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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98]
불청객과 악플러 : 혐오의 시대, 대중화 사업의 과제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1/04/2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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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민 노작홍사용문학관 사무국장     ©화성신문

대중화란 흔히 대학이나 학술장, 문단 등에서 형성된 전문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보급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문학 대중화, 과학 대중화, 미술 대중화 등등, 대체로 대중화라는 것은 앎의 하방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종에 아래로 향하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그러다보니 대중화 논의 속에서 대중은 언제나 가르침의 대상으로 상정될 뿐이다. 물론 과거와 같이 대중을 다만 무지몽매한 무리로 여기는 인식은 많이 희석되기도 했다. ‘대중지성이나 집단지성이라는 개념이 운위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식인(엘리트)과 대중의 관계는 더 이상 위계적이지도, 신분적으로 고정돼 있지도 않다. 저마다 자기가 종사하고 있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서는 그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기에, 지식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색해진 면이 있기도 하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대중이라 불리는 집단 속에는 균질적이지 않은 속성이 내재하기 마련이다. 계급이나 세대, 젠더, 지역, 종교, 이념 등에 따라 대중은 분할되어 있다.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분할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연동되어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다양한 수준에서 펼쳐져 있는 미디어 장에 따라 계급적·세대적·이념적·젠더적인 수용층의 분화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현재 한국의 온라인망은 정치 성향에 따라 인터넷 커뮤니티와 플랫폼 서비스가 구획되어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아울러 여초 카페남초 커뮤니티사이에는 화해 불가능해 보이는 적대가 존재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 분화의 정도가 심화됨에 따라 인터넷 뉴스의 댓글창이나 유튜브를 비롯한 개인 방송의 채팅창은 이념적·젠더적 갈등이 외화된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대중 내부의 비-균질적인 속성들이 단순히 분화된 게 아니라, 서로가 혐오하는 차원으로 진입했다는 데 있다. 현재는 바야흐로 혐오의 시대라 할 만하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이념적 갈등이나 남·여 간 젠더 갈등은 이들이 더 이상 사회에서 양립 가능한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대중이란 집단 내부의 이러한 화해 불가능한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들은 상대 진영(?)의 성격과 본질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바로 그 확신 속에서 자기에 대한 이해가 마련되기도 한다. 물론 이 양자 간의 주장이 끼친 사회적인 공과를 동등하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선 엄격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 사실 여부를 떠나 이들 각각은 상대에 대한 불신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그러한 불신 위에서 적대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진 복수의 대중이 존재한다. 대중의 성격이 복잡한 이유가 여기 있다. 지식인 행세하는 몇몇 사람들은 대중 차원에서 확산된 반지성적인 사고를 우려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세계를 보는 관점에 대한 확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화를 앎의 하방쯤으로 생각한다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중은 다만 배우는 자혹은 듣는 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반대로 대중은 언제라도 반론할 수 있는 자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대중화의 현장에서 소통이란 서로의 의견을 수용하기만 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 오히려 듣는 대중이 더 이상 듣기만 하지 않을 때, 그러니까 대중이 지식인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을 때에만 대중화의 올바른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좌의 현장에 불청객이 참여했다면, 영상 콘텐츠에 악플이 달렸다면, 바로 그들의 자리로부터 대중화의 과제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어야 한다. 혐오의 시대란 생각의 차이에 따라 서로가 서로에게 불청객이자, ‘악플러로 남는 사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대중화란 결코 행복한 관계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master@no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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