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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신문 전문가칼럼 화성춘추(華城春秋) 43] 살아있는 사람의 조건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교육학박사
 
화성신문 기사입력 :  2020/02/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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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수연 장안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교육학박사     ©화성신문

“여러분들은 살아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던진 적이 있다. 그 때 학생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우리가 살아있지 죽었단 말인가?’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네”라고 답했다. 

 

그러한 반응에 대해,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면 무슨 이유로 살아 있다고 판단하는가요?”하고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숨을 쉬잖아요”, “생각을 하잖아요”, “음식을 먹잖아요”, “행동을 하잖아요” 등 여러 이유를 제시하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질문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표정을 보였다.  

 

“당신은 살아있습니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살아가기조차 바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살아있냐’고 묻는 것 자체가 엉뚱할지 모르지만, 우리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나는 살아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권하고 싶다. 

 

숨을 쉬고 있고,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를 움직이고, 밤이 되면 자고, 그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떠서 유사한 일과를 반복하는 우리의 삶이 살아 있는 것일까? 생물학적으로는 그렇다. 비록 생명체는 아니지만 자동차(기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침이면 시동을 걸고 일과에 따라 움직이고 밤이면 긴 시간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숨을 쉰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인가? 

 

에릭 프롬(Erich Fromm)은 살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희망, 신념, 용기의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3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않으면 살아 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또한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 3가지 조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희망은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무엇을 갖고 싶다는 꿈이요, 삶의 목적이다. 또한 살고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만약 희망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삶의 목적, 꿈을 만들어야 한다. Fromm이 말하는 희망은 단순히 희망 자체를 가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희망은 현재와 미래의 시간 속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간적 복합체이다. 희망의 달성은 미래의 시간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달성을 위한 노력, 능력 함양은 현재의 시간에서 실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미래는 물론 현재의 행동을 위한 강력한 동기유발요인이며 삶의 의미 그 자체이다. 오늘 나의 행동은 희망으로 가는 발걸음이 된다. 현재 자신의 행동에 따라 희망이 달성되는 시간은 다가오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둘째, 나의 희망이 달성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신념은 불확실한 사실을 확실하다고 믿는 정도이다. 희망과 연결된 강한 신념은 자성예언(自成豫言)의 작용을 한다.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교차되는 마음, 변덕스런 마음은 행동을 머뭇거리게 하며 목표지향적 행동을 방해하는 엄청난 심리적 장애물이 된다. 길을 가면서 이 길이 맞다, 틀리다의 생각을 반복한다면 한걸음도 나아가기 힘들다. 강한 신념은 할 수 있다는 일관된 마음을 불러 일으켜 강하게 도전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자원이 된다. 

 

셋째, 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용기란 용감해지자고 다짐한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행동의 장애물인 마음의 두려움을 제거하여야 나타나는 것이다. 즉 자신이 하는 일에 두려움이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두려움을 제거하여야 한다. 원래 두려움이란 자기보호기제 중 가장 강력한 기제이다. 나를 손상시킨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레 두려움이 나타나 위험한 상황을 피하도록 한다. 나쁜 행동을 막기 위해서는 두려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바람직한 행동을 위해서는 두려움을 제거시켜야 한다.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한다면 용기가 아니라 사리를 분별하지 않고 함부로 날뛰는 만용(蠻勇)이 된다. 두려움은 심리적이지만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다. 따라서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처능력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대처능력은 신체, 심리, 정신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신체적 역량, 심리적 역량, 정신적 역량을 모두 길러야 한다. 

 

혹시 자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 ‘너 이렇게 행동해서 커서 뭐가 될래?’, ‘매일 휴대폰(게임)만 하고 있어?’, ‘왜 대답을 안 해?’, ‘넌 왜 꿈(목표)이 없어?’라고 자녀가 보여주지 않는 희망 때문에 자녀를 닦달하지는 않는지?

 

가정은 살아있어야 한다. 그 시작은 부모로 부터이다. 살아있는 부모는 자녀교육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모방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희망, 신념, 용기를 갖춘 살아있는 부모의 모습은 달리 요구하지 않아도 그 자녀를 살아있게 만든다. 희망을 가지고 현재를 준비하는 생활,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충만한 생활, 대처능력이 풍부하여 매사 활기차고 능동적인 생활을 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부모가 먼저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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