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화성 비봉면의 습지를 찾는 버릇이 있다. 왼쪽으로 활처럼 휘어져 있는 습지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때도, 얼마 전 화성의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 때도, 운다고 엎어놓아 질식사한 아기의 죽음을 들었을 때에도, 그리고 아내와 좀 심하게 다투었을 때에도 거기를 찾았다. 나는 이 습지에서 나의 슬픔이 차분하고 담담하게 깊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이 습지에 오면 원시(原始)를 떠올리게 된다. 습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생대 백악기 시대 공룡알 화석지가 있어서이기 때문인지 더 먼 과거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원시지구 시대 갑각류 유전자의 80%가 우리 몸에 유전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의 슬픔은 그 시대 아메바나 암모나이트의 슬픔이 유전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지구 최초의 생명체에서부터, 아니 어쩌면 생명체 이전의 존재에서부터 우리의 슬픔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리의 슬픔들은 단순히 단세포적 생존 본능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는 ‘생명체는 모두 생물학의 근본 원리인 자연선택과 유전자의 자가 복제 속에서 만들어진 기계적인 존재’라고 언급하면서도, 인간 사유의 총체인 문화의 구조를 이루는 문화 선택과 밈(Meme)에 의한 유전도 생물학에서 다루는 유전자의 특성과 닮아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슬픔도 그렇게 유전된 것일까.
우리는 유전에 의해 이루어진 우리의 신체적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우리는 유전에 유전을 거듭해서 생겨난 우리의 눈과 코와 팔다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시 유전에 유전을 거듭해서 생겨난 우리의 슬픔에서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일까. 우리는 그렇게 슬플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냥 무시하면 안 될까.
우리의 슬픔은 나에 대한 서러움에서도 오고, 당신에 대한 그리움에서도 오고, 간혹 한 무리의 새 떼와 화석이 된 알에서 오기도 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 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슬픔은 사후적(事後的)인 것이 아니라 사전적(事前的)인 일, 그러니까 슬픔은 차라리 생명이나 존재의 전제 조건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건너뛰어서 말하자면, 생명이 있고 나서 슬픔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슬픔이 먼저 있고 나서야 생명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슬픔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작성하던 글을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할 때, 우리의 날개가 속절없이 꺾일 때,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젊은 생명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서도 끝내 그 책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기력함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슬픔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사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서로 용서도 주고받고 사과도 주고받아야 되겠지만, 그로 인해 생겨난 슬픔의 감정들은 어떻게 다독여질 수 있을까.
그럴 때 나는 이 습지를 찾는다. 처음에는 떨구어진 목으로 산책로를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그러면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갈댓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나를 부른다. 고개를 들어 소리의 향방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이 습지에 ‘나’를 맡기게 된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빛과 은빛 갈대와 은빛 바람이 나의 마음에 서서히 자리를 잡게 되고 나는 습지가 지닌 원시적(原始的)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 빠져들게 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습지의 일원이 되면 습지는 내 마음을 적시고 생각을 적신다. 나의 슬픔이 천 년에 천 년을 세 번도 더 곱하기하면서 나에게 유전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나의 슬픔은 차라리 장엄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때가 되면 나는 내 슬픔의 어깨에 차분히 팔을 두르게 된다. 그러면 내 슬픔도 어느 틈에 나의 어깨에 담담하게 팔을 둘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