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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초대석] 김성환 ㈜21세기 대표
호기심·뚝심·긍정 무장한 ‘변화 촉진자’
늘 리드하니 경쟁상대 없어, “끌려가지 말고 변화 주도해야”
“목표는 레이저 정밀가공 분야 글로벌 리더, 이미 기반 닦아”
마이크로 홀 1경 개 뚫을 것, 홀 1개 당 1원을 받는다면…
“직원이 가장 큰 자산, 나도 행복하고 직원들도 행복해야죠”
 
김중근 기자 기사입력 :  2021/07/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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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환 대표가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초정밀 레이저 펨토초 폴리싱 장비 앞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고 있다.

 

  

호기심, 뚝심, 긍정.

 

김성환 21세기 대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써야할 단어들이다. 26년 전 보증금 300만 원 월세 30만 원의 열악한 환경에서 창업한 회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 것도, 이 지구상에 경쟁 상대가 없는 초정밀 레이저 가공 기술을 갖게 된 것도 이 세 단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성시 동탄 일반산업단지에 위치한 21세기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초정밀 레이저 가공 기술을 가진 회사다. 초정밀 칼날, 초정밀 금형, 초정밀 절삭 공구, 초정밀 지그 등 다른 회사들이 모방조차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제품 구현이 가능하다.

 

거래처도 전기, 전자, 반도체, 자동차, 소재, 자동화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삼성전기, 삼성전자, LG전자, 현대 등 국내 대기업은 물론 도시바, NEC, Nidec, 도요타, 보쉬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에게 제품을 공급한다. 일단 거래를 트게 되면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가 없기에 독점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공급이 가능하다.

 

 

▲ 김성환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생산 현장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밀도가 필요한 회사는 우리 회사 못 떠나요

 

“1996년도에 창업하면서 상호를 21세기라고 지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제품을 만들어보자, 이 세상에서 제일 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담았어요. 26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어요. 초정밀 레이저 가공 기술과 초정밀 연마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앞선 기술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레이저를 적용한 정밀가공 분야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겁니다. 10년 쯤 후면 윤곽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김성환 대표의 사업 방향성은 명확했다. ‘레이저 정밀가공 분야의 글로벌 리더였다. 이미 기반을 닦아놓은 상태다. 21세기가 보유하고 있는 핵심 기술은 초정밀 레이저 가공 기술, 초정밀 레이저 가공 시스템 설계 기술, ELID 연삭 기술, 극초단 레이저 초정밀 가공 기술, 극초단 레이저 이용 마이크로 드릴링 기술, 극초단 레이저 이용 나노 폴리싱 기술, 극초단 레이저 이용 나노 폴리싱 시스템 구축 등이다.

 

21세기가 이런 탁월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지속적인 R&D(연구개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912월에는 본사에 있던 연구소를 동탄2신도시 지식산업센터로 옮겼다. 지난 6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2021년도 상반기 우수 기업연구소 지정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R&D 노력은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결실을 맺었다. 사업화연계기술개발사업(2018), 경기도기술개발사업(2019), -독 국제공동기술개발사업(2019), 구매조건부신제품개발사업(2019),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사업(2020), 해외원천기술상용화기술개발사업(2020), -러 해외협력플랫폼구축사업(2021)을 따냈다.

 

이런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초정밀 레이저 조사를 통한 에지 구현, 초정밀 레이저를 활용한 헬리칼 어드벤스트 드릴링 머신 구현, 초정밀 레이저를 활용한 초평활 대면적 레이저 폴리싱 머신 구현과 같은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세상에 없던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 초정밀 진공 금형.

 

▲ 카메라 본딩 툴(Bonding Tool).

 

▲ 휠 커터(Wheel Cutter).

 

▲ 각종 정밀 Ceramic Parts.

 

 

다른 데서 모방할 수 없는 제품이어서 독점적 공급이 가능합니다. 모든 제품들이 더 작고 얇아져요. 그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려면 부품이 더 정밀해져야지만 하죠. 과거에는 눈으로 보면서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정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동화 설비가 필요하고, 그 자동화 설비에는 정밀한 부품이 필요합니다. 그 정밀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초정밀 레이저 가공 공정밖에 없습니다.”

 

김성환 대표는 경쟁사가 없다고 단언한다. 차원이 다르기에 경쟁 구도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다.

 

모든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 때 1에서 10까지의 공정 안에서 경쟁을 해요. 거기서는 누가 더 빨리 더 싸게 더 좋게 만드느냐의 경쟁이거든요. 그런데 열한 번째 공정, 열두 번째, 열세 번째 공정을 개발한 기업이 있다면 어떨까요? 경쟁이 될까요? 비교 대상이 안 되는 거죠.”

 

김 대표는 미래에도 21세기를 쫓아올 수 있는 회사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쫓아오는 회사가 있을 수는 있겠죠. 시중에 장비가 있다면요.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장비 갖다 주면 다 구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중에 그런 장비가 없어요. 우리가 그 장비를 만들거든요. 정부 R&D 정책자금을 활용한 연구개발을 통해서요. 지구상에 오로지 21세기에만 있는 장비예요. 정밀도가 필요한 고객들은 21세기를 떠날 수가 없어요. 그런 정밀도를 구현할 수 있는 곳이 다른 데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세상에 없는 가공 공법이나 가공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기계 장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죠.”

 

 

▲ 초정밀 측정기 앞에 선 김성환 대표.


  

운명을 바꾼 질문

 

 

고향은 충북 청주다. 1971년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늘 행정실로 불려갈 정도로 가난했다. 도시락도 싸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기술을 배워서 일찍 돈을 벌기 위해 기계공고로 진학했다. 기계제도과에서 기계제도를 전공했다. 수업료가 면제돼 걱정 안 해도 되고 하루 세 끼 밥도 잘 먹을 수 있었다.

 

1학년 때 기능훈련 제안을 받았다. 일종의 공고 특활생인 셈이다. 특활생들이 성장하면 기능올림픽에 나가게 된다. 기능훈련을 받으면서 도면 그리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배운 설계기술을 특기로 취업했다. 19898월 취업한 첫 직장은 수원역 뒤 평동에 있던 회사였다.

 

당시는 대기업들의 양산라인이 거의 해외에서 턴키로 들어오던 시절이었어요. 소모품을 비롯해 모든 게 해외 부품들입니다. 제가 그걸 국산화시키는 개발을 많이 했어요. 설계하고 개선하면서 설비와 부품에 대한 이해, 기계의 어떤 부분이 중요한지, 기계가 작동하고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제가 그린 도면을 가지고 생산현장을 지휘하고 관리 감독했어요. 생산관리, 구매, 개발영업도 했어요. 멀티 플레이어였죠. 퇴근시간도 없고, 주말 공휴일 명절도 없이 일했어요. 짧은 기간에 많은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제품이 만들어지고 고객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일하는 게 재미있었다. 회사도 발전했다. 회사는 수원 영통으로 이전한 후에도 성장을 계속했지만, 투자한 것이 잘못된 데다 설상가상으로 기아자동차 부도사태까지 맞물려 부도를 맞았다. 회사 대표는 도피를 했고, 김 대표가 회사 정리에 많은 부분을 관여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은행에 대한 대처 방법 등 경영에 대한 것도 알게 됐다. 1년 반 동안 미리 경영수업을 한 셈이었다.

 

이후 절삭공구 유통회사에 잠시 몸담았지만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나왔다. 첫 직장 생산 파트에서 근무했던 동료 두 명과 힘을 합쳐 창업했다. 상호는 21세기였다. 199651일이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의 공간을 얻었다. 첫 직장이 있던 평동이었다. 환경은 열악했다. 전투기가 뜨는 활주로 옆이어서 전화할 때는 상대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여름에 비 오면 물을 퍼내야 했고, 겨울에 눈 내리면 지붕이 무너질까봐 쌓인 눈을 쓸어야 했다. 그 와중에 IMF도 겪었다.

 

 

▲ 김성환 대표가 PPT 자료 앞에서 초정밀 기술의 정밀도를 설명하고 있다.

 

 

3년 후인 1999년도에 21세기정공이라는 법인을 다시 만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3년 후인 2002년도에 은행 대출을 받아 정남면 신리에 땅 500평을 사서 자가공장을 지었다. 기계도 기술정책자금을 활용해서 추가로 구입했다. 법인명도 지금의 21세기로 변경했다.

 

“2003년 연말쯤 삼성에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80마이크로 홀을 뚫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머리카락 두께예요. 개발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대답했죠. 개발자들에게는 그런 게 있어요. 자기가 못하는 걸 들으면 꼭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고 엔도르핀이 분비됩니다. 국내를 샅샅이 뒤졌는데 그런 기술을 가진 회사가 없었어요. 해외로 눈을 돌렸죠. 일본도 가보고 스위스, 영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까지 가봤어요. 정말 뚫을 수 있더군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빨리 뚫을 수 있는 게 레이저였어요. 2004년까지 홀을 뚫기 위해 고민하면서 레이저를 알게 됐고, 레이저가 가공분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레이저 장비를 무조건 도입해야겠다고 생각했죠.”

 

 

▲ 직원과 기계의 성능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김성환 대표.


  

늘 변하는 인생, 변화 즐겨야

 

2004년 당시 연간 매출액이 7억 원 정도였는데 김 사장은 한 대에 7억 원인 장비를 덥석 계약했다.

 

미친 짓이었죠. 오더도 받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니까 계약한 거죠. 그런데 막상 장비를 들여 놓았는데 오더 계약에서 일본 합작회사에 밀렸어요. 1년 넘게 장비 테스트만 했어요. 그 과정에서 장비의 능력, 활용 범위, 적용 가능한 아이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 당시 테스트한 자료들이 책 세 권 분량으로 남아있어요. 잠잘 시간이 없었어요. 장비값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테스트도 해야 했으니까요.”

 

레이저 장비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니까 주문이 밀려들었다. 다른 곳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어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오더를 주지 않은 고객에게는 기존 제품의 결함을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많은 수익을 올렸다. 2007년도에 향남에 땅 1800평을 사서 2009년도에 공장을 짓고 이전했다. 그 무렵 대기업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건비가 싼 곳에서 현지화 전략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문제가 되겠구나 싶더군요. 많이 돌아다녀보니까 흐름이 보이는 거예요. 우리와 거래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진출한 곳을 가봤어요. 중국과 필리핀에 정말 뒤로 자빠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공장을 지었더군요. 우리 회사도 필리핀에 공장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1년도 필리핀의 수출자유지역인 PEZA존에 자본금 2만 달러로 법인을 설립했다. 공장 가동에 들어갔지만 주문을 줄 것 같았던 한국의 고객사는 오더를 주지 않았다. 공장을 놀릴 수 없어서 필리핀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PEZA존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나씩 하나씩 설득했죠. 정밀한 제품을 빠르고 싸게 공급해 줄 수 있다고. 그게 먹히더군요. 좋은 고객들이 많이 생겼어요. 2년 후쯤 원래 고객도 오더를 주더군요. 2013년도에 반도체가 위기였을 때 회사를 팔겠다는 의향을 밝힌 MTE라는 회사의 지분을 100% 인수했어요. 인수하고 나니 적층세라믹콘덴서라고 불리는 MLCC가 활성화됐어요. 한국 본사는 2015년도와 16년도에 굉장히 어려웠는데, 필리핀은 2018년까지 경기가 좋았어요. 이익이 엄청 많이 났죠. 미크론이라는 반도체장비 회사를 또 M&A 했어요. 지금 필리핀 직원수가 120명 정도 돼요.”

 

 

▲ 김성환 대표가 자신의 좌우명이자 사훈인 ‘변화를 즐기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년도에 미중무역전쟁이 발생하고 반도체시장이 급랭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필리핀은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성환 대표는 돌파구를 찾아냈다. 유럽에 있던 반도체 회사가 필리핀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다른 회사들은 이미 조건을 제시하고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두 시간 만에 담판을 지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예요. 시작라인 240만 불짜리 오더를 받았어요. 양산라인도 99%는 저희 것이죠. 예상되는 금액은 3000만 불 정도 됩니다.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최고경영자과정도 12개나 들었다. 35세 때 중국 칭와대 과정을 시작으로 미국 보스턴대, 일본 와세다대, 카이스트대. 한국산업기술대. 중소기업 월드클래스 CEO연수과정, 전경련 CEO과정, 상생포럼과정 등이다. 김 대표는 2012년도 학번이다.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마흔이 넘어 대학에 들어갔다.

 

긍정마인드로 무장한 김성환 대표는 호기심이 많다. 새로운 것을 보면 궁금증이 발동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늘 뭔가를 하고 있다.

 

좌우명이 변화를 즐기자예요. 사훈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늘 변하잖아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입니다. 직원들에게는 제가 일거리를 주는 사람으로 보일 겁니다. 하하하. 남은 인생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은 초정밀 마이크로 홀 1경 개를 뚫고 싶어요. 우주로 나아가려면 엄청나게 많은 초정밀 홀이 필요합니다. 저도 행복하고, 우리 21세기 직원들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직원들이 가장 큰 자산이잖아요. 10년 후에는 아마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 거예요.”

 

김중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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