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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김명철 시인의 현실과 상상의 교차로]죄와 벌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11/0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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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철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장     ©화성신문

끔찍하게도 무덥던 길고 긴 여름이 갔다. 그래서인가. 매년 맞이했던 가을이었지만 올해만큼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거기에다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은 며칠 동안 밤낮으로 나를 들뜨게 했다. 랄랄라, 내 영혼이 우리의 문학을 찬송함이여! 마음이 기뻐 이 가을을 즐거이 뛰노나니! 까짓거, 나라를 망신시키고 국격을 떨어뜨리고 자괴감까지 들게 하는 꼬라지들이야 어떻게든 순리대로 처리가 되겠지.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이 가을이 하도 상큼하고 발랄하여, 아이와 함께 전국적인 절찬의 포도 맛으로 유명한 송산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게 되었다. 이미 수확이 끝난 포도밭들이 차창 밖으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이삭줍기가 가능할까? 포도 한 알이라도 남은 게 있을까?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 맛을 볼 수 있을까? 포도밭 주인이 뭐라 하진 않겠지? 밭으로 들어가진 말고, 길 옆에 아무려면 포도 한 알도 없을까?’

 

아이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포도밭으로 다가가자 하필이면 손이 닿지 않는 조금 안쪽에 몇몇 개의 포도알이 보였다. 헤헤헤, 벌써부터 마음이 달큰해지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손가락이 포도알에 막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오른발이 흙의 품속으로 아득하게 빠져들었다. ‘무슨 구멍이라도 있나?’ 

 

그때였다. 땅속에서 새까맣게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 있었다. 땅벌이었다! 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벌들은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쏘아대기 시작했다. 얼굴이든 머릿속이든 가리지 않았다. 튀었다. 무조건 튀었다. 소리소리 지르며 메뚜기처럼 튀었다. 

 

그러다 아이! 우리 아이가 생각났다. 뒤돌아보니 아이가 머리를 감싸 쥐고 웅크린 채 벌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냅다 아이 쪽으로 다시 튀었다. 상의를 벗어 휘두르며 아이를 감싸 안고 다시 튀어야 했다. 나도 아이도 크게 걱정이 되었다. 얼굴 여기저기 이미 벌집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마침 인근에 병원이 있었다.

 

잠시 상태를 지켜보아야겠지만 둘 다 괜찮은 것 같다는 의사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병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이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남자와 여자와 그리고 남자 같은 여자였다. 나는 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수확이 끝난 포도밭이었는데 왜 벌을 받아야 하는가. 무슨 죄이고 무슨 벌인가. 오랫동안 우리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먼저 여자의 대답. 그것도 모른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가을은 봄보다 훨씬 예민한 계절이다. 당연히 벌은 까칠한 겨울을 대비해 한창 바쁠 때가 아닌가. 더욱 조심했어야 했다. 돌다리를 두드려보듯이 흙도 부드럽게 두드려보아야 했다. 

 

그리고 남자의 대답은 이랬다. 사실 우리도 모두 흙에서 왔다. 포도와 땅벌과 메뚜기도 흙에서 왔으니 흙에게 먼저 신고를 했어야 했다. 너무 성급했고 무엇보다도 왜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것을 차지하려 했는가. 그나마 땅벌을 받은 걸 고맙게 여겨라. 말벌이었으면 어찌 되었겠는가. 

 

그런데 남자 같은 여자의 대답이 명쾌했다. 물을 걸 물어야지 차라리 물에게 물어보라. 물 먹은 것처럼 일단 사는 게 죄고 벌은 벌이지만, 죄이고 벌이고 간에 벌집투성이 얼굴이 상큼하게 꼴보기 좋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새끼는 어떡하고 너만 먼저 튀었냐는 것이었다. 새끼가 먼저가 되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되돌아와서 새끼를 보호하려고는 했지만 벌써 늦었다는 것이었다. 순리도 모르고, 겁대가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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