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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의 전문가 칼럼 화성춘추 (華城春秋) 78] 융합(融合)을 넘어서 융섭(融攝)으로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11/2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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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석협성대학교 교수     ©화성신문

통영에 가면 ‘우짜면’이라는 음식이 있다. 우동에 짜장을 섞어서 만든 이색적인 음식이다. 옛날에 통영의 시장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던 사장이 만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장을 보러 왔던 사람들이 점심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와서 메뉴를 고르는데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았다. 오늘은 짜장면을 먹을까? 아니면 우동을 먹을까? 메뉴를 놓고 고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동과 짜장의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음식으로 내놓은 것이 ‘우짜면’이라고 한다. 우짜면은 전체적으로 보면 외관상으로는 우동인데, 짜장 소스가 올려져 있는 음식이다. 결국, 우짜면은 우동과 짜장을 섞어서 만든 혼종적(hybrid) 음식이다.

 

요즘 마트에 가서 과일 판매대에서 인기를 받고 있는 포도가 있다. 샤인 머스캣이다. 외형적으로는 청포도인데, 과육이 단단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이 있다. 샤인 머스캣은 일본에서 ‘아끼즈21호(Akitsu-21)’와, ‘하쿠난(Hakunan: V. vinifera)’을 인공 교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미 오래 전에 나와서 아직도 인기를 얻고 있는 오이고추, 호박고구마도 이종교배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오이고추는 풋고추와 피망을 결합하여 만들어졌으며, 호박고구마는 물고구마와 호박을 교접하여 만들어졌으며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다고 한다. 샤인 머스캣도, 오이고추도 호박고구마도 모두 혼종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하이브리드카(Hybrid Car)가 차세대 자동차로 주목받고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내연 엔진과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엔진을 하나의 자동차 안에 동시에 장착하여 연비를 높이고 유해 가스 배출량을 줄인 자동차이기 때문에 친환경 미래형 자동차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음식도, 과일과 야채도, 자동차도 융복합과 혼종이 유행하고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른 것들을 서로 섞는 것, 혼종성(hybridity)에서 창의성의 단초를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이 시대의 창조성은 혼합에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융합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으면서 학문에 있어서도 통섭(統攝)이 회자되면서 학문들 사이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차가운 시선으로 융합을 보면, 융합은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각자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한때 미국 사회가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동일한 국가와 문화를 형성하여 나간다는 점에서 Melting Pot(용광로)이라는 상징을 사용하였다. 용광로는 다양한 것들이 녹아져서 새로운 것을 창출한다는 신선한 느낌이 있지만, 다양한 것들의 고유성과 정체성이 사라지는 아픔과 비극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대 미국사회를 Melting Pot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다양성이 살아있는 ‘샐러드 그릇’ 또는 ‘모자이크’로 그려가고 있다.

 

융합 또는 융복합이라는 사유 방식과 삶의 방식은 ‘용광로’를 연상하게 한다. 다문화의 시대와 사회를 특징화 짓는 은유(metaphor)는 ‘melting pot’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채소와 저런 채소들이 섞여 있으면서도 각각의 채소들의 고유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샐러드나 다양한 무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자이크가 다문화 시대와 사회를 잘 표현해 주는 은유가 될 수 있다.

 

융합 또는 융복합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각자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살리면서 서로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고 어우러지는 사유 방식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은 융섭이다. 융섭은 서로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타자와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계절에 비유하여 생각해 본다면, 여름은 전체적으로 진한 녹색으로 뒤덮여진다. 그러나 가을은 다양한 색깔이 제 색깔을 뽐내면서도 아름다운 단풍으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진한 녹색의 여름이 융합 또는 융-복합이라면, 아름다운 단풍의 가을은 융섭이다.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 화려했던 단풍도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융섭의 사유 방식과 삶의 방식이 한반도와 지구촌을 더 붉게 물들이길 소망해 본다. 

 

chanseok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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