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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칼럼 6]내 이름은 은수원사시나무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6/12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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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바람에 뒤집히는 은수원사시나무 잎의 빛나는 자태를 나는 사랑한다. 바위를 만난 강물처럼 하얗게 뒤집히는 잎들의 군무 앞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감탄하고 있을 때 어떤 이념이나 관념 혹은 의미나 이해를 따지지 않고 아름다움에 매혹될 줄 아는 내가 회복된다. 

 

대개는 은사시나무라고 부르는데 굳이 수원을 더해서 꼭 은수원사시나무라고 부르는 것은 지명과 나무가 일체가 되어 자신이 뿌리내린 장소의 기억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애를 실천하는 은수원사시나무의 이름 속엔 유럽의 은백양과 수원의 사시나무 가계가 국경을 넘어 혼례를 치룬 기억이 족보로 남아 있기도 하다. 뿌리를 간직한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이 서로를 허락할 때 익숙한 관계의 구태를 벗고 새로운 관계망 가운데 창조의 영토에 경이로운 생명력을 뿜어내는 진리를 은수원사시나무는 온몸으로 증명한다. 과연 그 경이로운 생육 성장력과 무던한 적응력을 토대로 은수원사시나무는 산과 하천과 들판을 가리지 않고 조림되면서 황폐화된 산야를 녹화하는 선봉이 되었다. 나라 잃은 시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가도, 가도 붉은 산이다./ 가도 가도 고향뿐이다./ 이따금 솔나무 숲이 있으나/ 그것은/ 내 나이같이 어리고나”(오장환, 「붉은 산」전문)라던 탄식을 은수원사시나무의 혼종성에 기대어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은수원사시나무는 한때 현(玄)사시나무라고 불렸다. ‘현(玄)’에는 검다는 뜻만 아니라 아득하고 멀고 그윽하다는 뜻이 겹쳐 있으니 적절한 명명이라고 하겠으나, 그보다는 은수원사시나무를 개발한 임학자 현신규 박사(1911~1986)를 기억하기 위함이다.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산 그의 삶이 현묘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현묘지도(玄妙之道)는 현신규 박사가 남긴 말에서도 드러난다.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또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마음속은 헤아릴 줄 몰라도 나무의 생리나 애환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눈이 트였다.”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은 장주의 호접몽을 구체적으로 살아낸 자의 청담현학이다. 현학의 중심은 간단없는 배움과 질문을 통해 완성된다. 그것은 무한을 이고 살면서 천지의 변화무쌍에 끝없이 반응하고 교감하는 나무의 생을 닮았다. 그는 실제로 기존의 통념을 깨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 ‘포플러나무속은 평지에서 자라고 수분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경사진 산지에는 심을 수 없다’는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서 은수원사시나무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포플러나무의 낙엽병으로 고심을 하던 호주 정부는 숲을 현사시나무로 교체할 계획을 세웠다. 새 작명을 원한 호주 정부의 요청에 현신규 박사는 ‘Yogi’란 이름을 지어줬다. ‘Yogi’는 현사시나무의 부계인 수원사시나무가 처음 발견된 수원시의 여기산에서 따온 것이다. 여기산의 숨결이 바다 건너 호주의 대지를 불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삽상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호주의 숲을 산책하는 누군가는 은수원사시나무의 노래를 들으며 ‘여기’에 대한 꿈을 꿀 것이다. ‘칠보산 넘어 드는 정기의 바람에, 붉은 흙 무르익는 내음새’를 사랑한 현신규 박사의 <육종의 노래>를 듣는다. 나무와 사람과 장소가 하나가 되어 부르는 은수원사시나무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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