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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수 시인 칼럼 4]
아기별과 눈 맞추기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3/03/2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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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화성신문

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초등학생들의 시화집 선물을 받았다. 몇 년 전에 출간한 동시집 ‘한눈파는 아이’를 읽은 관내의 새봄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청계초등학교, 호연초등학교, 무봉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시에 그림을 그리고 한쪽 귀퉁이에 짧은 감상문을 쓴 편지 묶음이었다. 한결같이 답신을 기다리고 있겠다는 소망들이었다.

 

시가 뭐냐는 질문부터 장래 소망으로 작가가 되겠다는 뜻,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시를 써달라는 응원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개성들로 빛나는 편지에 일일이 화답을 했다. 손편지를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몰랐다. 내 필체를 스스로 낯설어하며 한 장 한 장 쓴 편지를 지도교사에게 전달하고 나니 지천이 봄꽃으로 기운생동 중이다. 문학관에 온 이후 가장 뿌듯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기왕에 참여한 학교의 학생들 전체가 공유할 편지는 따로 썼다. 그 중의 한 대목이다. 

 

“여러분, 20세기 이후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 선생님은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답니다. 시화집 속의 그림과 글과 질문들을 만나면서, 저는 여러분들이야 말로 타고난 예술가들이란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가들의 특징은 평소에 엉뚱한 질문을 잘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나 사물들에 호기심이 많고, 또 아프거나 슬픈 사람들을 만나면 곁을 쉬 떠나지 못하고 함께할 줄 아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일에도 부끄러워할 줄 알고, 감동할 줄도 알지요. 이런 소중한 마음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예술 속에선 세상과 좀 다른 이야기, 사람들의 상식과 어긋나는 말을 해도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않거든요. 그건 사람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있기 위해 오래전부터 지속해 온 약속 같은 것이어서, 오히려 상상력이 탁월하다거나 기발하다는 감탄을 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여러분, 시를 쓰면서 얼마든지 용감하게 질문하고 노래하고 상상해 보세요. 저는 피카소 선생님의 말씀처럼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안의 어린이를 잃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친구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를 읽었답니다. ‘아기별’이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40년이 지나도록 그 친구는 그 시를 액자 속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시를 들려준 친구는 ‘아기별’을 쓰던 밤의 풍경들이 지금도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다고 하였어요. 세상을 살아오면서 친구는 어떤 어둠이 오더라도 그 시를 별처럼 간직한 채 결코 꺾이지 않는 튼실한 삶을 가꾸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기별의 눈빛으로 세상의 외롭고, 쓸쓸하고, 희미하게 빛나는 것들을 다감하게 바라보았겠지요. 저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쓰는 시들에 그와 같은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편지에서 소개한 벗은 은행 지점장으로 불철주야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를 보내고 있다. 자신이 자신을 착취하는 ‘피로사회’의 급류를 통과하며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황폐한 느낌이 들 때면 벗은 가슴 속의 ‘아기별’과 눈을 맞춘다고 한다. 바로 피카소가 말한 자기 안의 예술가다.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하면 자기 안의 예술가를 잃지 않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지난 계절 고양시 아람누리도서관의 ‘이 계절의 작가’로 선정된 뒤 전시공간의 한쪽을 아이들의 시화집으로 채웠다. 크레용과 싸인펜으로 만화방창한 시화처럼 만개한 꽃 그늘 아래 문학관 방문 계획을 세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 아이는 바로 당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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