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 구공탄 2000장, 설탕 6포, 밀가루 28포대 .. 1
글쓴이 한푼도

날짜 21.12.23     조회 5

 

 

 

 

이기붕家 선물 풍속도… 본보 자료실서 출입명부 발견 

 

 

 2001-04-18 

 

  

 

4·19혁명 41주년을 맞아 이승만 정권 당시 2인자였던 이기붕(李起鵬)씨의 막강한 권세를 엿볼 수 있는 희귀자료가 동아일보 자료실에서 발견됐다. ‘전 민회의장 이기붕가 출입인 명부(前 民會議長 李起鵬家 出入人名簿)’가 그것.

 

 

이 문서에는 4·19가 나기 한 해 전인 1959년 1월4일부터 12월30일까지이기붕씨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명단과 방문자들의 선물 목록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동아일보의 마크가 선명히 찍힌 400여장의 갱지에 쓰여진 것으로 미루어 당시 이씨의 측근들이 방문자와 선물 목록을 기록해둔 문서를 4·19혁명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이 입수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출입시간이 분 단위로 적혀 있는 이 명단에는 당시 자유당 실권자들과 장 차관들이 이씨 집을 자주 들락거리며 온갖 선물을 갖다바친 것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선물 목록에는 갈비, 생선, 과일은 물론 코카콜라 한 상자와 휘발유 3드럼, 포플린 3필, 아이스크림 3통, 심지어 병아리 3마리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자유당 평의원이었던 김성곤(金成坤)의원 부부와 신언한(申彦瀚)법무부 차관 부부의 활약이 눈에 띈다. 두 부부는 열흘이 멀다 하고 이씨집을 드나들며 이불, 새우젓, 소금 등을 끊임없이 실어나른 것으로 나타나 있다. 7월24일 우장춘(禹長春)박사가 ‘씨없는 수박 3통’을 선물했다는 기록도 당시의 풍속사를 살필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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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059308

 

 

 

 

 

 

 

          부정부패 원흉  이기붕  뇌물

 

 

 

[ ......  구공탄 2000장, 목탄(木炭) 15가마, 장작 4.5가마에 설탕 6포, 소금 13가마, 밀가루 28포대 .......     ]

 

 

 

[만물상]  이기붕 선물 목록기사 

 

           

  2006.03.14 

 

 

 

1960년 4·19혁명 데모대가 지금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 옆에 있던 국회의장 이기붕(李起鵬) 집을 쳐들어갔다. 4월인데도 수박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수박은 한여름에나 맛보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국민들은 ‘봄 수박’에 놀라 자빠졌다. 비닐하우스라는 게 있을 리 없던 시절, 사람들은 “수박을 냉장고에 보관했다더라” “아예 썩지 않는 수박이라더라”며 저마다 이 희한한 일을 해석하느라 열심이었다. 

 

 

▶ 권력자만의 ‘봄 수박’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사철 수박’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엊그제 나온 책 ‘장미와 씨날코’(김진송·푸른역사 刊)에 실린 이기붕의 선물 목록을 봐도 지금 세상엔 하찮고 흔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전 국회의장 이기붕가(家) 출입인 명부’를 분석해 책을 썼다고 한다. 명부엔 4·19 한 해 전 1년 동안 이기붕 집을 다녀간 사람 명단과 이들이 놓고 간 선물 1525건이 적혀 있다. 

 

 

 

▶ 아스파라거스 멜론 쌀 은어 새우젓 산양 노루 코카콜라 전기담요 돈궤 양수기 아이스하키 호랑이뼈…. 선물은 육·해·공과 농·공(農·工)을 가리지 않았다. 칠면조 8마리가 추수감사절에 들어왔고, 최고 부자들이 즐겼다는 독일 과일음료 ‘씨날코’ 30상자도 있다. 구공탄 2000장, 목탄(木炭) 15가마, 장작 4.5가마에 설탕 6포, 소금 13가마, 밀가루 28포대는 실질적 최고 권력자 집에 들일 선물이 맞나 싶다. 

 

 

 

▶ 그 시절 서울 청량리 야채시장 철길 쪽 너른 공터가 온통 장작시장이었다. 서울 복판에 장작을 우마차에 싣고 다니는 장사치들이 흔했다. 서민들은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오거나 어쩌다 장작 한 아름 사면 불 때고 밥 짓고 남은 숯으로 국거리까지 끓이던 시절이다. 장작과 연탄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겠는가. 이기붕이 받았다는 구공탄 2000장 값은 당시 서울 월급쟁이 한 달 평균소득 12만1902환과 맞먹었다. 구공탄 한 장 55환, 밀가루 한 포 2250환, 설탕 한 포는 8200환이었다. 

 

 

 

▶ ‘이기붕 선물 목록’은 거꾸로 우리 살림살이가 그새 얼마나 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권력자 집 곳간에나 채워져 있던 과일·고기·해산물·음료수가 지금은 여느 서민 집 냉장고에 흔하디 흔하다. 

 

 

이게 바로 천지개벽이고, 이 나라 민중이 땀흘려 쌓아 온 대한민국의 성장사(史)다. 대통령, 총리를 비롯해 역사를 다시 고쳐쓰겠다는 이 정권 사람들은 빠짐없이 이 선물 목록을 읽고 음미해 보길 바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3/14/2006031470481.html

 

 

 

 

 

 

 

 

 

 

[ ..... 여기서 노가다 하는게  북한에서 장관하는 것 보다 더 낫다 .......     ]

 

 

 

제목 : 귤이 아니라 사과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데 

 

 

 

 

간부들이라고 해서 일반 주민에 비해 낫다는 것이지 그들도 굳이 남한과 비교하자면 대망님의 말이 맞습니다. 

 

 

귤을 사계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김정일과 김용순 정도일 것입니다. 아마 김용순도 자기가 먹고 싶을 때 귤을 먹을 수 있을런지는 잘 모르지만.... 

 

 

 

남한에 와서 사계절 과일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놀란적이 있었어요.. 

 

여기서 노가다 하는게 북한에서 장관하는 것 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아무리 서민이라도 외국에도 마음대로 나가고 하루 벌지라도 돈만 좀 있으면 얼마든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까... 아마 김용순이도 외국가자면 김정일의 승인이 없으면 절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 ..... 북에서는 약에 쓰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그 탐스러운 참외들이 이국의 정서를 풍기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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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땅의 참외밭을 보고 감격하다 

 

 

 

우리 모녀가 ‘가다가 죽으면 죽는 게지!’ 하는 비장한 결심을 품고 산을 내려와 두만강물에 들어선 것은 1997년 8월15일 새벽 2시경이었다. 두만강 감탕물을 꼴깍꼴깍 먹으며 익사의 경계선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중국땅에 올랐다. 

 

 

누가 볼세라 강기슭의 무성한 강냉이밭에 들어간 우리 모녀는 잠깐새에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 꿈만 같아서 ‘이게 중국땅이 옳긴 옳은가?’하고 의심이 다 생겼다. 

 

 

강냉이 밭을 헤치며 앞서가던 딸애가 “엄마, 여기 참외밭이 있어” 하고 탄성을 질렀다. 서둘러 다가가서 보니 정말 참외밭이었다. 권투장갑만큼이나 큰 노란 참외가 새벽빛을 안고 여기저기서 그윽하게 빛나고 있었다. 

 

 

“중국땅이 옳구나!” 

 

 

북에서는 약에 쓰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그 탐스러운 참외들이 이국의 정서를 풍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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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 ..... 보통 나물 두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다 .......

 

 ......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

 

 

 .....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     ]

 

 

 

 

[ .....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

 

 

  .....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     ]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 했지요 

 

 

 

 

1947년 이화장 뒷집에 살았던 인연으로 李承晩 대통령 일가와 14년간 생활했던 方在玉(71)씨를 만났다. 이화장을 시찰하러 왔던 李起鵬씨가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화장에서 경무대, 다시 이화장까지 대통령 내외와 가장 가까이서 지내게 되었다. 경무대 禹石根(우석근) 경사와 결혼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을 매우 자상한 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매우 알뜰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方在玉씨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대통령은 方씨의 아버지를 경무대로 불러서 수술을 시켜도 좋은지 물은 다음 수술하게 했다. 처녀의 몸에 칼을 대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했 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 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 았어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옷도 산 적이 없다 고 한다. 천을 구입해 와서 비서인 김신영씨와 함께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입었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무섭게 절약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귀국하실 때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14년간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수발을 들었던 方在玉씨는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급한 성격이어서 화를 내면 할머니(方씨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할머니라고 지칭했다)가 일단 피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되지 않아요. 

 

 

할머니가 李대통령의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드리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일일이 확인해 봤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지시를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척척 했지요. 우리들에게 많이 맡겼어요. 소탈한 성격이어서 아랫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셨지요. 한국말을 배워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명령어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셨어요. 

 

두 분은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내셨어요. 그야말로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셨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 고생할 때 할머니께서 허리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손으로 맛사지해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명절 때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두었다가 일하는 사람들 생일이 되면 나눠주셨어요』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나이가 많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고 말하는 것은 와전된 얘기라고 전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직접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을 갖다 드렸고 신문을 꼭 읽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李起鵬씨의 아내 박마리아와 유일하게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열 국방장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윤치영 내무장관의 부인들과도 친밀하게 지냈으며 정운수 의원 부인 편정희 여사, YWCA 총무였던 박에스더, 이화여대의 金活蘭 박사, 김신실·김영의 교수,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씨 등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경무대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씨는 李承晩 대통령 영결식 때 흰족도리를 썼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고 일러주었다. 이화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름이 없어서 총무처에 기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온실의 화초를 팔아서 쌀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들 이화장까지 따라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두 분에게서 무엇 하나 어긋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검소하고 소박하고 너무도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요』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나자마자 경찰서에서 나와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내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무대 식구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方在玉씨를 비롯해 경무대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프란체스카 여사 영결식 때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무대 식구들은 아들 李仁秀씨 가족들과 내왕을 하고 있다. 

 

 

 

『전 정치적인 건 잘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기운 옷을 입고 아끼느라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돼요. 그때 경무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그랬어요.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요. 높은 자리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方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록새록 李대통령 내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 .....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

 

  .....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     ]

 

 

 

[ ..... 일가 친척들을 경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

 

 ..... 경호원 가운데 부정과 연루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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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李承晩 대통령은 「냉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가 친척들을 경무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습니다. 대통령의 甥姪(생질) 가운데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생질 남매에게 금족령을 내려서 경무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지요. 그런 분이었으니 당신께서 不正(부정)을 할 리가 없지요. 4·19 때 李대통령이 스위스 은행에 몇백억을 예치해 놓았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지금까지 한 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금전적으로 깨끗한 분이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수행원들에게 늘 당부한 말이 있었다고 한다. 

 

 

 

『「냉수먹고 된똥 싸라. 밖에 나가서 경무대 석 자를 팔지 말라」고 하셨어요. 경무대를 등에 없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말라는 의미였죠. 그 말씀을 자주 하셔서 항상 수행원들이 가슴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張勉(장면) 정권이 들어서서 강도 높은 조사를 했지만 경호원 가운데 부정과 연루된 사람이 없었습니다. 경호원이었던 곽영주씨가 사형을 당한 것은 4·19 때 발포 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얘기인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어느 해는 비서실 예산을 반납시켰을 정도로 경무대 사람들도 검소하게 지냈습니다.』 

 

 

 

李대통령은 항상 뭔가 골똘히 구상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金正旭씨가 바라본 李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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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때면 수행원들에게 와이셔츠를 하사하곤 했는데 그것도 모든 수행원들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몇몇에게만 주었다. 

 

 

『경호원들에게 봉투에 돈을 넣어서 준다든가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어요 . 두 분이 워낙 검소하게 사셨기 때문에 남에게 선물을 줄 만한 물건이 없었어요. 저도 몇 번 와이셔츠를 받았는데 영광이었지요. 한번은 쓰시던 중 절모를 저에게 하사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중절모를 아버지께 갖다 드렸더니 몹시 기뻐하시더군요. 대통령께서 대신 나에게 충무로에 가서 중절모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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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晩 대통령의 유일한 취미는 낚시였다. 광나루 워커힐 아래 강가나 경복궁 內의 경회루에서 매주 토요일 낚시를 했다. 낚시 외에는 가끔 비원을 산책하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하는 것이 취미생활의 전부였다. 

 

 

『술도 마시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모든 시간을 나라 살리는 일에만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 이 정도 살 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國運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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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사흘 후 1차 선발대가 대구로 떠나고 다음날 2차 선발대가 대전 으로 갈 때 金正旭씨도 합류했다. 李대통령은 대구에서 대전으로 옮겨와서 『왜 나를 멀리 보내려 하느냐. 나는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戰勢(전세)가 좋지 못해 수행원들이 서울로 가려는 李대통령을 충남도지사 관저에 모셨다. 

 

 

『대전 모기가 대단합니다. 모두들 고생이 많았지요. 戰時여서 대통령 내외를 편하게 모실 수가 없었어요. 두 분께 따로 식사를 차려드리긴 했지만 먹는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李대통령은 대전에서 사흘 간 머무는 동안 수원으로 가서 미국 측과 회담을 하고 오기도 했다. 대전에서 다시 진해에 있는 대통령 별장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밤이면 등화관제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 어두운데다 초행길이어서 수행원들이 대통령을 안전하게 모시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날 밤 비까지 오고 있었다. 수행원들이 그곳 지리에 밝은 충남도지사에게 안내를 부탁했지만 자유당 소속이 아니었던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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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원들에게 별로 말을 건네는 일이 없는 李承晩 대통령이 전쟁중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맥아더가 왜놈들을 상륙시켜 北進하자고 하는데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물으셨어요. 모두들 묵묵부답이었지요. 그러자 「나는 왜놈이 한국에 발을 들여 놓으면 총부리를 왜놈들에게 대겠다. 왜놈은 우리 땅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대통령 일행은 仁川상륙 직후인 9·28 수복 때 서울로 돌아왔다가 1·4 후퇴 때 다시 피난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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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말 듣지 않았다 

 

 

金正旭씨는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퍼스트 레이디가 한국 부인이었다면 경무대가 조용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프란체스카 여사의 가족 가운데 아무도 한국에 살지 않아 외척이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아예 없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너무나 검소하고 부지런한 분이었습니다. 계절마다 옷이 한 벌씩밖에 없었어요. 거의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경무대에서 모임에 초대되었다가 고픈 배를 안고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경무대에 초대받았으니 점심을 주겠지 생각하고 왔던 분들이 간단한 다과만 대접받고 가면서 굶고 간다고 말하곤 했죠. 특히 과자를 프란체스카 여사가 직접 구워 대접하였는데 그 일로 초대받은 이들이 감격하곤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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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장 음식은 검박하고 서민적이다. 새우젓은 으뜸으로 치는 음식 재료다. 찌개도 고기 대신 새우젓을 넣어 담백하게 끓여낸다. 

 

 

"아버님께서 새우젓 들어간 음식을 아주 좋아하셨어. 우리 집 음식 중에 사치하는 게 있다면 이 새우젓이야. 한 깡통에 8만원 씩이나 하는 걸 1년에 세통은 사야 하니까.". 

 

 

 

이화장 안주인인 이대통령 며느리 조혜자(56)씨는 시어머니 프란체 스카 여사 시절 입맛을 고스란히 잇고 있었다. 새우젓국에 집에서 만든 두부를 듬뿍 넣어 부드럽고 고소하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외국 국빈들을 접대할 때도 평소대로 새우젓을 넣은 찌개를 올리곤 했다. 

 

 

 

"우리네 음식이야말로 어머님,아버님이 장수하신 비결이었어. 아버님은 아흔, 어머님은 아흔둘에 타계하셨는데, 두분 다 기름기를 멀리하고 콩과 두부를 즐겨 드셨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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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찌개도 거의 빼놓지 않고 식탁에 오른다. 이대통령 양자인 이화 장 주인 이인수 박사 역시 부모 입맛을 그대로 닮았다.

 

 

 "우리집 비지찌개는 꼭 두부를 걸러낸 비지로 만들어. 뭐니뭐니 해도 그게 비지의 제 맛이라고 어른들께 배웠거든. 우리집 양반도 비지찌개 하나면 밥 한 그릇을 금방 비우시지.". 

 

 

 

경무대 시절 주방에서 좀더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두부를 거르지 않은 비지를 썼다. 그랬더니 이대통령은 "이 맛이 아닌데…"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조씨가 끓여낸 비지찌개는 맛과 모양새가 토속적이다. 걸쭉하고 투박한 "진짜 비지"와 풋고추, 홍고추가 어우러져 영락없는 시골집 어매 손맛이다. 

 

 

 

"어머님은 김치를 담그시다가 무가 달고 맛있으면 깎아 나눠주시곤 했어.시루떡을 즐겨 드셨고 떡국 끓이는 솜씨는 전문가셨지. 하와이 망명시절에 어머님이 끓이신 떡국이 어찌나 맛있든지 아버님께서 단숨에 두그릇을 비우셨대. 전형적인 한국 아낙이셨지. 국민들이 못 먹고 못 입는데 어떻게 사치하느냐고 입버릇처럼 걱정하시던 분이야.".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생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협립우산 한개를 30년 넘도록 사용했고, 옷은 물론 양말과 스타킹도 기워 신었다. 열두폭 스란치마를 휘날리지 않았어도 생활에서 배어나던 그의 기품이 아직도 이 화장 거실에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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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해 8월 8일 그는 경무대로 이사를 했다. 대통령 내외는 가구도 없었으므로 그때 처음 신접살림을 꾸미는 거나 다름없었다. 

 

 

당시 이승만은 부인 프란체스카가 손수 꿰멘 양말을 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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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헌법에 따라 1948년 7월 20일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국회의원들에 의한 간접 선거였는데, 이때 이승만은 재적의원 1백98명 중 1백80표를 얻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압도적인 지지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대통령 이승만 만세!」라는 소리로 의사당 안은 떠나갈 듯하였다. 그때 이승만의 눈에는 희미한 눈물이 괴었다. 그의 나이73세 때였다. 

 

 

이승만은 1948년 8월15일, 그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그해 8월 8일 그는 경무대로 이사를 했다. 대통령 내외는 가구도 없었으므로 그때 처음 신접살림을 꾸미는 거나 다름없었다. 

 

 

당시 이승만은 부인 프란체스카가 손수 꿰멘 양말을 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들은 두 사람의 가정부를 고용하였고, 1층 응접실과 두 개의 사무실, 2층에 침실과 식당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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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대통령에 취임해서 최초 18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번씩 내외신 기자들과 정례회견을 가졌다고 한다. 회견에 임해서는 보통 미리 성명서를 준비하는 것과는 달리 자유자재로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들이 질문에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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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자기 친족과 재산을 챙기기 마련이지만 이 대통령은 하야 이후 사람 키 만한 박스에 막대기를 꽂아 옷장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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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7.1.    의원 사무실  약 29㎡

 

 

 

[ ..... “국회의원들은  화려한 사무실이 부끄러운 줄 알라” .......     ]

 

 

 

[김명환의 시간여행]   [60] 세운상가에 들어선 최초의 의원회관, 8평 규모… 언론은 "호화판이다" 비난

 

 

 

김명환 前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장 

 

 2017.03.08 

 

  

 

50년 역사의 서울 세운상가는 전자제품의 메카였을 뿐 아니라 한때 정치인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국회의원회관이 1968년 7월 1일 세운상가 아파트에 들어섰다. 이 상가가 오픈한 지 1년 만이다. 국회사무처는 세운상가 아파트 라동의 5개 층을 통째로 임대해 175명 의원 전원에게 한 채씩 나눠줬다.

 

 

 

국회의원 175명의 사무실이 처음 들어섰던 1968년의 세운상가(위)와, 의원회관 입주일에 “국회의원들은 화려한 사무실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친 야당 인사들의 시위 모습(경향신문 1968년 7월 1일 자).

 

 

2000여 개의 점포와 900여 실의 고급 아파트로 이뤄진 세운상가는 청계고가도로와 함께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서울시는 "세계적 규모의 하와이 호놀룰루 알라모아나 쇼핑센터보다 세운상가가 더 크니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했다 (조선일보 1967년 7월 27일 자).

 

 

당대 최고 아파트에 입주한 국회의원들에 쏠린 여론의 시선은 전혀 곱지 않았다. 의원 사무실 하나의 면적은 약 29㎡(8평 7홉)여서 현재 여의도 의원회관 면적 148㎡(45평)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 됐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당시로선 그 정도도 호화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언론은 "물가고에 짓눌리는 국민의 눈앞에서 자행되는 후안무치한 낭비"라고 비판했다. "의원의 탈을 쓰고 호사나 하고 치부나 해 보려는 자들이나 생각할 일이지 제정신을 가진 인사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왔다. 의원회관 입주일에는 통일사회당 당수 등이 세운상가로 몰려와 "행정부의 시녀 국회의원들이여, 화려한 사무실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규탄 시위를 했다. 시위 때문에 이날 아파트 현관에서 가지려던 의원회관 입주식도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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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7/2017030703917.html

 

 

 

 

 

 

 

 

 

 

          박정희

 

 

 

 

[ .....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

 

 

  .....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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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은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분은 특히 먹는 데 그러하였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그의 친구인 한양대 교수 김병희씨가 박의장 방에 들렀다가 놀란 이야기를 쓴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병희씨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였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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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0&C_IDX=11579&C_CC=AZ

 

명동에서 철조망 치고 농사짓는 사나이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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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60, 70년대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실시했던 ‘분식의 날’을 언급하며 “보통 보리밥이나 콩밥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박 전 대표는 메추리알 크기의 감자만 도시락에 가득 담아왔다. 몸소 실천하는 자세와 국민과 함께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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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01100

 

"박근혜는 학생때도 원칙주의자"

[중앙일보] 입력 2009.05.09

 

 

 

 

 

 

 

[ .....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

 

 

 .....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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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그가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 검소했다고 증언한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인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경제 관련 부처 장관과 재벌총수 그리고 여야 대표 등이 참가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박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뒤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비록 말년에는 요정을 자주 찾았지만, 그의 검소한 식생활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는 게 추종자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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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

 

 

 ......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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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도 빠짐 없었던 보리 잡곡밥

 

 

 

  박 대통령은 물욕이 없었고 하물며 재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는 분으로, 이 사실은 서거 후 모든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 많은 현장 확인과 현장 지도의 길에 항상 박 대통령을 자동차 또는 헬리콥터 편으로 수행하였다. 아마 나만큼 민간인으로서 헬리콥터를 많이 탄 사람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을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 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과 대규모 다목적 댐과 방조제, 그리고 간척지 등을 내려다보며 마치 대통령 자신의 아파트나 집과 공장들이 늘어나고 대통령 소유 농장의 구조물이 이것저것 늘어나는 듯 기뻐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개인의 재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또 기뻐했다. 

 

 

 

  나는 박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파리채를 기억한다.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2층 서쪽 구석에 있는 내방은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으로 달구어졌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대통령이 틀지 않는데 내가 선풍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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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454707&ctg=10

 

<김정렴정치회고록>16.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절약

 

[중앙일보]  199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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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1년 다수확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하고 영농기술이 향상되면서 1977년 쌀 자급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분식의 날도 없애고 쌀 막걸리 제조도 14년 만에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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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잡으러 다니는 대통령 

 

 

 

 

박대통령은 무거운 한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하고, 부채질을 했었다. 지독한 대통령이었다. '에어컨은 관광호텔에서 외국 관광객에게 외화를 벌어들일 때나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언젠가 부속실 사람들도 견디기 어려워서 에어컨 대신 환풍기를 개조해서 시원한 바람이 돌게 했던 일이 있었다. 이것을 에어컨 켠 것으로 잘못 안 박대통령은 저녁을 먹으면서 근혜씨에게 '오늘 낮에 에어컨을 켰던데 앞으론 절대 못하게 하라'고 엄하게 말했다. 

 

 

에어컨 대신에 집무실 창문이 열러 있는 때가 많았다. 덕분에 곧잘 파리가 들어와서 혼자 앉아 있는 대통령을 귀찮게 했다. 그럴 때면 대통령은 파리채를 들고 파리사냥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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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516.co.kr/parkchunghee/humanpark_view.php?seq=46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mongol@chosun.com 

 

 

 

1979년 10월 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 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 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 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세이코,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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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 유학 못 보낸다고 했다”

 

 

박근령 이사장 “청와대서 보리밥만 먹어 아직도 잡곡밥 먹어”

 

 

 

조선닷컴 internetnews@chosun.com 

 

 200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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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사장은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으면서도 늘 검소함을 강조했던 일화도 밝혔다. 박 이사장은 “청와대에서 항상 보리밥을 먹어서 지금도 잡곡밥을 먹는다. 어릴 때 흰 쌀밥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고 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유학을 가고 싶었다고 했다. ‘왜 유학의 꿈을 접었냐’고 묻자, 박 이사장은 “아버지가 ‘공무원 월급으로는 유학을 못 보낸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표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것에 대해서는 “언니는 공부를 잘해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1등으로 졸업하고 장학금 받아 갔다”고 했다. 

 

 

박 이사장은 “지방에 내려갈 때 추풍령이 가까워지면 아버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할 때 여기가 제일 난공사 지역이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그분들 생각하며 묵념이라도 하고 가자’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월간조선은 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아버지는 다리 이름, 터널 이름을 일일이 물어보셨고, 우리가 그걸 다 외웠다. 아버지는 ‘다리 하나, 공장 하나를 건설할 때마다 보람을 느끼셨다’고 했다”고 월간조선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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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 식탁 위에 오른 원숭이 역시 김일성이 골을 다 파먹을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있어야 했다 ........   ]

 

 

 [..... 문의 손잡이는 상아로 만든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1회용이었다 .......   ]

 

 

 

 

 

김일성, 김정일은 연중(年中) 절반을 별장에서 놀아 

 

귀순한 김정일 경호원의 증언 

 

 

 

 

 

 김일성의 휴가는 길고도 길었다. 1년에 자모산 별장에서 보내는 시간만 한 달이 넘는 셈이니 그 수많은 별장에 가서 보내는 시간을 다 합하면 아마 1년의 반 이상은 별장 생활을 하는 셈이다. 

 

 

김일성은 ‘인민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뛴다’고 선전해놓고 실제로는 별장에서 한가하게 쉬고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은 별장에 오면 사냥을 하고나 별장 앞 호수에서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산책도 가끔 했다. 

  

 

 

  별장 안에 있는 문의 손잡이는 상아로 만든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1회용이었다. 김일성이 한번 손잡이를 잡으면 그것은 버리고 새로 만들어 달았다. 나는 버린 손잡이를 주워다가 잘 깎아서 담배 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김일성이 누리는 온갖 사치를 눈으로 직접 보고도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그런 호사를 누리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였던 자모산 별장을 관리하는 직원은 약 150~200명 정도였고 그 중 여자 직원은 반이 넘었다. 별장을 호위하는 병력은 약 5000명 정도였다.

 

  

  김일성은 초소구역 안에 만들어 놓은 사냥구역에서 사냥을 하곤 했다. 주변에 풀어놓은 노루나 꿩들은 사람들이 사육한 것이라 달아나지도 않았지만 김일성의 사격솜씨는 좋은 편이었다. 사냥도로 주변에는 콩밭과 옥수수 밭이 있었지만 일부러 수확을 하지 않아 동물들의 먹을 것은 항상 풍족했다. 꿩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훨씬 나았던 것이다.

  

 

 

  김일성은 프랑스제 헤네시 코냑을 즐겨 마셨다. 김일성은 이 지구상에서 최고라는 물건만을 사용했다. ‘아미산 대표부’라는 곳은 해외의 유명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을 정도로 큰 회사였는데 이들은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수입했다. 

 

  

  김일성은 생선회를 가장 좋아했고 생선회 중에서도 잉어회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 김일성의 밥상 위에 올라가는 잉어회는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 정도로 신선한 것이어야 했다. 김일성은 원숭이 골도 수입해다가 먹었다. 식탁 위에 오른 원숭이 역시 김일성이 골을 다 파먹을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있어야 했다. 

 

  

 

  김일성 부자 두 사람이 이처럼 호사스런 생활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은 중앙당 39호실에서 주로 조달했다. 중앙당 39호실은 마약을 수출하고 골동품을 일본에 팔고 금을 채취해다 파는 등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금 마련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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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만을 써서 특별히 제작됐다.

 

  ..... 무려 70만마리의 참새가 필요했다고 ........  ]

 

 

 

 

 

귀순 한의사가 밝힌 김일성의 건강 비법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개발된 최고급 사과를 즐겨 먹었다.

 

일명'단백질 사과'다.

 

겨울에 누런 강아지를 사과 뿌리 부근에 묻어놓고, 봄에는 그 자리에 개구리를 묻어 양분으로 사용한 재배 방식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번 주 출간될 예정인 단행본 '김일성 장수건강법'(도서출판 팜파스.사진)에 담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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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덮고 자던 이불은 참새의 턱 밑 잔털만을 써서 특별히 제작됐다.

 

이불 한 채를 만드는 데만 무려 70만마리의 참새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의 별장 침대에는 각 신체 부위가 닿는 곳마다 몸에 좋은 약재를 넣어 놓았으며 베개는 32가지 한약재가 들어간 신선베개를 사용했다. 

 

 

또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밟고 다니면 뇌와 관절에 충격이 가해져 수명이 짧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반영해 바닥엔 반드시 푹신한 카펫을 깔았다'.

 

 

 

 '17세부터 20대 초반의 미모가 빼어난 여성으로 이뤄진 기쁨조는 천진난만한 소녀 교육을 철저하게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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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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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상어날개탕(야자열매 속을 파고 상어지느러미 수프로 채운 것), 뱀장어 캐비어, 코야(새끼돼지 통구이), 물고기 용정차(중국산 고급녹차)풍 철판구이, 비둘기 간장찜, 

염소고기 샤슬리크(러시아식 바비큐), 라클레트(프랑스산 치즈를 가지와 감자 위에 얹은 것), 자라 찜…. 

 

 

 

일반인들이라면 들어본 적도 없을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이 식단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녁식사 차림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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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을 하다 보니 재료는 전세계에서 수입했다. 후지모토씨는 “중국 신장(新疆)성으로부터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두리안·파파야· 망고 등 열대과일, 체코에서 생맥주, 덴마크에서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캐비어(철갑상어알), 일본에서 어류를 수입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화제가 됐던 주석궁의 고급 술에 대해서도 그는 “주석궁에는 1만병의 술을 모아놓은 술 창고가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도 위스키, 코냑을 비롯, 일본 청주까지 망라된 술 창고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XO’였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씨는 이 화려한 식단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림표에는 그날의 주 메뉴만 실릴 뿐이고, 실제 식탁에는 ‘반찬’으로 고기와 생선도 나오고 반찬의 양도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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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1993년에 김정일 가족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 먹을 도시락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도시락을 만들었다. 

 

 

과일사러 싱가포르에, 

철갑상어알을 사러 러시아와 이란에, 

그리고 요리 재료 구입을 위해 중국, 유럽,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게 한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씨가 2001년 4월 중순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성게알 요리 재료를 사러 나갈 때는 김정일이 1만5000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요리 재료를 사러 갈 때 재료비가 200만~300만 엔 정도 된다한다. 일본의 직장인들이 매달 30만엔 정도 받는다고 할 때 그 열배정도니.... 

 

 

1991년 다랑어를 사올 때는 400만 엔을 들인 적도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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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모토는 「희대의 미식가」인 金正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물론 金正日의 지시에 따라) 외국 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중국의 신강-위구르에서는 주로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과 망고 같은 과일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생맥주, 덴마크에서는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철갑상어알, 일본에서는 생선류를 사 왔다. 

 

 

 

金正日이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내일 당장 일본에 가서 쑥이 들어간 다이후쿠모치(大福: 팥이 든 둥근 떡, 한국에서 흔히 「모찌」라고 함)와 모든 종류의 일본 담배를 사 오라』는 바람에 1박2일 일정으로 北京을 거쳐 떡을 사 온 적도 있다. 

 

  

 

  金正日은 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관저에 있는 커다란 술 창고에는 全세계의 술 1만 병 정도가 저장돼 있었다. 1989~1991년 당시 金正日은 위스키는 「조니 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 XO」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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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석상에서는 놀랍게도 일본 군가를 부르는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내가 모르는 노래도 있었다. 보천보 전자악단은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라바울 고우타(小唄)’는 김정일이 좋아하는 곡이라 늘 함께 불렀다. … 항간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남한 노래를 부를 때도 많다. 

 

  • 한푼도

    21/12/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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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 야자상어날개탕(야자열매 속을 파고 상어지느러미 수프로 채운 것), 뱀장어 캐비어, 코야(새끼돼지 통구이), 물고기 용정차(중국산 고급녹차)풍 철판구이, 비둘기 간장찜, 염소고기 샤슬리크(러시아식 바비큐), 라클레트(프랑스산 치즈를 가지와 감자 위에 얹은 것), 자라 찜…. 일반인들이라면 들어본 적도 없을 산해진미(山海珍味)로 가득한 이 식단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저녁식사 차림표다. ........................................................................... 미식을 하다 보니 재료는 전세계에서 수입했다. 후지모토씨는 “중국 신장(新疆)성으로부터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부터 두리안·파파야· 망고 등 열대과일, 체코에서 생맥주, 덴마크에서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캐비어(철갑상어알), 일본에서 어류를 수입했다”고 회고했다. 한국에서도 한때 화제가 됐던 주석궁의 고급 술에 대해서도 그는 “주석궁에는 1만병의 술을 모아놓은 술 창고가 있다”고 밝혔다. 1990년대 초반에도 위스키, 코냑을 비롯, 일본 청주까지 망라된 술 창고가 있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즐겨 마시는 술은 위스키로는 ‘조니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XO’였다고 그는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씨는 이 화려한 식단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차림표에는 그날의 주 메뉴만 실릴 뿐이고, 실제 식탁에는 ‘반찬’으로 고기와 생선도 나오고 반찬의 양도 많았다는 것이다. ..................................................................................................... ............................................................................................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던 1993년에 김정일 가족이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기내에서 먹을 도시락 준비를 위해 모스크바까지 날아가 도시락을 만들었다. 과일사러 싱가포르에, 철갑상어알을 사러 러시아와 이란에, 그리고 요리 재료 구입을 위해 중국, 유럽, 일본 등지를 돌아다니게 한다. 김정일의 전속요리사였던 후지모토씨가 2001년 4월 중순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성게알 요리 재료를 사러 나갈 때는 김정일이 1만5000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요리 재료를 사러 갈 때 재료비가 200만~300만 엔 정도 된다한다. 일본의 직장인들이 매달 30만엔 정도 받는다고 할 때 그 열배정도니.... 1991년 다랑어를 사올 때는 400만 엔을 들인 적도 있다 한다. ....................................................................................................... ..................................................................................................... 후지모토는 「희대의 미식가」인 金正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물론 金正日의 지시에 따라) 외국 출장을 부지런히 다녔다. 중국의 신강-위구르에서는 주로 멜론과 포도, 태국과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리안과 망고 같은 과일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생맥주, 덴마크에서는 돼지고기,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철갑상어알, 일본에서는 생선류를 사 왔다. 金正日이 식사를 하다 말고 갑자기 『내일 당장 일본에 가서 쑥이 들어간 다이후쿠모치(大福: 팥이 든 둥근 떡, 한국에서 흔히 「모찌」라고 함)와 모든 종류의 일본 담배를 사 오라』는 바람에 1박2일 일정으로 北京을 거쳐 떡을 사 온 적도 있다. 金正日은 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관저에 있는 커다란 술 창고에는 全세계의 술 1만 병 정도가 저장돼 있었다. 1989~1991년 당시 金正日은 위스키는 「조니 워커 스윙」, 코냑은 「헤네시 XO」를 마셨다. ................................................................................................ ............................................................................................... “연회석상에서는 놀랍게도 일본 군가를 부르는 일도 많았다. 그 중에는 내가 모르는 노래도 있었다. 보천보 전자악단은 전자 오르간을 연주했다. ‘라바울 고우타(小唄)’는 김정일이 좋아하는 곡이라 늘 함께 불렀다. … 항간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남한 노래를 부를 때도 많다. 나는 그때마다 이곳은 정말 별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별천지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책 124 페이지) .................................................................................................... ......................................................................................... ....................................................................................................... 1987 김만철 일가 [ ..... \"남조선에서는 간장 된장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 헛살아 왔다\" ........ ] [ ..... \"무시무시한 생지옥 남조선으로 간다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 ....... ] [ ..... \"공화국 북반부와 남반부를 대비하여 볼 때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다\" ...... ] 1987.2.11. 경향신문 김만철씨 일가 남쪽여로 25일 3 ........................................................................................................................... \"무시무시한 생지옥 남조선으로 간다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던 처남이 한국의 참모습을 보고 의아해 하는 광경이나 김씨가 \"공화국 북반부와 남반부를 대비하여 볼 때 거꾸로 되어 있는 것 같다\"고 상봉한 누님에게 실토한 것은 북괴가 얼마나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 김씨의 13살난 막내 아들은 또 \"남조선에 거지들이 득시글거리고 미제가 착취하며 , 그래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줄줄이 외어 대기도 했다. .............................................................................................. 그러나 \"남조선에서는 간장 된장을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지금까지 헛살아 왔다\"는 말은 북한주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보인다. 또 \"이렇게 좋은 옷은 처음 입어봤다\" \"좋은 옷 입어 보고 비행기도 타 보았으니 이젠 더 이상 소원이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너무 좋다\" \"마치 큰 잔치를 벌이고 있는 기분\"이라는 말들은 ............................................................................................................................... [ ...... 시집올 때 가져온 삼면경이 깨진 뒤 손거울조차 없이 지냈다 ....... ] 「혈육의 정」은 뜨거웠다. [중앙일보] 1987.02.11 ......................................................................................................................... 김만철씨의 처 최봉례씨는 작년에 홍수 난 이후 북한에서는 배급이 잘 안돼 사료를 사다 나누어 먹은 적이 있다고 생활의 어려움을 폭로. 전기 제품이라곤 전기 다리미밖에 없고 TV·냉장고·라디오도 없이 지냈으며 라디오 방송은 중앙에서 달아준 스피커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고. 거울을 볼 시간 없이 주민들은 매일 쫓기고 그나마 거울이 귀해 최씨는 시집올 때 가져온 삼면경이 깨진 뒤 손거울조차 없이 지냈다는 것. ..........................................................................................................................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086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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