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어린이 구호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일하던 제리 스턴닌(Jerry Sternin) 씨는 1990년 12월 베트남 근무를 명령받았다. 필리핀에서 일하던 그는 이제 다른 곳으로 좀 갔으면 했는데 같은 동남아 지역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나라가 만들어진 지도 14년이 지났건만 베트남은 여전히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의 영양실조를 해결하라’는 것이 스터닌 씨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자료를 보니 베트남 어린이의 63%가 영양실조였다. 스터닌 씨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다. 6개월 안에 뭔가를 보여야 했다.
스터닌 씨는 우선 원인 조사를 했다. “왜 이렇게 영양실조율이 높은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보고서가 있었다. 내용도 모두 일치했다. 나라가 가난하다는 사실, 정부에 예산이 없다는 사실, 생활환경이 비위생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부모들의 교육수준이 낮다는 사실 등 말이다. 문제는 이런 원인을 안다고 해서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True But Useless). 그래서 여태까지 했던 방식은 선진국의 원조로 아이들에게 먹일 구호식품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구호식품이 늘어날 때만 잠시 영양실조율이 낮았다가 구호식품이 끊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실정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스터닌 씨는 번뜻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영양실조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영양실조는 아니잖아?” 그렇다. 63%가 영양실조라면 37%는 영양실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37%나 건강한 아이들이라니! 스터닌 씨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이들을 찾아 나섰다. 새로운 눈으로 보니 건강한 아이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10명 중에 3~4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왜 이들은 영양실조가 아닐까? 이들의 식생활에서 혹시 다른 점은 없을까? 스터닌 씨 팀은 이제 영양실조인 이유가 아니라, 영양실조가 아닌 이유를 찾았다. 그 이유가 분명 있었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 2번 식사를 하는데 이들은 4번 했다. 그리고 논에서 잡은 새우와 게, 그리고 고구마잎을 밥에 섞어 먹었다. 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손을 잘 씻었다. 그리고 몸이 아파 아이들이 밥맛을 잃었을 때도 어른들이 식사를 잘 챙겨 먹였다. 아이들이 식사를 하루에 4번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먹을 것이 넉넉지 않은데 어떻게 4번이나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을 알아보니 4번 먹이는 것이 많이 먹이는 게 아니었다. 먹을 것이 없어 당연히 소화가 어려운 조악한 음식을 먹다 보니 하루 2번 먹는 것보다 4번에 나누어 먹는 것이 소화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
스터닌 씨는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너무나 기뻤다. 아무리 가난한 집안이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 사실을 알리고 바로 실천하도록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사실을 안다고 해서 바로 실천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구나 식생활은 전통이고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와 고구마잎을 먹지 않는 것은 베트남의 문화였었다. 스터닌 씨는 여기에 굴하지 않고, 방법을 바꾸었다. 우선 시범 사업을 벌였다.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센터에 오게 하여 새로운 음식을 먹였다. 희망하는 가족들과 함께 논에 가서 새우와 게를 잡아왔고, 고구마잎도 따서 요리했다. 2주 만에 아이들의 몸무게가 늘고 혈색이 달라졌다.
스터닌 씨는 여기서 깨달았다. 변화를 이루려면 단지 생각을 바꾸게 하고 지식만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어떻게든 행동을 바꿔야 하고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철칙 말이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식생활은 베트남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스터닌 씨에게 주어진 6개월 동안 아이들의 영양상태는 65%나 개선되었다.
스터닌 씨는 여태까지 구호활동을 해 왔지만, 베트남에서 큰 사실은 깨달았다. 문제가 있는 곳에 답도 있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워낙 크고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여기에 몰입한 나머지 답을 보기 어렵다. 답은 일반적인 곳에 있지 않고 예외적인 곳에 있다. 아무리 일을 잘못하는 직원도 예외적으로 일을 잘할 때가 있고, 아무리 실적이 나쁜 경우도 실적이 좋은 예외가 있다. 스터닌은 이를 ‘긍정적 이탈’이라고 했다. 긍정적 이탈 속에 답이 있는 것이다.
긍정적 이탈을 찾아내려면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찾는 질문에서 잘된 것을 찾는 질문으로 말이다. 평균이나 일반적인 상황을 찾는 질문에서 예외를 발견하는 질문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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