의 인물을 통해 대리만족하면서 청년들은 점점 투명 인간이 되어 간다.  

 

사회 체제의 ‘구조공학’을 구현할수록 하부구조에는 투명들이 많아지고 있다. 배제되고 무시되고 튕겨져 나가 한강에, 바다에, 아파트 화단에 떨어지고 공중으로 올라 목을 매는 투명들... 투명을 끌어모으면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투명과 시가 함께 울면 힘이 생길까. 아니 투명은 대체 끌어모아질 수 있는 것일까. 투명의 힘을 모아 저 투명의 유리벽을 깨부술 수 있기나 한 걸까. 한 시인의 시 속 서사에서처럼 밤새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빌딩의 유리를 닦지만 날이 밝으면 유리를 닦은 사람들은 빌딩으로부터 지워진다. 유리가 사람들을 깨끗하게 지울 때 시는 저 잘 닦인 유리벽의 강고한 수직에 맞서서 다시 시의 척추를 곧추세우며 질문하고 각성한다. 본질을 간과할 때 서로 투명이고 투명을 강요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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