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시인 / 메밀꽃 천서리 막국수 대표 /시민로스쿨화성지원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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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책
박은숙
표정을 읽는다는 말
그건, 얼굴이 문자의 집합체라는 뜻일까.
한 권의 오래된
책이라는 뜻일까.
상대방과 서로 주고받는 말들은
단순히 책의 어느 페이지에 인쇄된
몇 문장에 지나지 않지만,
표정이 얼굴의 줄거리라면
굳어진 주름들은 즐거움 반
찡그린 고민 반쯤 되겠다.
마치 중요한 일에 밑줄을 그어 놓듯
자글자글해지는 표정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어있는 것이다.
얼굴 책에 쓰인 문장들이
더 이상 쓸 수 없거나
그 책에 있는 문장을 다 써먹은 뒤엔
겉장이 덮이듯 두 눈을 감고 말겠지.
어떤 표정에서
진부한 문장이 튀어나오는 일과
처음 듣는 생경한 줄거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묵독(默讀)이 아니라
음독(音讀)이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일은
묵독과 묵독이 서로 만나는 일
전집이 될지
낱권이 될지는 모두
각자의 얼굴 깊이와 넓이에서 결정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장편의 소설로 표현하곤 한다. 그렇듯 사람들의 얼굴은 그들이 살아낸 세월을 담고 있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일이란 게 묵독과 묵독이 서로 만나는 일일까. 상대방의 표정을 읽어내느라 눈빛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면 그때의 긴장감이란 어느 결말에 다다른 줄거리의 맥락을 읽는 일과 같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얼굴에 소설책 한 권씩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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