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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시민극단 ‘산유화’ 창단 10주년
“화성지역 문화, 아래로부터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
2011년 창단, 노작 홍사용 선생 정신 이어받은 ‘화성의 자랑’
‘우리 모두 주인공입니다’ 슬로건, “전국 시민극단 모범 사례”
갈등·불협화음 있었지만 “배려와 공감, 공동체의식으로 극복”
“새로운 단원 확보와 향유계층 다양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1/12/30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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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정기공연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전> 

 

 

화성시 시민극단 산유화가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어렵게 뿌려진 씨앗이 짧지 않은 세월을 거치며 제법 허리가 굵은 나무로 올곧게 잘 자랐다. 풍성한 결실도 맺었다. 2011년 창단 이래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정기공연을 열었다. 코로나19도 '산유화' 단원들의 공연을 향한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기공연 중간 중간에 워크숍 공연과 낭독 공연, 노작문화제 참여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시민극단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산유화는 노작(露雀, 이슬 노 참새 작) 홍사용(1900~1947)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은 시민극단이다. 홍사용 선생은 낭만주의적 경향을 표방한 문예지 백조를 창간하는 등 낭만주의 시를 주도했던 시인이자, 극단 토월회를 이끌며 신극운동에 참여했던 예술인이다. ‘산유화는 노작이 1927년 두 번째로 결성한 극단 산유화회’로부터 지어진 이름이다.

 

산유화는 대한민국 시민극단들의 모범적인 성공 사례다.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 영업을 하고 있는 남궁현 단장(1기 단원)다른 지자체에서 활동하는 시민극단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다.

 

산에 피는 모든 꽃을 통틀어서 산유화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잖아요. 우리 시민극단의 취지와도 너무 잘 어울리죠.”

 

남궁 단장의 설명처럼 시민극단 산유화는 단원들에게는 각자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준 안내자이자, 바쁘고 치열한 삶에서 잠시나마 숨통을 틔워준 해방구였다. 적당한 자극과 몰입으로 무미건조해진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쏟아지는 박수 소리에 행복과 성취감을 맛보게 만든 인생의 반려자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꿈을 이루는 통로,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무대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단원들이 많아 작품을 연습하기 위한 시간 맞추기도 녹록치 않았다. 단원들은 어렵사리 시간을 조율해 연극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작품 활동에 참여하며 호흡을 맞춰왔다.

 

 

▲ 2016년 6회 정기공연 <쌀통 스캔들>

 

▲ 2017년 7회 정기공연 <작은 할머니>

 

▲ 2018년 8회 정기공연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산유화 단원들이 2020년 10회 정기공연 <‘덫’에 걸린 사람들>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201110, 1회 정기공연으로 <아파트 레터>(조병여 작)를 무대에 올렸다. 2회 정기공연으로는 <삼겹살 먹을 만한 이야기>(황선영 작), 3<아름다운 사인>(장진 작), 4<박수칠 때 떠나라>(장진 작), 5<분장실>(시미즈 쿠니오 작), 6<쌀통 스캔들>(김란이 작), 7<작은 할머니>(엄인희 작), 8<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하타사와 세이고 작), 9<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김정숙 작), 10<‘에 걸린 사람들>(닐 사이먼)을 올렸다.

 

일반 시민으로 이루어진 극단이기에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다. 3회까지는 황이선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고, 4회부터는 장경욱 전 수원대 공연예술학부 교수가 연출을 맡고 있다. 단원들은 연출가를 멘토라고 부른다. 단원들은 연기력 향상을 위해 1년에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12강씩 멘토링 수업을 받고 있다. 멘토링 수업을 통해 단원들의 기본기가 튼튼해지고 연기력도 늘었다. '산유화'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핵심적인 이유다.

 

8년째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장경욱 전 교수는 연극동아리로 시작한 모임이 이론과 실기 능력을 갖춘 고정단원 30여 명의 시민극단으로 발전했고, 그간의 정기공연이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아마추어 극단인 산유화와 이렇게 오래 세월을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홍사용 선생의 연극 정신을 계승하고, 시민극단의 모범적인 모습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연 작품 선정도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노작 정신과 어울리는 작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즐길 거리, 가벼운 눈요깃거리 작품은 배제된다. 단원 각자가 무대에 올리고 싶은 작품을 제출하고, 대본을 읽어보고, 자신이 겪은 사회 경험을 토대로 희곡을 분석하고, 서로의 관점을 존중하면서 열린 토론을 통해 방향을 정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당연히 연출가의 조언도 듣는다.

 

 

▲ 시민극단 산유화 단원들

 

▲ 장경욱 연출가

 

 

시민극단 산유화탄생에는 이덕규 노작홍사용문학관 초대 관장이 산파 역할을 했다. 홍사용 선생의 못 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시민극단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문학관을 이용하던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타진했다. 문학관 초창기 프로그램 중 시 읽기과정에 참여하고 있던 남궁현 단장과 수강생들이 관장 의견에 공감해 의기투합했다.

 

20113월 단원을 모집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첫 단원 모집에 55명이 지원했다. 10명 정도씩 5개 팀으로 나눴는데 두 달 정도 지나니까 총 15명으로 줄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정규 단원은 30명 정도다. 그동안 '산유화'를 거쳐 간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 단원은 1기부터 10기까지 배출된 상태다. 한 기수에 많으면 다섯 명, 적으면 두세 명 배출된다. 매년 3월 신규 단원을 모집하지만, 실제로는 연중 문이 열려 있다.

 

20103, 노작홍사용문학관이 개관할 때 문학관 1층에 100평 규모의 공간을 확보했다. 예산이 없어서 빈 공간으로 있다가 1년 후에 소극장이 만들어졌다. 지금의 산유화극장이다. 88석의 소규모 극장이다.

 

'산유화'는 화성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순수시민극단이다. ‘우리 모두 주인공입니다라는 슬로건에서도 그 방향성이 드러난다. 공연 때마다 슬로건이 적힌 4미터 길이의 현수막을 만들어 산유화극장 포토 존에 걸어놓는다. 우리 모두 주인공이라는 말에는 무대에 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공연을 준비하는 스태프, 관람하는 시민들이 모두 포함된다. 삶에서 우리 모두는 주인공이니까.

 

 

▲ 2011년 창단 공연 <아파트 레터> 포스터

 

▲ 2014년 4회 정기공연 <박수칠 때 떠나라> 포스터

 

▲ 2015년 5회 정기공연 <분장실> 포스터



시민극단 '산유화' 부단장인 이민자 씨(2기 단원)는 산유화에 당신만의 느낌이 예술로 펼쳐지는 곳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산유화를 보실 때 세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어요.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기공연을 이어온 지속성, 창난 멤버인 1기부터 현재의 10기까지 모든 기수가 산유화의 매듭을 이어오고 있다는 전통성, 매해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작품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화성시를 대표하는 시민극단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는 정체성이에요. 새로운 단원 확보와 향유계층의 다양성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습니다.”

 

'산유화' 단원들의 연령층은 20대부터 70대까지로 다양하다. 작품에 따라서는 단원의 자녀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정기공연을 비롯 워크숍 공연, 노작문학제 개막공연 등 1년에 서너 차례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생각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가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산유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극단 자체가 해체될 위기 상황도 서너 차례 있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핵심 키워드는 공동체의식과 팀워크, 소통과 공감이었다. 지나 10년간 '산유화'와 함께해 온 남궁 단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단원들이 배역 정할 때 굉장히 예민해져요. 누구나 무대에 서고 싶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하지만 산유화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연극을 통해서 시민들과 공감해야 하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거죠. 문제가 생기는 건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도를 높이려면 반드시 정기공연을 거쳐야 합니다.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나면, 스스로 깨닫게 되죠. 굉장히 겸손해집니다.”

 

공연을 2주 정도 앞두고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 평소에 다 함께 모일 시간을 만들기 힘들어서다. 공연 끝나고 뒤풀이할 때는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마음고생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극에는 내면세계를 치유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산유화는 단원들의 가슴에 어떤 의미로 기억되고 있을까.

 

내 삶의 깐부’(1기 남궁현), ‘아름다운 인연’(1기 송금섭), ‘존재가치를 인식하게 해준 반석’(1기 전웅철), ‘생활의 일부, 든든한 큰 나무’(2기 이민자), ‘삶에 활력을 되찾아 준 존재’(3기 이경민), ‘꿈에 날개를 달다’(4기 맹지희),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찾게 되는 곳’(4기 이지연), ‘내 인생의 오아시스’(4기 최재경), ‘인생의 터닝포인트’(5기 송인규), ‘삶의 균형점을 찾는 공간’(5기 장선경), ‘몇 개의 얼굴을 가지다’(6기 김영주), ‘나의 부캐가 기다리는 곳’(6기 이주희), ‘조화의 아름다움’(8기 국윤호), ‘숨은 끼쟁이들이 꿈을 펼치는 곳’(8기 김안나),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다’(8기 김예은), ‘내 인생의 3’(8기 조은주), ‘스릴 넘치고, 매번 기적을 만들어내는 곳’(9기 민봉준), ‘평면적인 대사가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나는 곳’(10기 이유경).

 

 

▲ 시민극단 산유화 창단 10주년 기념집

 

 

10년이라는 연륜이 쌓여서일까. '산유화' 공연을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다. 공연 일정이 확정되면 앞 다퉈 예약을 한다. 관객들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잘한다, 대단하다, 놀랍다,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관람한 함동수 시인은 이런 글을 남겼다.

 

순수 시민극단 공연이라는 게 놀라운 일이었다. 이 연극에 출연할 배우들의 연기가 어쩌면 그리 작중인물의 모습과 적확한지 놀라웠다. 진정 저네들이 일반 시민이란 말인가? 프로가 따로 있나. 관객이 감동하면 그게 프로페셔널이지.”

 

노작홍사용문학관 홍보대사이자 방송사회자, 역사학자,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인 정재환 성균관대 초빙교수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공연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시민극단답게 기성배우들의 연기에서 느낄 수 없는 풋풋함도 있었지만, 몇몇 분은 직업 배우들 뺨치는 섬세하고 안정감 있는 연기로 무대와 괸객을 압도했다. 뜻밖의 좋은 연기, 좋은 작품이어서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고 평했다.

 

산유화극장을 품고 있는 노작홍사용문학관 손택수 관장의 산유화에 대한 기대는 예사롭지 않다.

 

연극에 대한 열의만으로 10년의 세월을 함께한 시민극단의 존재는 각자도생을 강제하는 요즘의 풍토와 불화하며 인연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산유화는 경기도 화성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아래로부터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극단의 존재는 실로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다가온다. 어지럽고 어두운 시절에 시대의 봉화가 켜지길 바랐던 노작의 소망을 이어받아, 시민극단 산유화가 경기도 화성의 문화적인 횃불이 되어주길 기원한다.”

 

아리아리. 남궁현 단장이 사람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 늘 쓰는 표현이다.

 

우리 시민극단 만큼은 정책에 의해서 흔들림 없이 오래가면 좋겠어요. 홍사용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소중한 모임이니까요. 연극은 중독입니다. 마약 같아요. 연극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 공감하는 행복, 나누는 행복, 표현하는 행복을 느낍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아시죠?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갈매기 조나단 말예요. 연극할 때는 하늘을 나는 갈매기처럼 자유로워요. 아리아리라는 말이 있어요. 파이팅이라는 뜻도 있고, 없는 길을 만들어서 간다는 뜻도 있어요. 시민극단 산유화 수식어로는 딱이죠.”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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