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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182]
두 팔을 잃고도 화가가 되기까지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10/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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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석창우 씨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전기기술자로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기계 점검 중 2만2900볼트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이 사고로 두 팔을 잃었다. 그의 나이 30이었다. 그 때부터 막막한 삶을 살던 어느 날 네 살짜리 아들이 아빠에게 그림을 그려달라 했다. 그는 그 때까지 그림이라고는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의수로 살고 있지 않는가. “이걸 어떡헌다?” 그는 고민이 되었지만, 아들에게는 아빠로서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건 연필을 잡고 열심히 그렸다. 그래서 그린 것이 참새였다. 그냥 그린 것 치고는 모양이 제대로 나왔다. 이 때 석창우 씨의 아내가 이야기했다. “당신 그림이나 배워보지 그래.”

 

그렇게 해서 석창우 씨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미술학원을 찾아 등록을 하려 하였으나 그를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두 팔이 없는 사람을 가르쳐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신이 생각하기로도 연필 한 자루 잡고 쓰기도 힘든데 여러 색깔의 색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면 좀 더 쉽지 않을까?’였다. 전주에 살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원광대에 계시는 여태명 교수를 찾았다. 그는 수묵화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화가였다.

 

사군자를 배우고 싶다는 석창우 씨를 보고 여태명교수는 말이 없었다. 거절의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그는 굽히지 않고 한 달을 열심히 찾아갔다. 결국 그는 여 교수의 문하생이 되었다. 석창우 씨는 서예와 수묵화를 10년 정도 하면서 실력이 쌓여 대회 나가 입상도 하고 개인전도 열고 하였다. 

 

그는 점점 욕심이 생겼다. 미술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를 하면서 현대미술관에서 누드크로키를 접하게 되었다. 크로키는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간단하게 그리는 그림이다. 석창우 씨는 이 크로키의 맛에 빠져들었다. 연필과 목탄으로 배운 크로키를 자신이 잘 하는 붓으로 바꾸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붓으로 그리는 크로키인 ‘수묵 크로키’가 탄생되었다. 수묵 크로키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석창우 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새로운 장르가 되었다.

 

석창우 씨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장면을 화폭에 옮기기도 하고, 또 사이클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멋지게 담아내기도 한다. 방송에 출연하고 즉석에서 크로키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석창우 씨는 찰나에 대상의 혼을 훔치는 재주를 지녔다”고 평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교과서에 실리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 5종, 고교 교과서 3종 등 8종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2014년 소치 동계 장애인올림픽에서는 폐막식에서 수묵 크로키 시연을 펼쳐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4년 후 열리는 평창올림픽을 홍보하는 이벤트였다.

 

그는 2015년부터 성경필사를 하고 있다. 매일 4-5시간씩 붓으로 성경을 한 자 한 자 쓰면서 마음을 닦고 있다. 그 성경필사도 모두 작품이고 기록이 되고 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석창우 씨의 이야기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화를 복으로 바꾸는 것 말이다. 전화위복은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 걸까? 생각이 중요하다. 생각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가 아니다. 

 

자극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엄청 달라지는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동물이다. 두 팔을 잃었지만, 잃은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모은 것  그것이 전화위복의 시발이다. 

 

실제로 석창우 씨는 자신이 장애를 입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다. 자신이 장애를 입지 않았으면 그림을 전업으로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그림에 재주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었던 자신이었다. 자신이 장애가 없었다면 다른 사람처럼 직업 생활해야 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그림에 그렇게 빠질 수 있겠냐 하는 것이다.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석창우 화백의 전화위복에서 뺄 수 없는 요인이 곁에 있는 아내이기도 했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석 씨를 보고 아내 곽혜숙 씨는 “두 팔만 잃은 것이 다행이네.”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그려준 참새 그림을 보고 그림공부를 권유한 것도 아내였다. 결정적으로 식당 일을 하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린 것도 아내였던 것이다. 인생에서 이런 동반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고 산다, 어떤 때는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도 마련해준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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