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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읽는 세상 15] 민족공동체의 위기, 고독한 민족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4/09/0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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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비담시인. 한국작가회의 화성지부 사무국장     ©화성신문

“그동안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나 스스로도 민족주의자는 아닌 줄 알았는데 이번 독립기념관 관장을 비롯한 뉴라이트 인사를 보면서 왜 이리 분통이 터지는지...”

 

얼마 전 열린 작가 모임에서 한 시인이 분개하며 털어놓은 말이다. 민족과 민족주의. 이 말은 요즘의 다문화 시대에 다소 낡고 편협하게 느껴져 사용하기를 기피하는 금기어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즈음 반민족적 역사관을 드러내는 정치적 인사들의 행태를 마주하면서 민족, 혹은 민족주의라는 개념의 의미와 정신이 무엇인지 과연 무턱대고 꺼릴 개념인지 새롭게 돌아보게 된다.

 

민족이라는 단어에서 민(民)자는 종족 간의 전쟁 때 적군 포로의 한쪽 눈을 화살로 쿡 쑤셔서 애꾸눈으로 만든 다음 자기 영향력 안에 쓸 만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데서 기원하며, 족(族)은 방패와 깃발이 합쳐서 된 말로 방패를 들고 깃발 밑에 모두 모인다는 뜻으로, 민족은 종족·부족 같은 혈통 중심의 개념을 넘어서 체제의 깃발 아래 여러 종족·부족이 모인 공동체라는 의미다. 

 

민족주의는 이 글로벌 시대에서 다소 어긋나고 걸리적거리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외부의 적과 싸워 나라와 공동체 구성원을 지켜야 할 때 민족은 매우 중요하며 결코 낡은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간이며 민족이 해체될 위기에는 새롭게 부각되어야 하는 기저 개념이다. 

 

이즈음이 바로 민족이 해체될 위기의식이 거듭되는 시절이다. 건국절은 나라를 세운 날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건국절은 개천절인 10월 3일로 삼아왔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 하고 1948년 이승만 정부의 시작 시점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역사관대로라면 1948년 이전까지는 나라가 없었다는 뜻인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주장도 일본의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불법적으로 빼앗긴 민족공동체의 주권을 뺏기지 않고 되찾으려고 독립투쟁한 우리 민족공동체 정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반민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국가의 3요소가 국민, 영토, 주권인데 일제에게 우리의 주권만 뺏긴 것을 가지고 다 줘버렸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역사의 팩트나 개념을 뒤죽박죽 섞어 자의적으로 비약시키고 정쟁에 이용하는 ‘뉴라이트’, 역사와 팩트는 어디 가고 권력에 눈먼 역사관 쟁탈전의 진흙탕만 남은 요즘이다. 주요 역사기관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기관장으로 영입하여 민족공동체와 독립운동 역사의 기강을 흔드는 권력 양아치 모리배들 때문에 우리 민족공동체가 왠지 영원한 난민이 된 듯하다. 울분이 차올라 할 말을 잃은 시절, 시인은 하릴없이 지난 2019년 3.1백주년 때 쓴 시를 꺼내 본다. 오늘의 절망적인 '희극'을 5년 전에 미리 예견한 듯도 하다.

 

 

지속적인 독립의 지연은 지속적인 고독을 창출한다

 

광화문광장엔 시계탑이 없다 백 년을 건너오며 백 년 동안 멈춰 있다 빛이 모인다는 광화문 오십 개 미국별에 이스라엘 육각별까지 욱일승천 염천인지 염병인지 몰아쳐서 빛날 때 우리가 두 손에 받쳐 든 촛불이 고독하다 빛의 제국에 눈먼 뫼르소들 눈먼 눈빛으로 누가 누굴 쏘아보나 대왕 세종 장군 이순신 우두망찰 서 있다 지척거리 종로 탑골공원 종각 제야종소리도 멈추어 녹이 슨다 저 독성 해파리 떼 같은 빛들을 몰아내지 못해 날마다 건너오는 세종로횡단보도 날마다 도착하지 못한다 백년 임시정부가 세월호 리본공작소에서 고독하다 왔으나 오지 못한 우리의 독립 백년은 남지나해에 멈춰 있다 광화문광장 시계탑은 세월호 갑판의 백척간두 아직도 백년의 이명준 이명준들이다. 

 

-전비담 시 ‘백년고독’ 전문

 

*뫼르소 : 카프카의 ‘이방인’ *남지나해 : 최인훈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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