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은숙 시인 / 메밀꽃 천서리 막국수 대표 /시민로스쿨화성지원장 ©화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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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 가을
햇 과일, 이라는 말을
햇 가을이라고 들었다
높아진 햇볕처럼
내 귀도 높아졌거나 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때론
높은 말을 낮게 듣는 습관인 귀가
낮은 말을 높게 듣는 어짓장의 내 귀가
이번엔 바로 들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모든 햇과일들은
대부분 가을에 나온다는 것쯤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가을이 햇살을 끌고 다니다
이쯤이다 싶어 풀어놓은 자리
서둘러 햇살 채집을 하는 것이다
몽롱한 비밀처럼
말간 착각처럼
모두 햇살의 나이를 먹는 셈이어서
낮은 하늘 빛과 높은 하늘 빛
또는 무거운 물기와 가벼운 물기들
햇과일을 잘못 발음한 것은
쫓기는 햇살 탓이라고 얼버무려도 되지
그러니 지구의 어느 과수원에는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과일의 품종이 있다면
햇 가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것이다.
봄부터 내리쬐던 햇살은 어느덧 가을에 도착해 있다.
높아진 하늘만큼 높아진 햇살, 이리저리 바람에 쏠리던 햇살에 제대로 익은 햇 가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과일은 어떤 맛일까 생각해 본다.
비 맞은 슴슴한 맛이거나 햇살 담은 따끈한 맛이거나, 때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들어 외면하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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