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는 사연이 많은 회사다. 1949년 국도건설로 시작된 회사가 1983년에 현대에 인수됨으로써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가 된다. 그 후 IMF 경제위기의 혼란 속에서 LG반도체를 인수하고 반도체 전문회사로 탈바꿈한다. 사명도 ‘하이닉스(Hyndai Electronics)반도체’가 된다. 그러나 실적이 계속 어렵자 현대그룹이 하이닉스에서 손을 떼고 채권은행단에서 관리를 하다 결국 2012년 SK텔레콤이 새 주인이 된다.
3조 400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SK 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때는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SK 그룹은 반도체 사업을 내수위주의 기존 사업에서 탈피하는 계기로 삼고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틀로 삼고자 했다. 하이닉스를 인수한 후 SK는 매년 수조원에 달하는 선제적인 투자를 했다. 그 덕분에 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 다음의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는 강자로 거듭났다.
기구한 운명을 살고 있는 하이닉스 입장에서나 경영을 맡고 있는 SK 입장에서나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SK하이닉스 공장안에는 ‘SK하이닉스인의 독한 행동’이라는 수칙이 걸려있다. 10가지 수칙에는 이런 것이 있다.
‘1. 목표는 반드시 ‘경쟁자를 이기는 수준’이어야 한다.
2. 정해진 목표는 ‘죽기 살기로 달성’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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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 되는 것은 없다. ‘되게 하는 방법’을 찾아서 ‘끝장’낸다‘
이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사훈이나 경영이념이 있지만 이는 대개 젊잖게 표현된 고급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위의 ‘독한 행동’은 적나라하고 정말 독하게 느껴진다. 사실 SK하이닉스만 독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1983년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할 때 삼성인들도 이런 수칙을 세웠다. ‘삼성전자 반도체인의 신조’라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도 10가지 수칙이 있는데 세 개만 살펴보면 이렇다.
‘1.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
2. 큰 목표를 가져라.
3. 일에 착수하면 물고 늘어져라.‘
SK하이닉스인의 독한 정신과 다를 게 없다. 두 회사의 수칙은 군인들의 전투수칙을 방불케 한다. 반도체 사업이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반도체업 종사자들은 매일 매일 비상이고 매시간 긴장 속에서 산다. 이들은 이런 구호를 단지 벽에만 붙여놓지 않고 행사 때마다 외치고, 회의 때마다 다지고 또 교육하고 교육한다. 이렇게 조직원들이 기를 모으고 또 하나가 되는 것이다.
회사에는 이렇게 살벌한 구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달의 민족’이라 불리는 우아한 형제들에서는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①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②업무는 수직적, 인간관계는 수평적...⑦팩트에 기반한 보고만 한다. 이를 원용하여 서초구에 있는 케이블 TV회사 에브리온TV에서는 ‘서초동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표현이 좀 바뀌어 있다. ①9시 1분은 9시에서 1분이 지난 시간이다. ②업무는 수직적, 인간관계도 수직적...⑦팩트에 기반한 보고는 카메라와 녹음기를 이용하고 내 생각을 보고하자.
이런 구호나 수칙이 왜 필요할까? 바로 그것은 우리에게 생각의 틀(Frame)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틀이 만들어지면 우리가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고 어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 구호나 프레임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 상황에 딱 맞는 것이어야 하며 리더의 열정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하고 또 그가 솔선수범하는 ‘진정성’이 배어있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구호라면 굳이 10개, 11개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단순하고 간결할수록 좋다. 이승엽 선수의 좌우명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처럼 말이다.
(choyho@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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