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시인 / 메밀꽃 천서리 막국수 대표 /시민로스쿨화성지원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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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책
읽던 책을 흔들었더니
오래전 메모 한 장이 떨어졌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모를
흐릿해진 시간이 적힌 메모였다.
어쩐지 그동안 조금 모자라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책장에 적힌 모서리만 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은 책엔
애매한 시간도, 기다리겠다는 문장도 없었다.
잊어버린 것인지 잊고 싶었던 것인지
애매한 약속이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같은 시간이 비어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어느 순간 쏟아진
책의 내용 중 일부들이
공터처럼 비어있는 것을 까맣게 잊고
그 일에서 서성거린 적 많았다.
쏟아진 책에선 덜그럭거리는
빈틈들의 소리가 났다.
잊어버린 것인지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인지, 흐릿한 약속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바람 부는 날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바람의 빈틈을 채우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책에서 쏟아진 것들은 헝클어진 자간과 내용들로 한 며칠 나를 흔들곤 했었다.
가끔 애매한 기억이 떠오르면 책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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