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 기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조영호 교수의 Leadership Inside 225]
망해가던 소니를 일으켜 세운 히라이 사장의 비결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2/10/04 [09:12]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조영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장     ©화성신문

소니는 예사로운 회사가 아니었다. 2차 대전 후 1946년 도쿄통신공업사로 출발하였지만, 1956년 미국에 진출하면서부터는 사명을 소니(Sony)로 바꾸었다. 소니는 처음부터 일본을 벗어나 세계적인 회사가 되고 싶었고, 창의적인 문화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사명도 세계 어디서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소니로 바꾸고,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자’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 덕분에 휴대용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트랜지스터 TV인 트리니트론을 출시했다. 이 트리니트론 덕분에 소니가 TV 시장에서 한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다. 트리니트론 TV는 1973년 미국 에미상까지 수상했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소니는 또한 최초로 비디오카세트를 생산했으며, 나아가 휴대용 카세트인 워크맨을 개발하여 베스트 셀러를 기록했다. 

 

그런데 세월도 무상하지. 그런 소니도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기세등등하던 TV 시장에서 2006년부터 소니는 삼성에게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공전의 히트작이었던 워크맨도 네트워크 시대가 되고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2010년에는 단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부터 소니는 하드웨어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성과가 여의찮았다.

 

히라이 가쓰오가 2012년 4월 1일 새로 CEO에 부임했을 때, 소니는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TV는 8년 동안 줄곧 적자였다. 히라이 씨는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선 TV부터 손을 보았다. TV의 연간 판매 목표를 4만 대에서 2만대로 줄였다. TV는 제조원가가 높아 팔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다. 양을 포기하는 대신 화질과 음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질을 추구했다. 그 결과 TV는 2014년 흑자로 돌아섰다. 실로 11년 만의 일이었다.

 

히라이 사장은 바이오(VAIO)라는 브랜드로 펼치던 노트북 사업과 배터리 사업은 매각했다. 경쟁이 너무 치열했고, 소니가 경쟁우위를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신 게임 산업과 콘텐츠 사업은 강화했다. 그리고 헬스케어 사업, 부동산 사업, 의료 사업, 드론 사업, 교육 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런 사업들은 분사시켜 보다 민첩하게 시장에 반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이러한 구조조정 결과 소니는 2017년 7천 2백억 엔이라는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 

 

히라이 가쓰도가 이런 구조조정을 어떻게 해 냈을까? 그는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나 이부카 마사루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감히 이들과 비교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과거 GE에서 웰치 회장이 가졌던 그런 전문경영자로서의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 사장이었다. 그는 다만, 주변 사람들을 경청하고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말했듯이 IQ가 아니라 EQ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소니 그룹 총수를 맡기 이전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의 미국 법인과 SCE 전체 경영을 맡아 그의 장기를 잘 발휘했었다. 그는 이때마다 직원들을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일대일로 듣기도 하고 그룹으로 듣기도 했다. 회의를 통해 듣기도 했고, 맥주를 마시면서 듣기도 했다. 찾아가서 듣기도 했고, 불러서 듣기도 했다. 히라이 씨가 소니 그룹을 맡았을 때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그가 CEO를 하는 6년 동안 전 세계를 돌면서 타운홀 미팅(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대화 자리)을 70회 이상 가졌다. 그러니까 매달 한 번씩은 어디선가 이런 자리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물론 히라이 씨의 전유물은 아니다. 새로 리더로 부임해 오면 누구나 이런 자리를 갖는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한 가지 더 나아갔다. 들을 때는 부드럽게 듣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즉시, 그리고 끈질기게 했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이다.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본인이 처리하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않았다. 그의 대화 자리는 진정성이 있었다.

 

히라이 씨는 또한 개혁을 단행할 때, 자신에게 쓴소리해 줄 사람을 곁에 두었다. 때에 따라서는 삼고초려를 하며 모셨다. 그들로부터는 의견이 아니라 이견을 구했다. 

 

그 한 사람이 CFO(재무 총괄) 요시다 켄이치다. 결국 히라이 씨가 2018년 CEO에서 물러날 때 요시다 씨를 그의 후임자로 삼았다.

 

choyho@ajou.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성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인기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